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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피노 누아, 당신을 보여주세요 !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그런 건 곧 나아’
‘낫기 싫어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어느날 갑자기 씌워진 사랑의 콩깍지 때문에 눈이 멀고 귀가 멀어도 행복하다. 가슴이 무너질 정도로 괴로워도 사랑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순박한 우편 배달부의 대사에서 피노 누아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제49차 와인 아카데미에서는 피노 누아와 사랑에 빠진 애호가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 9가지를 시음했다. 고향인 부르고뉴에서 먼 칠레와 뉴질랜드까지 피노 누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피노 누아에 매력은 무얼까... 와인을 소재로 삼아 유명했던 영화 ‘Sideways’의 마일즈는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재배하는 사람의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줘야 하는 그런 점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래서 일까요, 피노 누아는 세상에서 정말로 선택 받은 포도원 한 켠에서만 자라잖아요. 또 피노 누아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땀과 노력을 보낸 사람만이 피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하듯이 최고의 인내심과 너그러운 마음을 품은 와인메이커만이 좋은 피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향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을 무언가 동경하게 하고 찬란한 느낌에 빠지게도 하고, 때론 소름 끼치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꼭 온 세상의 처음을 보는 것 같아요"

자신의 모습을 루비같이 빛나는 피노 누아 와인에 투영시키며 예찬하는 마일즈는 단단히 사랑에 빠진 듯 싶다. 피노 누아는 자타가 공인하는 까다로운 품종으로 늘 와인 메이커를 노심초사하게 하며 애호가들에겐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

조생종인 피노 누아는 더운 지역에서는 살 수 없다. 건조하지 않고 습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선선한 기후를 좋아한다. 그래서 약간 추운 대륙성 기후 지역이나 덥지 않은 북반구의 서늘한 지역이 피노 누아에겐 맞는다. 피노(Pinot)는 미세하다는 뜻으로 피노 누아 포도송이는 포도알이 매우 촘촘히 붙어있다. 누아(Noir)는 검다는 뜻이지만 껍질이 얇은 특성 때문에 와인의 색은 옅고 광택이 난다.

타닌 함량은 높지 않고 산도는 까베르네 소비뇽 등에 비해 높은 편이며 미디엄 정도의 바디를 가지며 비교적 숙성이 빠르다. 피노 누아의 향은 다양한 베리류, 체리, 까시스, 민트 등 매우 부드럽고 풍부한 과일 향에 흙(Earthy) 냄새 등을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숙성 후엔 버섯, 버찌, 향신료, 가죽향 등 미묘하고 복합적인 향을 느낄 수 있다.

[주요 품종별 성분 비교 분석]

포도 품종 포도송이 중
줄기의 비율(무게%)
포도송이 중
씨의 비율(무게%)
즙안의 산도
(%)
즙안의 당도
(%)
즙안의 타닌
(%)
피노 누아 2.1 5.3 6.31 21.34 3.40
까베르네 소비뇽 2.8 8.6 5.81 20.48 4.70
메를로 2.4 6.7 6.05 20.20 4.64

위의 표를 보면 포도 자체의 타닌 비율이 적고 줄기나 씨의 비율 또한 다른 품종에 비해 낮아 타닌이 약하고 산도가 높음을 바로 알 수 있다.

피노 누아는 다른 품종들에 비해 재배 분포도가 넓지 않다. 프랑스의 부르고뉴에서는 레드 와인의 단일품종으로 사용하며 샹퍄뉴 지방에서는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재배한다. 알사스에서도 피노 누아 품종을 재배한다. 독일에서는 슈페트부르군더(Spatburgunder), 이태리에서는 피노 네로(Pinot Nero)라는 이름으로 재배되어지고 있다. 신세계로 넘어가면 미국의 남부 캘리포니아와 오레곤 특히 윌러밋 계곡, 칠레에서 비교적 서늘한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의 3대 주요 포도 재배 지역인 말보로, 호크스 베이, 그리고 지스본을 중심으로 다른 레드 품종보다 많이 재배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선선한 지역인 야라 밸리와 타스마니아에서 재배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 와인들은 쌍둥이처럼 언뜻 비슷해보여도 그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한다. 신세계의 피노 누아 와인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고 무거운 바디감을 느끼게 해서 보르도 스타일 와인에 길들인 애호가들이 입문할 때 적당하다. 블랜딩 위주의 무거운 와인에 길들인 애호가들에게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경쾌하고 부드러운 과일의 향과 맛은 좀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과 1-2년 전까지 피노 누아 와인은 국내 와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보르도 스타일 와인의 인기와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우리의 입맛 등등으로 피노 누아 와인은 물 같은 와인으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와인에 대한 관심이 커져 부르고뉴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 와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고 헤어나오기도 싫은 피노 누아의 세계를 만끽해 보자.

시음와인 소개

1. Clos du Bois Pinot Noir 2003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 와인으로 특유의 밝은 루비색, 오크의 영향으로 구운 향과 체리향을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운 과일 맛이 인상적으로 지금 마시기 좋은 와인


2. A to Z Wineworks Pinot Noir 2003
오레곤 월러밋 밸리의 피노 누아 와인. 처음에 가벼운 베리류의 향들이 코를 찔렀고 신맛이 강한 편이라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았다.


3. Bethel Height Pinot Noir 2003
두 번째 와인처럼 오레곤 월러밋 밸리에서 온 피노 누아. 검은 과일류의 향이 매우 강했고 미디엄 바디지만 힘있고 강한 성격을 보여줬다. 좀 일찍 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4. Palliser Pinot Noir 2002

뉴질랜드 Martinborough의 와인으로 젖은 나무 뿌리나 낙엽, 이끼 느낌이 나는 Earthy한 향이 강했다. 푹 익은 체리향도 뒤따라 왔지만 맛은 오히려 부드러운 단맛이 났다. 지금 마시기 무난한 와인.


5. Yering Pinot Noir 2002
호주 야라 밸리의 와인. 들꽃향과 스파이시한 과실의 향, 오크의 구수한 향 등 아로마가 매우 복합적이다. 맛은 풍부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6. Bourgogne Rouge 2002, Domaine Roulot
굳게 닫혀진 성문처럼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와인으로 톡 쏘는 과실의 향이 미묘하게 스치고 말린 자두향도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느낌을 주는 와인.


7. Mercurey Rouge 1999, Faiveley
유명한 부르고뉴의 네고시앙이 만드는 와인으로 체리 같은 과실의 향이 풍부하고 오크향도 느낄 수 있다. 섬세함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8. Montes, Limited Selection Pinot Noir 2004
칠레 피노 누아 와인으로 피노 누아의 특징을 살리기 보다는 ‘몬테스’라는 와이너리의 스타일이 잘 드러났다. 잘 익은 딸기와 베리류의 향이 진하고 약간 무거운 듯한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와인


9. Cono Sur, 20 Barrels Limited Edition Pinot Noir 2002
같은 칠레 피노 누아 와인이지만 또 다른 맛을 선사했다. 블랙체리, 서양자두, 가죽 등의 향이 복잡했지만 맛은 매우 직선적이며 알코올 느낌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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