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의 정취가 그윽한
 
 
토스카나 빌라 투어
 
 
 
글, 사진 _ 조정용
 
 
고색창연한 중세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여행을 한다면 빌라 투어를 추천한다. 빌라마다 자체 양조장이 달려 있어 빌라 투어는 곧 와인 여행이요, 미식 기행이다.
 
대한항공을 이용하면 밀라노를 거쳐서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에서 렌터카를 이용하여 피렌체에 도착하면 빌라 투어를 시작할 수 있다. 혹은 여러 항공사를 통해 파리를 거쳐서 피렌체에 도착해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은 피렌체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피렌체로 돌아오는 여정이 보통이다.
 
피렌체는 도시의 속이 르네상스 시대에 갇힌 모습이라 현대인이 생활하기에는 여러모로 비좁다. 렌터카를 자유롭게 운행할 수 없으므로 호텔은 다운타운 바깥 쪽이 편리하다. 하지만 단 며칠이라도 피렌체의 속을 보고 싶다면 다운타운 호텔에 머무르는 게 낫다. 하지만 여기에도 요령이 있다. 호텔 프런트에 미리 얘기해서 정확한 경로를 파악한 다음, 그 길을 따라 호텔에 진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교통 위반 딱지가 여행 후에 마구 날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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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투어는 피렌체 남쪽에 포진한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서 시작한다. 양조장 비키오마죠(www.vicchiomaggio.it)는 존 마타(John Matta)와 그 가족들이 온 힘을 합쳐 운영한다. 토스카나 사람인데 이름이
'존’이란 게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란다. 마타 가문은 영국에서 와인 유통으로 돈을 번 후에 토스카나에 역이민을 온 경우다.
 
‘축제의 달 5월이면 흥겨움으로 들썩거리는 작은 마을’이란 뜻의 '비키오마죠’는 이 지역의 많은 양조장처럼 산지오베제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하지만 이 곳에서 맛 본 최고의 와인은 산지오베제가 아니다. 필자에게는 메를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의 맛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존은 모래 토양 중에 일부를 골라 메를로를 심었고 그 결과에 몹시 만족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양조장들이 메를로를 소량 생산하며 그 수준은 값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럴 경우 와인은 명산지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상표를 달지 못하고, 그냥 토스카나 와인이라고 명명될 뿐이다.
 
양조장 달린 빌라는 봄부터 가을까지 영업을 하며, 겨울에는 보통 운영하지 않는다. 거대한 돌 덩어리로 된 건축물에 천정 높은 방들이 조성되어 있어 겨울철 난방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기자단을 맞이하려고 비키오마죠 양조장 호텔은 이틀 전부터 군불을 땠다고 했다. 생햄 프로슈토 부위 중에 삼겹살에 해당하는 판체타에는 비계가 많이 붙어 있어 기름진 파스타 맛을 연출하기 쉽다. 이곳에서 맛본 푸질리 파스타는 판체타 지방의 단맛이 바질과 잘 뭉쳐져 맛깔스러웠다.
 
 
두 번째 행선지는 일보로(www.ilborro.it)이다. 명품업체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소유하고 있는 이곳 일보로는 실개천이 흐르는 작은 마을의 이름으로, 여기에는 부티크 호텔부터 양조장, 식당, 가게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와인 값은 페라가모 구두에 비하면 만만하다. 구두는 오래 신고, 와인은 많이 마시라는 뜻일까. 일보로의 부티크 호텔은 여러 채의 단독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투숙객은 아예 독채를 즐긴다. 모두 스위트룸급이며, 그 중에서 '공주의 방’이 제일 먼저 예약된다.
 
일보로의 포도밭은 전통지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이름의 와인은 없다. 대신 토착 품종 산지오베제 외에도 시라, 메를로, 샤르도네 등의 외래종을 많이 재배하여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와인을 양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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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우리는 코르토나로 진입했다. 코르토나는 영화 <투스칸 태양 아래>에 소개된 이후 미국 관광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와인을 놓고 보면 명산지로서의 초점은 다소 희미하다. 대신 남프랑스 품종인 시라에 대한 양조 시도가 활발한데, 특히 테니멘티 달레산드로(www.tenimentidalessandro.it)가 양조하는 2007년 빈티지 시라 와인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시라’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네 번째 행선지는 코르토나의 또 다른 양조장 일 팔코니에레(www.ilfalconiere.it)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매잡이와 매사냥이 특징인 곳이다. 주인장 리카르도 바라키는 와인보다는 음식과 호텔에 더 역량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가 부리는 작은 매 한 마리는 온 방문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조선 사대부의 최고 취미가 머나먼 토스카나의 시골 마을에서도 행해진다니, 지구는 참 평평하다.
 
바라키는 훌륭한 사업가이다. 그는, 자신의 땅이 명산지 바깥에 위치해 있다는 핸디캡을 멋드러진 부티크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으로 충분히 만회한다. 레스토랑은 미슐랭 원스타로, 성수기에는 자리가 모자라는 형편이다. 레스토랑 예약에 실패한 사람은 리카르도의 향토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면 된다.
 
