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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성(城)”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샤또(Château). 왠지 모르게 연회를 준비하는 불이 환하게 켜진 궁전, 그리고 그곳을 가득 메운 귀족들을 위한 성찬, 음악, 그리고 와인의 향기를 연상시키는 단어이고 와인을 새로이 접하는 이들에게 와인에 대한 아주 특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단어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사실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에서 “샤또”는 성이라기 보다는 양조장의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규모가 크지 않은 저택을 의미한다고 부연 설명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샤또”는 왠지 그 황금빛 반짝이던 멋을 잃게 되고 자칫하면 스테인레스 스틸 발효통이 가득 채워진 초현대식 양조장만이 연상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위풍당당한 성을 자랑하는 샤또가 있으니 바로 ‘왕의 만찬과 신들을 위한 제사에 쓰이는(Resum Mensis, Aris que Deorum)” 와인을 생산한다는 샤또 디쌍이다.

샤또 디쌍의 정문 위에 새겨져 있는 이 야심찬 문구를 지나 들어가면 사또 마고와 함께 이 지역 와인의 양대 산맥 중 하나를 이루었다는 샤또 디쌍의 성과 기사들이 말을 타고 드나들었을 것 같은 해자를 만날 수 있다.

영국의 헨리 2세와 프랑스 아키텐 제국의 엘레노르 공주와의 결혼 피로연에 디쌍의 와인이 쓰였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이 성에서 결혼식 첫날 아침을 맞이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는 샤또 디쌍의 역사가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마고의 가장 유서 깊은 와이너리 중에 하나인 이곳은 15세기 당시에는 샤또 테오봉(Teobon)으로 불리다가 17세기에 이 성의 소유주였던 보르도의회 의원 데쎄노(D’Essenault)에 의해 샤또 디쌍으로 개명된다. 이때 데쎄노는 성에 새로운 이름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예전의 오래된 건물을 헐고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을 지었다.

샤또 디쌍은 이후 여러 가문의 손을 거쳐 1866년 귀스타브 로이(Gustave Roy)라는 파리의 섬유관련 업자의 소유가 된다. 비록 그가 포도원에 거의 머무는 일이 없었지만, 샤또 디쌍과 그 와인은 그랑 크루 3등급으로서 명성을 꾸준히 쌓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셉 제왕도 이 와인만을 마셨다고 하며, 특히 1899년 와인을 좋아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2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샤또는 많이 황폐해졌으며, 2차 세계대전 말에는 그 와인 생산량이 1866년 귀스타브 로이가 소유권을 이전 받았을 때 생산량이 였던 80-100토노와는 비교도 안되는 2토노 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나 샤또 디쌍이 완전히 황폐해 지는 것을 막아준 사람이 에마누엘 크루즈(Emmanuel Cruse)였다.

크루즈 가문은 샤또 로장-세글라(Château Rauzan-Segla)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에마뉴엘은 개인 소유의 그랑 크뤼급 샤또를 원했다. 처음에는 샤또 지스쿠르를 놓고 고민했으나, 오늘날에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는지 1945년 4월 샤또 디쌍의 구매 계약서에 서명를 한다. 이후 그는 그가 사망한 1968년까지 샤또 디쌍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우선, 그는 2 헥타아르로 줄어든 포도원으로 다시 늘리는 작업을 했다. 첫단계에서 포도원으로 15헥타르로 늘리고, 까베르네 소비뇽을 75%, 까베르네 프랑 5%와 메르로 20%를 심었다. 이후 포도원의 면적은 점차 넓어져서 오늘날에는 32헥타르에 달하며, 까베르네 소비뇽 70%와 메를로 30%가 재배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투자로 와인 숙성 창고를 1988년 훌륭하게 확장시켰으며, 1989년에는 초 현대식 스테인레스 스틸 저장고가 새로 건축되었다. 이러한 확장으로 1972년까지 별도의 양조장에서 병입하던 샤또의 와인들을 샤또에서 직접 할 수 있게 되었고 품질관리도 보다 용이해졌다.

성의 건립 당시부터 있던 와인 창고의 대부분은 새로이 수리하고 이 창고에 이어 같은 크기의 완전히 새로운 창고를 추가로 증축했다. 성의 건립 당시부터 있던 이 창고 부분에는 “축제(Festival)”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으며, 이곳에서는 매년 봄에 겨우내 있던 오크통을 다른 서늘한 곳으로 옮기고 콘서트 등의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

“축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체험을 하지만, 이 성 자체도 하나의 문화제로서 크게 인정을 받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초창기의 성으로서의 위엄이 많이 줄어든 샤또 디쌍은 1945년 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인들에 의해서 점령을 당해 더더욱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래서 에마누엘 크루즈가 이 성을 매입했을 당시 가격은 5백만 프랑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 자체는 멀쩡했다고 할 수 있으며, 내부의 인테리어 수리로 인해서 그 위엄이 복원되었다. 실제로 거실과 식당에 있는 르네상스 스타일 화롯가는 역사적 기념물로 분류되어있다.

