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바츠 말리의 나라

크로아티아




글, 사진_조정용
 

크로아티아가 나라 이름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몰랐던 우리는 요즘, 지중해 최고의 관광지 두브로브니크를 배경으로 벌이는 고현정의 커피 광고를 보고 그 곳이 참 아름다운 동유럽 나라란 걸 알게 되었다. 프랑스의 피노 누아처럼 독일의 리슬링처럼, 크로아티아에는 플라바츠 말리가 대표 품종이다. 이 포도의 고향은 달마시아로, 디즈니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고향이기도 하다.

달마시아는 마르코 폴로의 태생지로 유명하며, 이국적인 풍광의 아름다운 해변과 건축물로 인해 지구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크로아티아의 자존심이 담긴 와인 플라바츠 말리의 다양한 맛과 향기로도 이름 나 있다. 달마시아의 플라바츠 말리 생산지역은 크게 세 군데로 나눌 수 있는데, 육지의 해안과 섬 그리고 남부 지역이 그들이다. 이 세 지역의 플라바츠 말리는 모두 100% 순종으로 양조되지만, 지역의 특성이 배어 있어 각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장 유명한 딩가츠 포도밭을 품고 있는 육지의 해안으로 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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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전통 복장을 입고 교회를 가고 있는 촌부들>


페제샤츠 반도는 육지의 플라바츠 말리를 잉태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페제샤츠는 마치 포항의 호미 곶을 데칼코마니 작업한 것과 같은 모양이지만, 호미 곶 보다는 훨씬 길게 나와 있다. 육지에서 약 65킬로 북서쪽으로 뻗어 나와 있어, 그 끝에 사는 이들은 130킬로를 돌아야 도착할 수 있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뱃길이 편리해 주민들은 대부분 페리를 타고 육지를 오간다.

페제샤츠에서 가장 이름 난 포도밭은 딩가츠이다. 남향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길게 늘어선 포도밭으로, 제네바 협정에 의해 원산지가 보호되는 유일한 유럽의 포도밭이기도 하다. 급경사 면에 조성된 딩가츠는 바로 옆이 바다라서 보기에도 뭔가 대단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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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 쪽빛 바다를 끼고 잉태되는 딩가츠의 플라바츠 말리>


마리아 므르구디츠, 그녀는 12대째 고향 오레비츠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고향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진판델을 미국에서 도입하여 보란 듯이 키우고 있다. 왜 하필 와인 문화가 늦은 미국에서 묘목을 들여왔냐는 질문에 그녀는 “미국의 대표 품종 진판델의 고향이 바로 여기 딩가츠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우리 고장의 포도밭 딩가츠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는 서기 1600년부터 시작되는 족보를 보여주며 지속적으로 조상들이 와인을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식물학계와 양조학계의 오랜 연구와 다툼 끝에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화려하게 양조되는 진판델은 크로아티아에서 비롯된 품종으로 밝혀졌다. 딩가츠에 있던 품종 츨레낙 카슈테란스키(이하 츨레낙)는 어느 햇빛 좋은 날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로 수출되었거나 밀수되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에서는 츨레낙을 프리미티보라고 부르며 그 지방의 대표 품종으로 양조되고 있다. 한편 츨레낙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 꾸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주민에 의해 어느 날 캘리포니아 벌판에 심어졌으며 오늘날 진판델로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니 츨레낙, 프리미티보, 진판델은 세 쌍둥이처럼 이름만 다른 동일한 품종이다. “플라바츠 말리는 이 세 쌍둥이의 유전자적 아버지”라고 마리아는 강조한다. 그녀는 이어 “진판델은 미국식 표현이니 원래의 이름 ‘츨레낙’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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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나에 있는 식당 코노바 안투노비츠>


딩가츠의 플라바츠 말리는 타닌이 많고 거칠며 알코올이 높아 무척 강하고 센 맛을 준다. 대부분 15도를 훌쩍 넘으며, 블루베리의 아로마가 튕겨 나올 듯이 분명하다. 오크통을 사용하는 덕분에 아주 단내를 풍긴다. 시음은 아주 오래된 마을 쿠나에 있는 식당 코노바 안투노비츠(Konoba Antunovic)에서 열렸다. 천정에는 염장한 돼지다리들이 잔뜩 걸려 있었고, 화로에서는 붕장어가 꼬챙이에 꽂힌 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때가 주말이라 그런지 식당은 만원이었다. 긴 테이블 빼곡히 자리 잡은 촌부들은 막잔에다 레드 와인을 벌컥 벌컥 마셨고, 그들이 떠들어대는 모습은 무척 평온해 보였다. 시음 와인에는 포스툽 출신의 플라바츠 말리도 포함되었는데, 포스툽은 딩가츠에서 반도 끝으로 더 달리면 나오는, 역시 달마시아의 대표적인 원산지이다. 이 둘간의 맛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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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가츠와 포스툽의 와인들>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마이크 그르기츠의 양조장도 딩가츠에 있다. 그는 몬다비처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와인으로 성공한 인물로 그의 조국 크로아티아에 ‘쨍 하고 해 뜰 날 내가 왔단다’하며 성공한 와인 메이커로 돌아왔다. 영화 <와인 미러클>에서도 소개되었듯이 마이크는 파리의 심판에서 화이트 분야 1위를 차지했던 샤토 몬텔레나의 와인 메이커였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최대의 유기농 와인 농장 그르기치 힐스(
www.grgich.com)를 운영하고 있다. 마이크는 진판델의 아버지가 플라바츠 말리임을 밝히는데 큰 공헌을 했다.

딩가츠의 포도 나무들은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다. 깊은 수심의 물은 파란 색을 띠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옥색으로 맑아져 마치 색채도감을 보는 것 같다. 파란 바다에서 생육하는 플라바츠 말리는 바다 바람이 몰고 온 소금기를 인내해야 한다. 강한 바람을 맞고 자라는 나무보다 휠씬 힘든 환경을 버텨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달마시아의 아름다운 풍광은 플라바츠 말리에겐 고통일지 모르나, 그 와인은 푸른 아로마를 발산하며 거칠고 힘찬 타닌으로 무장된 토속 레드 와인으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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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에서 들여 온 진판델을 딩가츠에 심은 마리아와 친구 마르코와 함께>



글쓴이 _ 조정용
와인칼럼니스트
[올댓와인], [라이벌 와인] 저자
세계일보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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