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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순

와인을 공부하는후배들에게





와인이 좋아서 와인 공부를 시작하고, 나아가 와인산업에 발을 딛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평상시 후배들에게 얘기하듯 진솔하게 쓰면 되겠지하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필자 스스로 많이 부족한데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그리고이 글이 후배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다. 시작하는 글만 몇 번을 고치며 망설이다가, 그래도 이들이 필자가 겪은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건강: 두말할 것 없는 최고의 선물

"선생님 너무 힘들어서 회사 관뒀어요. 다음 주 허리 디스크 수술해요. 이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니 너무 속상해요."

학교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하며 와인 공부를 하고 업장에 취직하게 되어서 좋다고 환하게 웃던 그녀가, 어느 날 여위고 까칠해 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한 얘기이다. 그날 오후 내내 그녀의 표정이 떠올라 맘이 편치 않았다.

와인 업종은 육체적 노동을 많이 요구한다. 와인 강의도 세시간 이상 계속 서서 하는 일이고, 업장에서도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와인 회사에서도 와인 박스를 번쩍 번쩍 들어 옮길 일이 허다하다. 남들 퇴근 시간에 한창인 근무 시간, 각종 행사와 저녁 모임, 한밤중에 허전함을 달래는 늦은 야식, 직업 탓이라는 변명이 늘 붙어 다니는 음주, 부족한 수면. 그러다 보니 밤낮이 바뀌어 생체 리듬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라이프 스타일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게 된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필자 역시, 최근에 운동을 게을리하며 결국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폴립, 성대 결절, 역류성 식도염, 목디스크. 직업 특성 그리고 본인의 부주의를 탓할 수 밖에 없지만, 와인 업계에 비슷한 증상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열정, 꿈, 실력을 갖추었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아직은 젊다고 방심할 일도 아니다. 평범한 진리지만 건강은 정말로 잃고 나서야,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활 주기를 살아야 한다면 꾸준한 운동과 식습관, 일정 관리를 통한 건강 관리는 필수다.


전문인으로서의 품위

"선생님, 이상한 사람들 많아요. 멀쩡한 와인도 상했다고 불평하고, 반말하고 욕하고. 참기 힘들 때가 많아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회의가 들어요."

와인에 매료되어 짝사랑을 시작하고 실력 있는 소믈리에가 되겠다고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현실에서 좌절을 겪고 실망할 때가 많다. 멀쩡한 와인이 문제가 있다고 우기거나 취기가 올라 적절치 못한 행동을 보이는 고객도 있다. 고객이 와인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직접 와인을 시음해보고, 와인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왜 고객이 그렇게 느끼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고객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자.

그래도 고객이 계속 같은 주장을 한다면 의견을 존중하여 신속히 바꿔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객에게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 당신 입맛이 틀렸다’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다.

물론 필자가 레스토랑이나 와인바, 샵에서 고객을 마주하고 서비스해 본현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많은 힘든 상황을 다 헤아릴 수 없고, 따라서필자의 말이 주제넘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힘든 상황이 비단 업장에서만 일어날까? 또한 제아무리 고상해 보여도 와인도 근본적으로 알코올 음료이다. 과다한 음용으로 인한 취기와 그로 인한 지나친 취중 언행이 와인을 마신다고 없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으로 마음이 지쳐있다면, 매일 거울 앞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이런 암시를 걸어보자. “나는 단순히 와인 잔에 와인을 따라주는 기계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와인을 사랑하고 내 일을 즐긴다”라고.


능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외국어 실력

"와인 공부는 할 만한데, 영어는 금방 늘지 않네요. 정말 답답해요."

부푼 꿈을 안고 와인 공부를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필자가 와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어학 실력이다. 와인 회사의 마케터나 브랜드 매니저, 소믈리에, 혹은 와인 강사나 와인 칼럼니스트 등 모든 경우에 외국어를 하나 이상 구사할 수 있으면 자기 능력을 몇 배로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와인 지식은 풍부하지만 외국어를 능숙하지 않아 고생하거나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았다.

