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있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글, 사진 고재윤
금년 무더운 여름날 샹파뉴 중심 도시인 랭스(Reims)와 에페르네(Epernay)를 찾았다.에페르네에서 랭스에 이르는 지역은 `샴페인가도 (Les Routes du Champagne)`로 샴페인의 재료가 되는 포도가 재배되는 곳이다.
에페르네의 남쪽 낮은 산 언덕 정상에서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있다. 성모상밑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고 가끔씩 가족, 연인들이 꽃을 헌화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성모상이 포도밭 위에 우뚝 서있으면서 샹파뉴 지방을 지켜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50명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마을을 떠나자, 에페르네 시민들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께 매일 기도를 드리면서 젊은이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면 에페르네 산언덕에 예수를 안은 성모상을 세우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어린 기도에 감동한 것일까.전쟁이 끝나자 50명의젊은이들모두 고향으로 귀환하였고, 이들은포도밭을 가꾸면서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성모마리아에게 약속한 대로 언덕위에 성모상을 세웠다. 지금까지도시민들은 성모상에 헌화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샴페인이 잘 양조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프랑스 보르도나 부르고뉴 지방에도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와이너리나 샤토(chateau) 입구 혹은포도밭 중앙에세워져 있기도 하고, 유명한 와인 글라스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십자가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 교도의 신앙을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렇다면 와인과 예수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아마도 성경책에 520번 이상 와인과 포도밭에 비유한 구절이 나오며, 와인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와인의 발상지 중 하나인 그루지아는 8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였는데, 서기 326년 그루지아에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 전파한 성자 니노(St. Nino)가 포도나무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어서 만든 십자가를 모셔 온 것이 포도밭의 최초의 십자가라고 추측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일본, 홍콩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그랑크뤼 와인 중 하나인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린쉬 바쥬(Chateau Lynch-Bages)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샤토에 진입하기 위해 입구에 도달하였을 때 도로 왼편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상을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에성호를긋고 잠시 묵상을 하였다.
가난한 자의 무통 로칠드(Poor man’s Mouton Rothschild)로 불리는 샤토 린쉬 바쥬.5등급 그랑 크뤼 와인이면서도 특 등급 그랑크뤼 와인처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샤토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상의 은총을 받은 신의 와인이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샤토 오브리옹을 방문하려 했다가공사 중인 관계로 길 건너의 샤토 라 미송 오브리옹(Chateau La Mission Haut-Brion)을 방문한 적이 있다.
와인라벨에서 십자가와 미송(미션, Mission)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는 가톨릭과 어떤 연관이 있겠지라고만 생각하였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십자가가 매달린 아치형의 입구를 지나서 30명 정도모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자그마한 성당에 다다르자 이 샤토와여기서 생산되는 와인에 대해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황금 언덕인 코트 도르 (Cote-d`Or)를 떠올리면몇 번씩 가도 또 가고 싶은 포도밭이 있는데, 바로 로마네 꽁티(Romanee Conti) 포도밭이다.
세계의 최고급 와인을 양조하는 로마네 꽁띠 포도밭에는 로마네 꽁티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서있는데, 그 십자가를 마주하고 서 있노라면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 관광이 아니라 성지순례를 하는 것같은 착각이 들정도이다.
로마네 꽁띠를 양조하는 본 로마네 마을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마을’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예수님의 와인’으로 신주(神酒)라고 부르고 있다.
포도나무는 버려진 척박한 땅에서 자라며 가뭄과 강렬한 태양을 극복하고, 오직 포도송이를 잉태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통을 인내한다.
이런 점에서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사랑을 받은 포도송이는어린 양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성모상이나 십자가가 있는 포도밭이나 와이너리에서 만들어지는와인은어쩌면 더욱 깊고 신비스런 맛과 향을 지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르도의 유명한 페트뤼스(Petrus)와인의 라벨에는예수의 제자이면서 교황 1세를 지낸베드로의 형상이 그려져 있지 않은가!
글쓴이 _ 고재윤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공동 회장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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