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6월 프랑스 농무성이 인증한 새로운 크뤼 브르주아(Cru Bourgeois)급 와인들 2471 개가 발표되었다. 1932년 이미 발표한 바 있던 444개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들의 리스트는 1855년 보르도 메독 지역의 최상등급 와인들이라 할 수 있는 58개 와인들, 즉 그랑 크뤼(Grand Cru)급 와인들이 발표 될 당시 존재 하지 않았거나 이때 등급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갖던 품질에 버금가는 와인들을 다시 정리하여 발표한 것으로 1855년 등급의 업데이트 된 등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크뤼 브르주아 명단이 발표됨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을 의아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샤또 글로리아의 부재였다.
이처럼 그 품질의 일관성과 맛으로 잘 알려져 있던 샤또 글로리아가 명단에 포함되지 않을 것은 일차적으로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은 양조에 사용된 포도들이 특정 포도원에서 재배된 것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이다.
하지만 이 와인이 이 등급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 그랑 크뤼 와인이기를 꿈꾸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샤또 글로리아 뒤에는 이를 세운 앙리 마르뗑(Henri Martin)이 있기 때문이다.
▶ 앙리 마르뗑 |
오크 통을 만드는 기능공의 아들로 태어난 앙리 마르뗑은 다른 귀족 혈통의 샤또 소유주들과 달랐다. 상속 받은 포도원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그의 꿈은 자신만의 크뤼급 포도원을 갖는 것이었다.
당시 와인 업계의 전반적이 어려운 상황도 있었고2엄격하기로 유명한 아버지의 동의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구입을 해버린 포도원 6헥타르가 그의 꿈의 시작이 된다. 1942년 앙리 마르뗑(Henri Martin)이 아버지의 친구의 권유로 산 베이쉐빌(Beychevelle)의 포도원 6헥타르에서 시작해 오늘 날에는 보르도 셍쥘리엥의 크뤼급 포도원들을 조각조각 모든 50헥타르에 이르는 포도원을 만들었다.
당시 토지 대장에 기록되어 있던 이 땅의 이름이 ‘Gloria’을 따서 샤또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이후, 이 땅외에 Ch. Leoville-Poyferre, Ch. Gruaud Larose3, Ch. Saint Pierre, Ch. Duhart Milon4 등과 같은 크뤼급 샤또들의 땅을 사서 샤또 글로리아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크뤼 급 포도원들을 사 모은다고 새로운 와인이 계속해서 크뤼 등급을 갖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르뗑은 그 포도원들의 잠재력을 믿었고 다른 곳에서는 시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도입했다. 당시 양조는 노후된 시설을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하기 쉬웠다. 그래서 한번은 샤또 글로리아의 양조 과정에서도 와인이 산화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마르뗑은 양조자에게 책임을 묻고 그를 조용히 내보내는 것을 감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밖에 샤또 글로리아는 샤또의 모든 와인을 직접 병입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당시에는 심지어 그랑 크뤼 샤또에서도 샤또에서 직접 병입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이와 같은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마르뗑은 샤또 글로리아는 그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
샤또 글로리아 ▼◀ |
마르뗑의 양조에 관한 조예는 널리 인정받아 1960년대에는 샤또 라투르의 양조자로 발탁되어 당시에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스테인레스 스틸 통의 사용 등 장기적인 발전 계획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의 이와 같은 계획은 장기적인 침체를 경험하던 보르도의 와인 업계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상당히 모험적인 것으로 오랜 와인 생산의 경험을 갖던 다른 귀족 가문도 보여주지 못한 포도원의 일꾼의 풍부한 상상력과 지식을 대변했다고 높이 평가 받았다고 한다.
우연히 앙리 마르뗑와 샤또 글로리아는 미국 Pan Am 항공사에 샤또 글로리아의 와인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만난다. Pan Am사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최상급 고객들에게 제공한 Half bottle(375ml) 와인을 요구했었는데, 마르뗑은 이처럼 작은 병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과 높은 고도에서 자신의 와인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써 샤또 글로리아는 재정적인 안정과 인지도를 얻게 되었으니 놓치기 싫은 기회였음이 틀림없다.
