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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호텔 바로 뒤에 있는 '튈르리 공원'을 산책하고,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 유명한 카페 마를리(Cafe Marly)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카페 마를리는 대리석으로 벽기둥을 장식한 웅장한 나폴레옹 3세 시대의 양식이다.

이 집의 자랑은 아침 세트 메뉴인데, 막구워 따뜻한 바게뜨에 크롸상, 뺑 오 쇼콜라, 뺑 오 레젱(건포도빵)등 4가지 빵과 카페오레, 과일 주스에 12유로이다. 배가 불러 혼자서는 다 못먹을 정도의 양이어서 커피 한 잔만 더 시켜 둘이서 나눠 먹으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빵은 다 맛있었지만 특히 바게트가 예술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작은 해프닝이 일어났다. 내가 종업원에게 무심코 커피 리필이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처음엔 잘 못 알아듣더니 알았다며 가더니, 커피 한 잔을 새로 내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프랑스에서 커피를 무료로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예의에 ?齋參ご?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아 서둘러 내가 설명했다.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리필이 많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래도 이녀석이 계속 "자기네 격조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강변하지 않는가.


좀 기분이 나빠진 나는 새로 가져온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고 계산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좀 있으니 다른 종업원이 와서 아무 문제 없다고 커피 더 마시라고 했다. 이녀석은 아까 종업원과는 달리 굉장히 친절했다. 그래도 '예의 바르지 않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나는 끝내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냥 나왔다.

오전을 프낙(FNAC 서점)에서 보내고 와인 관련 서적 두어권을 산 다음 점심식사로 간 곳은 '미라마(MIRAMA)'라는 셍미셀 거리에 있는 중국식당이었다.

가게 쇼윈도우에 바베큐된 오리(Canard Laque)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광동식 요리(Cantonese Style)라고 입구에 쓰여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북경식 오리요리(베이징 덕) 같은데, 또 그러고 보니 홍콩이나 광동지방에서 많이 먹는 요리인 것도 같다. 이 집에서 유명하다는 베이징덕 라면과 베이징 덕 그리고 볶음밥을 COTE DU RHONE과 함께시켰다.

대학가 식당에서 파는 와인이 주로 COTE DU RHONE인 것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내 입 맛이었다. 당시에는 좋다고 먹던 COTE DU RHONE이 왜 이렇게 묽고, 밍밍하고 거칠게 느껴지는가.

와인에 비해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다. 소문난대로 베이징덕은 입에 짝짝 달라 붙었고, 볶음밥도 부드러운 소고기가 큼지막하게 썰어들어가 정말 맛이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노부부는 15일마다 꼭 오는 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에 오면 새우 만두탕을 꼭 먹어 보라고 한다. 가격도 베이징 덕 한 접시에 10유로이니 우리나라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맛은 두 배 이상이었다.(파리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강추입니다요.^^)

식사후, 파리에 와서 아무래도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은 가보아야 할 것 같아 그 곳으로 향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아시다시피 역을 개조해서 바닥은 역 플랫폼을 연상시키고, 천정은 투명유리 돔으로 되어 있어 전시장내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너무도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로댕의 지옥문, 지난번 덕수궁 전시회때 들어오지 않았다는 밀레의 만종, 드가의 발레수업, 고흐의 자화상, 모네의 수련, 모딜리아니의 폴 기욤의 초상, 뚤루즈 로트랙의 무랑루즈등 주옥 같은 미술품들을 보던 아내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즐거워했다.

특이하고 아름다운 내관, 알찬 작품들, 그리고 관람하기 편한 심플한 구조등은 복잡하기만 한 루부르 박물관 보다 훨씬 만족감을 준다.


미술관 3층에는 세느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커피숍이 있는데, 너무 배가 불러 갈 수가 없었다.

미술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와인샵을 보러 다녔다.

처음 간 곳은 고급 와인샵들이 몰려 있는 마들렌느 광장 주변.
포숑(Fauchon)이나 에뒤아르(eduard)는 고급와인은 무척 많으나 가격 또한 엄청나게 비싸다. 특히 포숑 지하 까브에 가면 올드 빈티지 와인들이 눈을 사로 잡는다. 마들렌느 니꼴라(Nicolas) 역시 동네가 동네인지라 만만치 않았고, Korean Air옆에 있는 라비니아(Lavinia)가 파리에서 꼭 한 번 가볼만 한 와인샵이다..

