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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최고급 와인은 1등이라는 것 자체로서 도도히 무리들과 구분되지만, 약간의 차이로 2등을 차지하게 되는 경우, 그 사이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 2등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와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고급 와인, 이름, 비슷한 철자를 쓴다든지 하는 이런 저런 연관성을 찾아내어 모든 와인들이 자신을 홍보한다. 하지만 와인은 홍보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맛으로 말한다.

이처럼 조용히 그 품질로 말하는 와인 중에 하나가 바로 샤또 리우쌕이다. 달콤한 맛의 스위트 와인을 싫어하는 이들도 쏘테른의 최고급 스위트 와인을 마셔보고 그 맛에 무릎을 꿇지 않은 이가 전무하다고 하니 그 맛을 상상에 맞겨본다.

`쏘테른`하면 샤또 디켐을 떠올리지만, 파르그(Fargue)와 쏘테른(Sauternes)마을 경계에 위치한 샤또 리우쌕(Ch. Rieussec)은 샤또 디껨의 동쪽 경계선을 공유하고 있어 쏘테른의 다른 어떤 일등급 포도원보다 샤또 디껨 특유의 짙은 맛, 감미로운 맛과 감칠 맛 등 복합적인 맛을 훨씬 더 빼어 닮았다.

샤또 리우쌕은 샤또 디껨의 후광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지만, 오래 전부터 이미 높은 명성과 함께 상당히 견실한 농원이었다.

리우쌕은 1820년대 당시에도 쥴리앙(Julien), 파지에르(Paguierre), 프랑크(Franck)의 3인이 파르그 마을이 아닌 쏘테른이나 프레냑(Preignac)마을에 위치한다는 티가 있긴 하였지만 "리우쌕은 오늘날 쏘떼른의 특2등급 와인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프랑스 혁명 전 랑공(Langon)지역에 기반을 가지고 있던 카르멜 수도원이 리우쌕 농원과 함께 페싹 지역의 Caranes Haut Brion도 소유하고 있었는데 분명하지는 않으나 여기에서 리우쌕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밖에도 이껨(Yquem)과 리우쌕 사이에, 여름이면 자주 말라붙는 조그마한 개울이 흐르는데 이 개울에서 착안하여 `개울(Ruisseau)`을 뜻하는 단어와 `말라 붙은(Sec)`을 의미하는 형용사와 결합해 "Rieussec"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잘 웃는 사람이란 뜻의 무슈(미스터) 리우(M. Rieu)라고 부르는 소유주가 있었는데 이 이름에서 유래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니 이는 리우쌕의 과거 기록이 얼마나 일정하지 못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쏘테른의 와인 양조 실적은 형편이 없었고 샤또 리우쌕의 역사도 그 흉작들 속에 묻혀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농원의 소유주들은 왔다가 놀라 신속히 농원을 떠나기 일수였다. 간간이 괜찮은 와인을 생산할 뿐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 이였다.

샤또 리우쌕, 소유주들의 리스트 또한 길다. 1846년 샤또 리우쌕은 마이(M Maille 혹은 Maye)에게 매각되었고 이때 리우쌕의 농지 4헥타르는 봄(Bommes)마을의 샤또 펙시오또(Pexiotto)에게 별도로 판매된다. 이 샤또에서는 한동안 그들의 와인을 펙시오또 리우쌕(Pexiotto_Rieussec)으로 판매 하였다고 하니 리우쌕의 포도원이 부분적으로 매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의 이름 중에 명시 될 정도의 품질과 저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샤또 펙시오또는 포도뿌리 혹벌레 전염병이 난무하던 시절, 샤또 라보(Ch. Rabaud)로 흡수 합병 되고, 이때 이 샤또의 소유로 되어 있던 리우쌕의 4헥타르가 나머지와 함께 재결합 하게 된다.

1870년 마이로부터 샤또 리우쌕은 샤르레 크레팽(Charles Crepin)에게 양도되었고 또한 1892년 그의 사위인 폴 드폴리(Paul Defolie)에게 이전되었다. 드폴리는 3년 후 르위종(Louison)의 이웃 재배지를 사들여 포도나무 뿌리 전염병으로 파괴된 포도 농원과 양조장 건물의 보수와 개선에 그의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쏟은 정성에도 불구하고 1907년 드폴리 역시 앙트르 두 메르(Entre Deux Mers)의 여러 작은 재배지를 소유하고 있는 랑공의 에드라르(Edgar)와 마르크 반넬(Mark Bannel)에게 샤또 리우쌕을 매각한다. 1920년 재배지는 다시 한번 새 주인을 맞이한다.

라세베리(Lasseverie)여사와 그녀의 사위이며 샤또 깔롱 쎄귀르(Ch. Calon Sequr)를 소유하고 있는 가문의 앙리 가스케통(Henri-Gasqueton)에게 이전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매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려 했던 장모와 사위는 필연적으로 의견불일치를 피할 수 없었고 샤또 리우쌕을 오래 소유하지 못했다.

다음 소유주는 부제(Bouzet)자작이었고 뒤를 이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부제의 이복 동생이자 미국인이었던 베리(P.F Berry)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다음은 중계인인 제라 바라러케(Gerard Balareque)로 1951년부터 재배지를 알베르 비일리에르 에게 매각한 1957년까지 리우쌕의 소유주였다.