로칸다 델 몰리노(www.locandadelmolino.com) 역시 바라키가 운영한다. 코르토나의 자연 풍광이 우거진 곳에 잠자리와 식당을 겸영하는 로칸다의 음식은 아주 향토적이다. <투스칸 태양 아래>의 작가가 소설이 히트를 치자 요리책도 동명으로 발행했는데, 그 표지 인물과 표지 식당이 바로 리카르도 로칸다의 스텝들이다. 그들이 채취하거나 재배하거나 키우는 것들로 밥상이 차려지는 게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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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티 클라시코의 와인 품질을 넘어서는 지역이 바로 몬테풀치아노다. 영화 <트와일라이트>에서 흡혈귀들의 본부 무대로 사용되기도 한 중세 산성마을 몬테풀치아노는 강건하고 진한 산지오베제 와인을 잉태한다. 산지오베제가'제우스의 피’란 뜻인데, 몬테풀치아노는 흡혈귀 영화로 인해 더욱'제우스의 피’에 가까운 와인을 생산한다.
 
몬테풀치아노에서 포도밭과 호텔을 동시에 운영하는 양조장으로 파토리아 델 체로(Fattroia del Cerro)가 있다. 시원시원하게 구축한 아담한 호텔은 내부 계단마저도 여유롭게 설치하여, 지내는 동안 안락함과 여유로움이 고양된다.
 
체로의 와인은 10년은 충분히 숙성되는 힘을 지니고 있다. 2001년 같은 우수한 빈티지의 와인은 여전히 싱싱한 활력이 느껴진다.
 
매년 2월이면 몬테풀치아노성 안에서 와인 잔치가 벌어진다.'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라는 이름의 지역 최고 와인이 해마다 이 자리에서 전세계 와인관계자들을 맞이한다.
 
몬테풀치아노의 돼지 고기는 특히 맛있다. 어린 돼지 바베큐, 즉 포르케타는 토스카나 중에서 이곳의 것이 가장 감칠맛 난다. 양젖 치즈 페코리노의 맛도 여기가 으뜸이다. 치즈 농장 쿠구지의 페로리노는 프레쉬 치즈든 숙성 치즈든 손이 계속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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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으로 올라간다. 최근 독일 알리안츠 그룹이 매입한 이후 고급 리조트로 변모한 산 펠리체(www.borgosanfelice.it)에 잠시 들렀다. 산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마을 산 펠리체가 통째로 고급 호텔로 탈바꿈하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결혼식을 위해 하루 이틀 정도 단지 전체를 빌리는 유럽인들이 늘고 있단다. 이 때 파티를 장식하는 것은 산 펠리체의 와인들이다.
 
 
양조장 카판넬레(www.capannelle.com)는 소규모의 파티에 적합한 포도밭 호텔이다. 이 양조장에 달린 작은 부엌에서 향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은행 금고처럼 꾸며진 와인 셀러이다. 와인 저장고 입구는 은행의 튼튼한 금고와 모양이 흡사하며, 이 양조장의 와인을 즐겨 파는 여러 식당들의 이름으로 칸이 나뉘어져 있다. 매년 거래하는 식당의 고객들을 초청하여 포도밭과 레스토랑 그리고 자체 호텔에서 파티를 벌인다. 카판넬레의 키안티 클라시코는 일반보다 좀 더 숙성시킨'리제르바’ 와인만 출시한다. 한편 카판넬레는 몬테풀치아노의 양조장 아비뇨네지와 협력하여, 산지오베제와 메를로를 반씩 섞은'50대50’ 와인을 양조한다. 이 레드 와인은 강건하고 밀도감이 높으며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행선지는 디에볼레(www.dievole.it) 양조장 호텔이다. 산등성이 경사를 따라 지은 낮은 지붕의 이 호텔은 토스카나 시골 체험을 하기에 알맞다. 양조장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행하는 것만으로도 토스카나의 자연미를 듬뿍 느낄 수 있다. 밭에서 재배한 각종 야채와 고기를 굽고 튀기고 볶아서, 직접 재배하고 양조한 와인과 같이 상을 차린다. 디에볼레도 키안티 클라시코를 양조한다. 이들의 주된 육류 요리 재료는 토끼다. 돼지로는 주로 햄을 만들고, 고기로는 야생 토끼를 즐긴다.
 
풍요로운 태양이 머무는 토스카나에서 포도밭을 가꾸는 양조장들은 많은 경우 자체 호텔을 운영하다. 여행자들의 발을 붙드는 것은 와인과 음식이라고 여기는 이들 덕분에, 여행자들은 풍성한 식음의 경험을 만끽하는 가운데 여행의 즐거움과 기쁨을 온 몸으로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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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_ 조정용
와인칼럼니스트
[올댓와인], [라이벌 와인], [프랑스 와인여행자] 저자
세계일보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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