와인은 외국에서 들어온 식문화이므로 외국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외국어 실력은 단기간에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매일 테이스팅을 통해서 와인 실력을 키워가듯이, 꾸준히 성실하게 계속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


시음 훈련과 전달 능력

필자는 청양 고추를 즐기지 않는다. 자칫 매운 맛이 오래 지속되어 혀가 얼얼해지고 한동안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와인 테이스팅 능력을 키우기 위해 특별히 훈련하지는 않지만 너무 자극적인 음식이나 양념은 피한다. 대신 음식을 만들 때 여러 가지 식재료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 본다. 주변의 여러 가지 냄새에도 신경을 집중시키며 기억해두려 노력한다.

와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려면 와인뿐 아니라 음식을 테이스팅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많이 알아도, 많이 시음해보는 것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시음도 그냥 마시기만 하면 의미가 없다. 언제든 뇌의 기억으로부터 꺼내볼 수 있도록 시음 노트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와인 업계에서 일할 때에는 진지하게 와인에 접근하는 태도가 요구된다.반면 와인의 스타일이나 특징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설명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업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와인에 대한 정보를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요약해서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끝은 없다. 배움만 있을 뿐

비록 와인을 강의하는 입장이지만, 와인의 세계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관련 지식도 항상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방대한 와인의 세계를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상황마다, 와인 병마다 달라지는 와인의 맛에 대해 어떻게 항상 내 감각이 옳다고 우길 수 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와인 상식이 옳을 수도 있고 오랫동안 훈련된 감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항상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시음 감각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냥 즐기는 것이라면 부담 없지만, 와인을 업으로 삼을 때에는 그 복잡함과 방대함에 때로 자신감을 상실하기도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차근차근 와인 산지의 지도를 짚어가며 새롭게 와인을 만나보자. 와인 양조를 공부하며 누룩 냄새 가득한 양조장도 상상해보고, 태양이 작렬하는 한여름 지중해의 열기를 흠뻑 빨아들여 서서히 익어 가는 포도 열매도 눈앞에 그려보자. 그런 과정 속에 와인에 관한 이해가 쌓여가고 더 깊은 애정이 쌓일 것이다.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된다면 와인 교육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알고 있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어보며 때론 자신이 무얼 잘못 알고 있는지 깨달을 수도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이렇게 공부한 내용들은 현장에서 응용될 수 있도록 ‘살아있는 지식’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믈리에 자신의 일부분처럼 항상 지니고 다니는 와인 오프너와 같이, 이 지식들은 몸에 딱 맞는 옷마냥 필요한 상황에 적절히 재구성하여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필자와 상담을 원하는 이들 중에는 취업 전에 아예 유학을 다녀와서 모든 조건을 제대로 갖추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와인은 실용 학문이고 현장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 학원이나 학교, 혹은 외국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특히 해외로 공부하러 가는 경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와인만 아는 것은 절반만 아는 것

와인은 식문화의 일부이다. 과음하지 않고 적절하게 와인을 즐기기 위해서는 음식이 주가 되고 와인은 곁들여 마시는 모양새가 바람직하다. 와인 강의를 할 때, 와인 샵에서 와인을 팔 때, 혹은 레스토랑에서 손님에게 와인을 추천할 때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와인 스타일에 어울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것을 아껴가면서 와인에 돈을 쓰듯이, 음식 경험에도 지갑을 여는 것도 필요하다. 음식과 와인의 매칭을 잘 터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식재료를 직접 다루면 그 특성이나 식감을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요리 방법이나 곁들일 와인에 대한 아이디어도 떠올릴 수 있다.


마치며...

와인교육을 하다 보니, 와인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이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 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자주 듣게 된다.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필자 스스로 부족하게 느껴지고 분명한 해결책이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던 시행 착오는 있을 수 있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나 미련도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덧붙이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와인을 만나 그 매력에 빠져든 이후 지금껏 와인업계에 종사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도, 고민도 많다. 그래도 꿈을 가지고 이 일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은, 까탈스럽고 복잡하지만 끊임없이 매력을 보여주는 바로 그것, 와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때문인 것 같다.





글쓴이 _ 이인순ㅣWSApdp (Wine & Spirits Academy) 교육원장 및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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