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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첫째날

파리에서의 와인투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Chateau나 Winery는 아니고, 주로 파리에서 이름난 Wine Bar, Wine Shop, Restaurant들을 대상으로 해서다. 보르도나 부르고뉴등 산지순례에 비해 보잘 것이 없을지, 아니면 파리에서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3년 5월 1일 아내와 둘이서 짧은 4박 5일을 계획하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르와시 버스(Roissy bus)를 타고 오페라 하우스(L'Opera)까지 직행했다. 호텔은 돌아다니기 편하게 오페라 근처 셍또노레(Saint-Honore) 거리에 잡아 놓았었다.

비행기가 다소 연착하여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8시.
첫날부터 프랑스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 가서 식사하기에는 아내가 여독으로 인해 좀 피곤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첫 식당으로 정한 곳은 오페라 근처에 있고, 우리 입 맛에도 맞는 일본 음식점이었다.
호텔에서 5분도 걷지 않아 삿뽀로라는 일본식당을 셍또노레 거리에서 발견했다.

규모가 그다지 큰집은 아니었지만 2~3팀 정도가 서서 기다리는 걸로 봐서 꽤 괜찮은 집처럼 보였다.


두 명이라 금방 자리를 잡고 메뉴를 보니 스시나 사시미 전문집은 아니고 우동, 라멘, 돈까스, 덧밥등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다. 아내와 내가 평소 좋아하는 소유(간장) 라멘, 교자, 일본식 소고기 야채볶음을 시켰다.

와인이 있나 해서 주류 메뉴 쪽을 쓰윽 보니, 와인은 딱 한가지 Cote du Rhone이 있었다. 와인 시키기를 포기하고 대신 사케를 주문하니, "Hot or Cold ?" 라고 묻는 것이었다. 파리에서의 봄날씨는 아직은 좀 차가운 듯 하여 더운 사케를 주문하였다. 앙증맞은 돗구리에 나온 따뜻한 사케는 쌀쌀한 날 '아페리티프'로는 제격이었다. 추운날 따끈한 사케, 더운 여름날 차가운 사케, 이것이 사케의 묘미인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끝내니 딱 10시. 먼 異國에서 바로 잠을 자기에는 아무래도 좀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2차로 찾아간 곳이 마들렌느 광장에 있는 와인바 '레끌뤼즈(L'Ecluse)'였다.

빠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와인바중 한 곳인 이 곳도 이미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갸르송(Garcon 식당 종업원)이 묻는다. 흡연석입니까, 비흡연석입니까?(Fumeur ou Non Fumeur?)


원래 식당에서의 흡연은 무척 자유로운 프랑스지만, 와인의 향기를 맡아야 하는 와인바는 아무래도 좀 다른 것 같다.

자리를 잡고 드디어 음식 메뉴와 함께 와인리스트를 받아 보았다.

와인바라도 여러가지 식사류와 프와그라를 비롯한 각종 안주류 수십가지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 와인바와는 좀 다르다.

와인바에서는 가벼운 안주와 함께 주로 와인만 마시는 우리나라 와인바 문화는 일본에서 온 것일까?
와인 리스트를 보니 잔으로 파는 와인과 병으로 파는 와인들로 나뉘어져 있다.
잔으로 파는 와인 수는 어림잡아 30가지 정도. 병으로 파는 와인 수는 약 100여가지 정도로 보였다. 얼른 부르고뉴 와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종업원에게 부르고뉴 와인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자기네 집은 보르도만 취급한다고 한다.

병으로 파는 와인들을 쓰윽 훑어보니, CHATEAU LATOUR'95, CHEVAL BLANC'88, PETRUS'93, LEOVILLE LAS CASES, DUCRU BEAUCAILLOU, COS D'ESTOURNEL 등이 이 집에서 최고 수준의 와인들이다. 그러나 가격들은 만만치 않았다.


LATOUR'95가 638유로, CHEVAL BLANC'88이 364유로, DUCRU나 COS가 165유로 정도였다. 특히나 요즘 유로가 올라 1유로가 1400원(5월 1일 기준)정도이니 빈티지를 감안 하더라도 그리 싼 편은 아닌 것 같다.


잔으로 파는 와인은 그다지 수준 높은 와인은 아니었다.
주로 잔당 5유로에서 15유로 사이였는데 가장 비싼 와인이 CH.DASSAULT(SAINT-EMILION)를 비롯 2~3종류가 15유로였다.


이 날 마신 와인은 총 4잔. CH.CAMENSAC'94(12유로), CH.DASSAULT'97(15유로), CH.BATAILLEY'97(12유로), CH.LAROSE'94(12유로) 였다. 잔은 리델 보르도 잔 보다 약간 작은 잔에 2/3정도 채워 주었다.

안주로는 모듬 치즈를 시켰는데, 10유로에 둘이서 실컷 먹고 남길 정도로 푸짐하게 나왔다. 치즈 종류는 까망베르, 로크포르, 에망딸, 쉐브르등 4가지 였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치즈와 함께 약간의 과일이 곁들여서 나온다는 것이다. 얇게 썰은 사과와 청포도 몇 알, 그리고 약간의 셀러리였다.
까망베르등은 우리나라에서 먹을 때보다 훨씬 맛이 강했다.
그 꼬롬한 맛이 코를 찔러 평소에 먹던 아내는 도저히 못먹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프랑스 내수용과 수출용이 다른 것 같다. 아니면 우리나라에는 프레지당(President)등 비교적 쉬운 것들만 수입이 되는지도…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런 독한 치즈들도 사과와 함께 먹으니 그 꼬롬한 맛이 한결 덜하고 맛이 부드러워졌다.
이 비법을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아내와 난 좋은 것 한가지 배웠다고 즐거??했다.

와인 맛에서 특이했던 점은 CH.BATAILLEY'97에서 LYNCH BAGES에서 나는 야생동물향 또는 동물가죽향(다소 역겨워 난 이것을 쉰걸레 냄새라고 한다.)이 똑같이 났다. 오히려 PLUM(말린 자두)향에 약간 비린맛이 나는 셍떼밀리옹 와인(DASSAULT와 LAROSE)에서는 싱그러운 과일향이 났다.

이 날 갔던 '레끌뤼즈' 와인바는 개인적으로는 좀 실망이었다.


첫째 부르고뉴나 론 등의 와인이 전혀 없고 보르도 와인 밖에 없었으며, 둘째 잔으로 파는 와인의 수준도 기대에는 못미쳤다.
하지만 실내 분위기나 음식, 종업원의 친절도, 시내 한가운데 있는 위치(마들렌느 광장)등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와인바라고 아내는 얘기한다.

- 정 재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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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 베스트와인)
정재후씨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리옹의 그랑제꼴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셨습니다. 지금은 SK증권에서 근무하시며 와인 동호회 '비나모르'의 시삽을 맡고 계신 열혈 와인 애호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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