앙리 마르뗑은 대단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남과 다른 사업 수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더 큰 것을 판매하면서 늘 자신의 와인도 같이 팔 수 있게 하는 능력이었다. 한국에서도 봉땅 기사작위(Commanderie du Bontemps de Medoc et Graves)를 받은 사람이 최근에 나왔지만, 이 단체가 바로 마르뗑이 설립한 것이다.
그는 보르고뉴의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Chevaliers du Tastevin)이 부르고뉴의 와인을 선전함과 동시에 그 와인에 위엄을 더하는 기능을 하는 것을 보고 보르도에도 이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 중세 시대부터 있던 Commanderie de Bontemps을 부활시켜 메독과 그라브의 와인을 전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앞장섰고 이때 그의 와인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Commanderie de Bontemps 단원들 |
샤또 글로리아에서는 까베르네 소비뇽 65%, 메를로 25%, 까베르네 프랑과 쁘띠 베르도가 각각 5% 재배되고 있으며, 모든 포도는 손으로 수확을 한다. 자동 온도 조절이 되는 스테인레스 통에서 28-32도 사이에서 발효되며, 18개월 동안 오크 통에서 숙성된다. 연간 생산량은 20만 케이스이며, 세컨드 레이블로 생산되는 샤또 페이마르뗑(Ch. Peymartin)은 4천 케이스가 생산되고 있다.
▶ 현재 샤또 글로리아를 이끄는 장 루이 트리오 |
1991년 앙리의 죽음으로 샤또 글로리아는 그의 사위 장 루이 트리오(Jean Louis Triaud)가 맡아 경영하고 있다. 그는 2000년에 샤또 코스데스투르넬의 포도원에서 경력을 쌓은 레미 디 코스딴조(Remi Di Costanzo)를 영입해 그 동안 장인이 쌓아온 와인의 명성에 내실을 기하고 있다.
코스딴조는 처음 이곳에 와서 각 포도원의 토양과 이를 각각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첫번째 일로 삼았고, 그 뒤 각각의 포도원의 수확을 철저히 구분하여 양조하고 최상의 블랜딩 배율을 찾는 것을 그 다음 목표로 삼고 양조에 임하고 있고 꾸준히 좋은 품질의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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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샤또 글로리아는 그 AOC 등급에도 불구하고 앙리 마르뗑의 소원대로 그랑 크뤼급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은 마르뗑이 1982년 셍쥘리엥 4등급 와인인 샤또 셍삐에르(Ch. St. Pierre)를 구입으로 그가 그랑 크뤼 샤또를 소유하고자 했던 소원을 이루었고, 그래서 2003년 발표된 크뤼 부르주아 등급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그의 사위가) 다소 덤덤할 수 있기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한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샤또 글로리아의 크뤼 부르주아 등급이 그랑 크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이지 종착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살아있다면 마르뗑은 ‘1855년 이래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오래도록 그랑크뤼 와인들에 변동이 없기에 샤또 글로리아가 아직 그랑 크뤼 명단에 들지 않은 것이다’ 생각하고 그날을 기다리지 않을까 한다.
[_이석기_]
1. 크뤼 브루주아 엑셉쇼넬(crus bourgeois exceptionnels) 9개, 크뤼 브루주아 슈페리어(crus bourgeois superieurs) 87개와 크뤼 브루주아(crus bourgeois) 151개.
2. 당시 포도원들이 구획 정리 등을 하고 있어서 작은 자투리 땅들이 쉽게 교환 또는 판매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 업계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시셀(Sichel)의 계산에 의하면 1940년대까지도 1 에이커의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는데 500파운드가 들며, 3년간은 이 포도원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지 못하므로 이윤을 낼 수 없으며, 이후 모든 비용을 빼고 계산 된 이익은 50파운드였다. 이 모든 상황을 감수하고 앙리 마르뗑은 그의 집에 카페트도 깔지 않고 모든 것을 크뤼급 포도원을 갖는 것에 쏟아 부을 정도의 노력했다고 한다.
3. 이 샤또는 1903년 앙리 마르뗑이 태어난 곳이며, 그의 할아버지가 Maitre de Chai로 일하던 곳이다.
4. Ch. Duhart Milon은 뽀이약에 위치한 샤또이지만, 셍쥘리엥에도 포도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