매장 규모나 와인의 다양성 면에서 탁월하였고, 진열 또한 예술이어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아마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격은 물론 그렇게 싸지는 않으나, 프랑스의 다른 와인샵과는 달리 전세계 와인이 총망라 되어 있고(프랑스에 있는 와인샵들은 거의 프랑스 이외 나라 와인은 찾기 힘들다), 프랑스 와인은 올드 빈티지들도 많았다. 가격을 예로 든다면 CH.MARGAUX'90이 736유로(약 100만원), DRC의 RICHEBOURG'96 이 400유로(약 56만원)이다.

저녁 식사를 위해 오기 전부터 기대했던 베르시 마을(Bercy Village)로 갔다. 베르시 마을은 19세기 와인 저장고가 늘어서 있던 꾸르 셍떼밀리옹(Cour Saint-Emilion) 구역을 최근 지하철 14호선이 개통된 후 새로 쇼핑 거리로 개발 한 곳이다. 지하철 14호선은 완전 자동 시스템으로 운전사가 없고, 빠르기도 하여 파리 중심에서 교외에 있는 베르시까지 불과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베르시 마을에는 두군데 주목할 만한 와인 레스토랑이 있다. 샤이 33(CHAI 33)과 니꼴라(Nicolas)가 그 곳이다.

두 곳 모두 와인샵 겸 레스토랑인데 와인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며, 중요한 것은 샵에서 와인을 고르면 식당으로 갖다 준다는 것이다. 이 식당 또한 간단한 안주거리만 파는 식당이 아니고 정식으로 식사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갖춘 곳이다. 말하자면 '코키지' 없이 와인을 가져갈 수 있는 식당인 셈이다.


샤이 33과 니꼴라는 분위기가 다소 틀리다. 샤이가 좀 더 세련되고 고급이라면 니꼴라는 서민적이고 정감있는 분위기이다. 가격은 물론 샤이가 비싸다. 어디로 가야할 지 별로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니꼴라에 사람이 훨씬 붐비었기 때문이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내가 와인을 고르려 지하로 내려 갔다. 주로 부르고뉴 쪽을 보았는데 종류가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와인들이 꽤 있었다. 그 중 ANTONIN GUYON의 CORTON BRESSANDES GRAND CRU'97을 골랐다. 가격은 80유로. CORTON BRESSANDES는 LE CORTON과 CORTON RENARDE, CORTON CLOS DU ROI등과 함께 부르고뉴 BEAUNE 지역에서 나는 레드중 몇 안되는 GRAND CRU이다.

내가 이 와인을 고르니 소믈리에가 "디켄팅을 약 2시간 해야 좋은데 지금 마셔도 괜찮겠냐?" 고 물어 본다. "밥 안먹고 지금부터 두시간을 기다릴 순 없다"고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음식메뉴는 10여가지가 있는데 거의 12유로 내외로 상당히 부담없는 가격인 것 같았다. 난 프와그라를 먹어보고 싶어 그것을 시키고 아내는 염소치즈와 야채를 섞은 '기슈'를 시켰다.

와인은 생각만큼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향은 부르고뉴답게 체리, 자두향이 났으나 그렇게 우아하고 섬세한 향이 나진 않았으며, 맛은 탄닌이 다소 거칠고 뒷맛도 약간 쓰다. 아무래도 COTE DE NUIT 쪽이 아니고 남쪽인 COTE DE BEAUNE 지역 와인이라 좀 덜 세련되고 좀 더 강한 모양이다. 물론 내가 SAUTERNE와 어울릴 프와그라와 함께 먹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와인 리스트를 보니 GRUAUD LAROSE'90이 117유로, PALMER'86이 160유로이다. 이 집은 와인 가격이 싸고 음식값도 저렴하여 꼭 다시 오고 싶은 집이다. 다만 음식맛을 너무 기대해서는 안되겠다.

그 때 우리 뒷 편 좌석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들이 나가면서, 그 중 한 할아버지가 우리 자리에 오더니, "축하한다. 이렇게 좋은 와인을 마시게 된 것을… 난 이와인을 잘 안다. 난 이 마을(BEAUNE)에 살며 GUYON은 내 친구다." 라고 웃으면서 얘기한다. 내가 이 말을 아내에게 전했더니 와인맛이 기대보다는 별로라고 다소 가라앉아 있던 아내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즐거워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분위기 띄어 주고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나 보다.

- 정 재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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