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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보르도 와인이 한국 음식을 만났을 때

그동안 웰빙 무드를 타고 퍼진 와인의 인기는 한식당에서도 쉽게 와인 리스트를 볼 수 있고 마트에서도 쉽게 와인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서양처럼 우리 식탁에 와인이 빠질 수 없을 정도로 어울리는 걸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29일, 보르도 포도주 협회(CIVB-Conseil Interprofessionnel des Vins de Bordeaux)의 크리스티앙 델쁘(Christian Delpeuch) 회장과 조선왕조궁중음식(무형 문화재 38호) 기능이수자이며 한국음식 전문가인 한복선 선생이 궁중음식 전문점 <지화자>에서 한국음식에 잘 어울리는 보르도 와인 찾기를 시도했다.

이날 선택한 코스 요리는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궁중요리이며 와인은 총 6가지로 준비되었다. 그리고 와인은 델쁘 회장이, 요리는 한복선 선생이 맡아 설명하여 동서양의 조화를 이뤘다.

▶크리스티앙 델쁘 회장과 한복선 선생


1. 구절판과 Château Bonnet 2002, Entre-deux mers(샤또 보네 2002, 앙트르 드 메르)

불필요한 양념은 모두 빼고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살린 쇠고기와 여러가지 야채를 얇은 밀전병에 싸서 먹는 구절판은 그야말로 담백 그 자체로 드라이 화이트 와인, 샤또 보네와 잘 어울렸다. 신선한 와인의 맛은 살짝 익힌 야채의 맛을 더욱 돋궈주고 입 맛을 당기게 했다. 또한 델쁘 회장은 전채요리 중 하나인 대하잣즙냉채와도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고소한 잣과 새우의 쫄깃한 육질이 이 와인의 드라이하고 깔끔한 신맛과 잘 맞았다.

2. 전유화(파전)과 Château Parenchère 2001, Bordeaux
Supérieur (샤또 빠랑쉐르 2001, 보르도 쒸베리외르)

파와 해물을 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지진 파전은 대중적으로 즐기는 음식으로 샤또 빠랑쉐르와 잘 어울렸다. 아무래도 파전은 기름의 느끼함을 피할 수 없는데, 보르도 쒸베리외르의 와인들이 가진 부드러운 탄닌과 과일 맛이 기름진 맛을 덜어주며 부드러운 질감 또한 잘 살려준다. 그리고 각종 재료를 하나씩 전으로 부쳐 다시 육수와 함께 끓여먹는 신선로도 산도와 탄닌이 강하지 않고 먹기 좋게 부드러워, 파전처럼 잘 어울렸다.


3. 갈비 새송이 구이와 Château de Pez 2000, St-Estèphe (샤또 드 뻬즈 2000, 쌩떼스떼프)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 중 하나인 갈비구이는 양념의 맛이 진하고 풍부하며 질감 또한 부드러워 메독 특히 쌩떼스떼프 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정평이 나 있다. 구조가 잘 짜여져 있고 비교적 센 탄닌을 느낄 수 있는 샤또 드 뻬즈는 진한 양념 맛에도 휘청거리지 않고 균형을 잡아서 하나하나 세밀하게 맛을 살려준다.


4. 편육채와 Château Pommeaux 1999, Pomerol (샤또 뽀모 1999, 뽀므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삶아 얇게 썬 편육에는 과일향이 풍부한 뽀므롤 와인이 제격이었다. 샤또 뽀모는 섬세하고 밸런스를 잘 이루고 있어 부드러운 편육채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고 입 맛을 돋궈줬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매칭이 아니었나 싶다.


5. 된장조치 반상과 Château d’Aiguilhe 2001, Côtes de Castillon (샤또 데길 2001, 꼬뜨 드 꺄스띠용)

가장 소박하고 일상적으로 즐겨 먹는 된장찌개와 밥과 어울리는 와인이 있을까? 델쁘 회장은 자신 있게 꼬뜨 드 꺄스띠용의 Château d’Aiguilhe을 추천했다. 아직 어린 듯한 느낌의 이 와인은 발효시킨 된장의 맛과 어울림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와인이 가진 특유의 거친 탄닌이 된장찌개에서 느껴지는 구수하고 짭짤한 맛을 오히려 씁쓸하게 느끼게 했다.


6. 한과와 Dourthe Sauternes 2002, Sauternes (두르뜨 소떼른 2002, 소떼른)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디저트는 달콤한 것이 주류인 것 같다. 달콤한 한과와 떡에는 역시 스위트 와인 소떼른이다. 조청이나 꿀로 맛을 낸 한과의 단맛을 더욱 강조하고 망고, 복숭아 등의 과일 맛은 입 안에서 조화롭게 퍼지면서 깔끔하게 입맛을 마무리해준다. 두르뜨 소떼른은 당도와 함께 산도가 함께 받쳐주어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르도 와인과 한식의 만남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길 바란다. 사실 이 행사에서 매치 시켰던 한국 음식들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는 거리가 있다. 정갈하고 극도로 양념을 줄인 궁중요리와 와인은 대체로 잘 어울리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요리인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씩 동호인들 사이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한국 음식들과 보르도 와인의 만남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어찌 보면 그것이 바로 ‘어렵다’란 편견에 가려진 보르도 와인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앞으로도 와인과 한국 음식의 만남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사진 제공 : 소펙사(Sope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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