샴페인 하우스 앙리오Henriot는 부르고뉴의 부샤 뻬레 피스Bouchard Pere & Fils, 윌리엄 페브르William Fevre를 인수하면서 거대한 와인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메종&도멘 앙리오와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이어온 와인수입사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의 말을 빌리면, “앙리오는 시장이 기대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하며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대규모 기업의 모범 사례”이다. 일관된 품질과 높은 접근성을 지닌 와인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으며,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해 포도밭과 양조장에 각종 설비투자를 아끼지 않고 공급과 가격 안정성을 위해 힘쓰는 것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앙리오의 수출 담당 이사 빅터 페팡Victor Pepin과 함께 한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처럼 와인 산업의 밑바탕을 탄탄히 다져온 앙리오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모든 시작은 샴페인 앙리오에서
직물 교역에 집중했던 앙리오 가문은 1550년에 포도 생산자로 삼페인 업계에 진출, 1808년에 메종 앙리오를 설립했다. 오늘날도 이곳은 앙리오 가문이 모든 지분을 소유하며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빅터 페팡은 샴페인 앙리오의 스타일을 “샤르도네 중심”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샴페인의 신선함과 산도, 미네랄을 유지하기 위해 블렌딩할 때 섞는 샤르도네의 비율이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보다 높다. 많은 와인평론가들이 앙리오 샴페인을 신선한 감귤류가 드러나고 깨끗하며 우아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샴페인은 규정상 18개월 이상 숙성하면 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앙리오의 경우 기본급 넌 빈티지 샴페인도 3년 동안 숙성한 후에 출시한다. 이는 샴페인이 가장 마시기 좋은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시장에 내놓는다는 품질주의 경영의 좋은 예다.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도사주dosage(마지막 병입 과정에서 첨가하는 당분)는 리터당 7-8g이다. 이때 당분은 산도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며 풍미의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도사주의 양이 적으면 샴페인의 높은 산도가 고스란히 위에 전달되어, 식전주로 마실 경우 속을 쓰리게 만들기도 한다.
샴페인 앙리오의 연간 총 생산량은 120만병이며 그 중 60%가 기본급 넌 빈티지 샴페인, 브뤼 수버랭(Brut Souverin)이다. 그 외에도 넌 빈티지 블랑 드 블랑과 로제를 비롯해 빈티지 샴페인, 프레스티지급 퀴베 샴페인 등 종류가 다양하다. 앙리오는 다른 샴페인 브랜드와는 달리 프랑스 내수 시장의 비중이 가장 높고 일본, 미국, 영국, 이태리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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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블리의 자존심, 윌리엄 페브르
1998년 메종 앙리오는, 1962년에 설립된 샤블리 지역의 윌리엄 페브르를 인수했다. 이곳은 78헥타르가 넘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중 15.2헥타르는 그랑 크뤼급 포도밭이다. 역사는 길지 않지만 샤블리 와인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윌리엄 페브르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미국의 대형 와인기업 갤로Gallo가 화이트 와인을 ‘샤블리’로 이름 붙여 생산지가 불분명한 와인으로 판매하는 것을 알게 된 윌리엄 페브르는, 이에 격분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이 길어지자, 항의하는 의미로 자신의 와인에 ‘프랑스산 나파밸리Napa Valley de France’라는 이름을 붙여 미국에 수출했고 샤블리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을 받았다.
인수 이후, 윌리엄 페브르의 스타일은 복합미와 테루아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했다. 새 오크통 사용을 중지하고, 오크의 특성이 거의 남지 않은 중고 오크통만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덕분에 와인에서는 나무, 토스트, 타닌 등의 오크 풍미 대신 테루아의 특징이 오롯이 드러난다. 윌리엄 페브르 샤블리를 “샤블리의 교과서”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포도밭에서도 변화는 계속되었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30-50년이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대폭 줄여서 포도 자체의 품질을 높였다. 오늘날 샤블리에선 전체 생산자의 5%만 손으로 포도를 수확할 정도로 기계수확이 보편화되었지만 윌리엄 페브르는 모든 포도를 손으로 수확한다. 또한 포도를 양조장으로 옮길 때 포도의 파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13kg의 작은 통을 사용한다.