이 샤또의 문화행사와 건물도 의미 있지만, 이 샤또의 와인은 메를로의 사용 분이 상당히 특이하며 이 특색있는 맛이 진정 왕과 신들에게 마시게 하기에 적합한 와인이다. 뽀이약 지역이나 마고 지역에서 흔히 사용하는 메를로 품종의 양 보다 적은 블랜딩 비율(15%)을 사용하는 샤또 디쌍의 그랑 뱅(grand vin)은 섬세함을 겸비한 힘이 있는 맛으로 현대인들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마고의 다른 와인들과 달리 까베르네 소비뇽이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약 70%, 1996년 빈티지에는 75%) 이 포도품종의 특성상 맛의 구조가 단단하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묵직하고 다소 둔탁한 맛을 가진 와인이 생산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샤또 디쌍은 주변의 다른 와인들 보다는 맛이 진하고 강하지만, 라스꽁브(Château Lascombes)나 말퀴 드 테르므(Marquis-de-Terme)에서 느껴지는 다소 거친 맛이 전혀 없는 우아하고 잘 조화된 맛을 갖는다. 따라서 이 와인은 과거의 왕들이 즐겨 찾던 와인이었듯이 오늘날에도 다른 일등급 그랑 크뤼 와인의 맛에 견줄 만한 와인이면서 3등급 와인들의 가격을 가진 샤또 디쌍은 합리적인 소비와 와인의 참된 맛을 좋아하는 현대의 소비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88년 이후 본격적으로 와인 전문잡지와 전문 기관들에 의해서 높이 평가 되고 있으며, 최근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1999년 빈티지 샤또 디쌍은 최근 30년간 생산된 디쌍의 와인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빈티지 중 하나이며, 응축된 루비 빛깔과 매혹적이면서 우아한 향 그리고 섬세한 맛을 지닌 와인으로 앞으로도 여러 해 동안 숙성을 통해 많은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샤또 디쌍의 이와 같은 맛의 발전, 달리 말해 과거 명성의 회복은 에마누엘 크루즈에 이어 오늘날 이 와이너리를 소유, 운영하고 있는 그의 아내와 아늘 에마누엘 크루즈 그리고 와인 전문가 에릭 페롱(Eric Pellon) 그리고 와인양조자 자크 부아스노(Jacques Boissenot)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으며, 디쌍의 다른 와인들에서도 와인에 대한 한결 같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샤또 디쌍의 그랑 뱅은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역시 18개월간의 오크 숙성과 샤또 디쌍의 와인 전문가들의 세심한 관심 속에서 생산되는 것이 이 샤또의 세컨드 와인 블라종 디쌍(Blason d’Issan: 디쌍의 문장(紋章)이다.

이 와인의 레이블에는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샤또의 정문과 그 위에 세겨진 ‘왕의 만찬과 신들 위한 제사를 위한 와인(Resum Mensis, Aris que Deorum)”의 문구가 쓰여져 있다. 이 와인의 2001년 빈티지만 보아도 비록 세컨드 레이블이지만 그 농축된 맛과 향이 샤또 디쌍의 높은 품질과 매력을 대변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와인외에도 약 20여 헥타르의 포도원이 이 샤또 뒤쪽으로 펼쳐지며 이곳에서는 오메독(Haut Medoc)의 지역 명칭을 사용하는 샤또 깡달(Château Candale1)과 AOC 보르도 슈페리어 급의 몰랭 디쌍(Moulin d’Issan)이 생산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다시 그 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샤또 디쌍은 그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사로 잡는 잠재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와인에 대한 모든 이들의 낭만적인 기대를 충족해 주는 와인 샤또 디쌍. 이미 그 명성과 위치를 확고히 한 그 어느 와인보다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와인이다. 좋은 빈티지의 이 와인 한잔을 들고 마음 편한 지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노라면 그 어느 왕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은 것과 같을 것 같다. Resum Mensis, Aris que Deorum!







[_이석기_]


1. 쎙테밀리옹 지역은 자갈이 많이 함유된 토양을 갖는 지역을 그라브-쎙테밀리옹(Graves-St.-Emilion)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은 곳은 꼬뜨-쎙테밀리옹(Cotes-St.-Emilion)으로 구분되고 있다. 샤또 피작은 그라브-쎙테밀리옹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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