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역사 속에서 태어난 Clos de Vougeot
‘부르고뉴에서 포도밭 하나로 시작된 시토 수도원의 재산은, 코트도르를 따라 본, 포마르, 뉘, 코르통 등 뛰어난 품질의 와인 생산지까지 불어났다. 1100년에서 1336년 사이에 시토 수도원이 부조에서 사들이거나 선물로 받은 크고 작은 포도밭은 수십 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1336년에 이 땅들을 하나로 연결시키자 495,876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르고뉴 지방 최대의 포도밭이 탄생했다. 이 포도밭 주변을 에워싼 돌담, 클로 드 부조는 훗날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와인을 가르키는 이름이 되었다.’
-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 로드 필립스 지음> 중에서
부르고뉴의 수많은 포도밭을 지나는 N74 도로를 가다 보면 도로 변에 위치한 Clos de Vougeot 포도밭이 눈에 띤다. 이 Clos de Vougeot 는 부르고뉴의 그랑크뤼 포도밭 중에서도 Corton, Corton-Charlemagne 포도밭 다음으로 면적이 크고(50.5ha/166,650평) 무려 107 개의 작은 클리마로 조각나 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82명이 이 포도밭을 각각 나눠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 도로 옆으로 펼쳐진 그랑 크뤼 포도밭, Clos de Vougeot
위에서 언급했듯이 Clos de Vougeot 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까지 시토 수도원의 소유였다가, 이후부터 소유주가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1889년에 처음 6명의 소유자가 포도밭을 나눠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그 6명이 15명으로, 마침내 80명이 되어 평균 0.6ha(1,980평)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Clos de Vougeot 의 토양은 복합적인데, 겉보기에도, 배수에도 차이가 있을 정도다. 게다가 모두 다른 소유주에, 각각 와인 메이킹 스타일도 달라서 와인들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다. Clos de Vougeot 와인은 우아하고 ‘good balance’ 를 가지는데 체리와 블랙 베리, 블랙 커런트의 풍미가 집중적으로 나고 매우 단단한 구조를 가져 장기숙성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1976년 Clos de Vougeot 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산도와 타닌, 당도 모두 뛰어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우아한 풍미를 가득 풍겼다.
Clos de Vougeot의 유명한 탑, Château de la Tour
오전 10시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머리 위에서 불을 내뿜기 시작할 때 우리는 Clos de Vougeot 포도밭 안에 위치한 Château de la Tour 를 방문했다.
1975년부터 Jacqueline Labet 와 Nicole Déchelette 자매가 소유하게 된 Château de la Tour는 Clos de Vougeot 에서 제일 큰 도멘으로 5.48ha(18,084평)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멘들은 거의 살림집이 함께 있거나 특징 없는 집처럼 보이는 양조장과 셀러였는데, 이 Château de la Tour 는 돌로 만들어진 성으로 소박함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성 주위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 따로 포도밭을 찾아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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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만들어진 성, Château de la Tour | ▲ 성 앞에 위치한 Clos de Vougeot 포도밭 |
우리를 맞이한 François Labet 는 J. Labet 의 아들로 현재 Château de la Tour 의 와인을 책임지고 있다. 인사를 나눌 때, 사업가 같은 인상은 받았는데… 몸에 배인 정중한 태도, 세심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배려 등에서 후계자 수업을 잘 받은 재벌 2세의 모습이 엿보였다.
Château de la Tour 의 와인은 1901년부터 모두 유기농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25~27℃에서 저온 발효를 하고 부분적으로 새 오크를 사용한다고 한다. 2차 발효를 하는 시기에는 거의 매일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을 점검한다고 덧붙였다.
이 도멘에서는 Clos de Vougeot 와인 외에도 Beaune에 있는 그의 아버지 Pierre의 도멘에서도 와인을 생산하는데 Beaune Les Marconnets Rouge 와 Blanc, Bourgogne Rouge와 Blanc, Savigny-lès-Beaune 1er Les Vergelesses blanc 등이다. 우리는 따로 마련된 시음 장소에서 Clos de Vougeot 와인과 함께 이 와인들도 시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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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 2층에 마련된 테이스팅 룸 | ▲ 와인 에티켓을 가지고 만든 타일 |
그랑 크뤼 Clos de Vougeot 와인은 2001, 2003, 2004 빈티지를 시음했는데, 구조적으로 탄탄하고 과일의 풍미가 강렬하며 집중적인 느낌을 받았다. 2003 빈티지의 경우도 산도가 약해 푹 퍼지는 느낌이 들었던 다른 부르고뉴 와인들과는 다르게 단단하고 힘이 응축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Vieilles-Vignes 인 경우, 약 9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고 해 Château de la Tour 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 그랑 크뤼 와인들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시기가 10년이라 본다면 이 Clos de Vougeot 와인은 그보다 5년은 더 있어야 한다며 Aging Potential 이 크다는 것을 강조했다.
비록 와인들은 아직 어렸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과일의 풍미도 매우 강한 느낌을 받았다.
▲ Clos de Vougeot 포도밭 안에 자리잡은 Château de la Tour
Clos de Vougeot, Vieilles-Vignes 와인은 부르고뉴 명주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와인이다. 하나의 위대한 와인은 역사적 배경과 테루아르의 축복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함께 해야만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베스트와인 에디터 박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