▲ 샤블리 1등급 푸르숌 2008
푸르숌은 그랑 크뤼 포도밭에 인접한 1등급 밭으로, 좋은 빈티지라면 그랑 크뤼에 비할 만큼 품질이 높다. 2008 빈티지의 이 와인에서 여전히 녹색의 음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상태가 매우 좋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감귤류, 서양배, 샤블리 특유의 미네랄 풍미가 돋보이며 싱그럽고 아름다운 느낌이 든다. 산미는 강하지 않지만 청량하고 여운도 은은하게 오랫동안 지속된다. 윌리엄 페브르는 바토나주(batonnage, 와인을 휘저어 효모앙금과 섞는 것)를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빅터 페팡은 “바토나주는 우리가 원하는 신선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스타일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와인의 질감이 부드럽고, 앞으로 2-3년 뒤에 마셔도 좋을 만큼 뛰어난 구조감과 잠재력이 느껴진다. 오크 풍미가 거의 없어 굴, 조개 등의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리고 흰살 생선, 크림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같은 흰색 육류와도 좋은 궁합을 이룬다. |
■ 부르고뉴의 최대 지주, 부샤 뻬레 피스
파리와 부르고뉴를 오가며 직물 사업을 하던 부샤 가문은 1731년에 도멘을 설립했다. 1775년에 첫 포도밭인 볼네 까이에레Valnay Caillerets를 사들인 이후, 지금은 그랑 크뤼와 1등급을 포함하여 무려 130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한 부르고뉴의 최대 지주가 되었다. 1995년에 부샤 뻬레 피스를 인수한 메종 앙리오는 2005년에 중력 적용 방식의 첨단 양조장을 새롭게 완공했고, 포도를 구획에 따라 나누어 양조할 수 있도록 오크 배트의 수를 늘렸다. 또한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을 낮추어 과일 풍미를 돋보이게 했다.
인수 이후 단행한 이러한 변화는 그랑 크뤼와 1등급 와인의 현저한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고 와인 전문지나 평론가들의 극찬이 뒤따랐다. 더불어 기본급 와인의 품질도 상승하여 소비자들로부터 “가성비 좋은 부르고뉴 와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높은 가격 때문에, 그랑 크뤼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1등급이나 인기 있는 마을 단위 와인도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합리적인 가격의 부샤 뻬레 피스의 1등급 와인들은 고공행진 중인 부르고뉴 고급 와인들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피노 누아 와인은 시음 적기를 맞추기가 까다롭다. 시음 적기가 아닌 경우 피노 누아는 풍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데, 이를 두고 “와인이 잠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보통 마을 단위 와인은 5년, 1등급은 5-10년, 그랑 크뤼는 10년 정도 지나야 시음 적기가 된다고 본다.
▲ 볼네 1등급 까이에레 2006
까이에레는 부샤 뻬레 피스가 최초로 구매한 1등급 포도밭이다. 와인에 구조와 미네랄을 주는 석회암 토양과 과일 풍미를 주는 점토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 와인이 이상적인 밸런스를 가지는데 기여한다. 부샤를 대표하는 아이콘 와인 중 하나이며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은 40-50% 정도이다. 잘 익은 과일에서 나는 감미로운 향미는 나이가 들어가는 와인이란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 밖에도 살짝 그을린 오크, 정향의 향이 난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신선한 산미가 이어지고 우아하다. 정교하면서도 강건한 타닌이 느껴져 장기 숙성의 잠재력이 엿보인다. 향신료의 풍미 덕분에 양갈비와도 잘 어울리고 훈제 오리, 와인을 넣어 만드는 꼬끄오뱅Coq au vin과도 궁합이 좋다. |
▲ 1등급 빈 드 랑팡 제쥐 2005/2013
이 와인은 부샤 뻬레 피스와 ‘와인의 도시’ 본을 상징하는 와인이다. 1791년에 부샤가 약 4헥타르의 포도밭을 전부 인수한 뒤 독점 생산하고 있다. 본래 자갈이 많아 레 그레브Les Grèves라고 불렸던 포도밭이지만, 다음과 같은 일화로 인해 ‘아기 예수의 와인’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7세기 당시 이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던 카르멜파 수도회는, 불임이었던 앤 여왕에게 곧 아기를 출산할 것이라 했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이 아이는 훗날 절대군주의 상징, 태양왕 루이 14세가 되었다. 이 와인은 태양왕 루이 14세를'아기 예수’에 빗대어 이름을 붙였으며, 덕분에 출산이나 결혼 선물로 즐겨 찾는 와인이 되었다.
실제로 이 와인은, 해당 빈티지에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개봉해도 좋을 만큼 장기 숙성력이 뛰어나다고들 하는데, 2005 빈티지를 시음하고 나니 이에 수긍할 만했다. 와인은 장미꽃과 순수한 과일 향, 숙성이 잘된 와인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감미로운 맛과 긴 여운을 선사한다. 미네랄과 산미도 풍부하고 우아해서, 위대한 빈티지는 역시 뭔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최근 빈티지인 2013의 경우, 신선한 숲과 나무, 검은 체리, 장미꽃, 향신료의 향이 생생하다. 입 안에서 타닌의 질감은 부드러운 편이고 과일 풍미가 끝까지 길게 이어진다. 닭고기는 물론 버섯, 오리 로스는 더할 나위 없겠고 돼지고기 중 가브리살, 항정살 구이나 석쇠 불고기도 매칭해 볼만 하다. |
수입_ 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