쏘테른이 가장 운이 나빴던 때 샤또 리우쌕에 알베르 비일리에르(Albert Vuillier)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비일리에르와 그의 부인 샹탈(Chantal)은 보르도에 와서 시장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때 비일리에르는 쏘테른 양조 방법에 매료되어 당시 매물로 나와 있던 클리망(Climens), 레인 비뇨(Rayne-Vigneau), 네락(Nairac)과 리우쌕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중 샤또 리우쌕이 가장 명성 있는 와인이었으며 바르삭(Barsac)지방의 와인보다 쏘테른 지방의 와인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정된 선택이기도 했다. 아무도 새로운 농장을 구입하려 들지 않을 때인 1971년 비일리에르(Vuillier)는 샤또 리우쌕을 백십만 프랑에 인수하여 훌륭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그 또한 13년 후 롯드쉴드가의 라피트 농원에 리우쌕을 매각하고 말지만, 샤또 리우쌕의 품질을 한층 끌어올리는데 들어간 그의 노력으로 농원의 토지 정리 및 양조 시설이 이미 상당부분 끝나거나 개선된 상태였다.

리우쌕의 샤또는 간소한 건물로 거주에 적당하였으나 전 소유자들은 영구히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비일리에르도 처음에는 재배지를 떠나 네고시앙(와인 도매상)메스트르자 프레레르(Mestrezet Preller)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여 와인을 판매 했었으나 내심 현장에서 일하는 소유주가 되기를 바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그리고 1973년과 1974년의 위기가 지나고서 비일리에르와 샹탈은 리우쌕으로 영구 귀농하여 농원의 책임자가 되었다.

1970년대의 포도 작황은 1975년과 1976년을 제외하고는 침울한 흉작의 연속이었다. 1973년과 1974년의 소출은 극소량에 그쳤으며, 1977년에는 설상가상으로 해일로 인해 수확이 전무하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샤또 리우쌕의 구석구석을 개선하기에는 이익금이 턱없이 모자랐다.

1984년 라피트 롯드쉴드가의 사람들이 현장에 왔다. 그들은 1962년 뽀이약의 4등급인 샤또 뒤아르 미롱(Ch. Duhart Milon)을 취득하고 좀더 투자할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쏘테른 와인에 흥미가 없었으나 문제점, 장기 쏘테른 소유권의 특성, 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잘 분석한 후 1984년 샤또 리우쌕을 구입하였다.

주식회사로서의 샤또 리우쌕 주식의 대부분은 도맹 롯드쉴드, 파리 페이 바 은행(Banque Paris - Pays - Bas)과 벨기에 은행 회장인 알베르 프레르( Albert Freres)가 나누어 갖고 있다. 비일리에르는 현재는 소액주주에 지나지 않지만 이사로서 주 와인인 샤또 리우쌕(Grand vin)의 양조/선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날 리우쌕 재배지 면적은 1820년대 당시와 비슷하며 재배지는 파르그 마을의 중요한 요지에 자리하여 서쪽 끝으로 이껨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리우쌕 농원의 총 면적은 약 75헥타르로 이중 50헥타르에서 쎄미용(89%), 소비뇽 블랑(8%)과 뮈쓰까델(3%)이 경작되고 있다. 생산량은 140년전의 약 60톤노에서 약간 늘어난 80-100 톤노 정도이다.(헥타당 15헥토리타)

샤또 리우쌕은 해발 76미터의 견고한 사암, 자갈, 점토와 석회석으로 된 조그마한 언덕에 부속 건물과 더불어 간소한 1층 농가로 구성된 작은 농원이다. 프랑스 혁명 후에 건축된 이 단층 건물은 안락하고 우아하게 꾸며졌으나 건축학적인 매력이 조금 덜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목을 끄는 것은 약 50년 전 양조장 건물 끝의 한 모퉁이에 건축된 3층탑이다. 현재 이 건물은 요즈음 다시 수리 중에 있으며, 이 건물은 사무실이자 리우쌕 와인생산의 본부이다.

꼭대기 층에서 포도 농원으로 둘러싸인 장엄한 전망을 내려다보면 쏘테른의 최고 감미 와인과 자웅을 겨루는 샤또 리우쌕에 대한 자부심을 이해할 만 하다.

일부는 운이고 일부는 유행의 덕이라 할 수 있지만 1980년대 대규모 훌륭한 빈티지의 성공으로 다시 한번 쏘테른의 달콤한 와인들에 대한 수요가 생겨 전체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게 되었다. 훌륭한 단 포도주의 생산은 다시 한번 경제적 명제가 되었다. 특히 1983년 빈티지는 품질과 양 모두 좋은 수확으로 높은 가격에 판매될 수 있었다.

농장 소유주들의 바램과 같이 쏘떼른의 재배지들은 이익을 낼 수 있었고 소유주들은 다시금 와인에 재투자하게 되었다. 1983년과 마찬가지로 크게 성공한 1986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재투자 내지는 그렇게 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잠재적으로 1988년 1989년 1990년 의 훌륭한 빈티지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포도주는 참으로 대단히 자극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하튼 분위기는 극적으로 변하였다. 오늘날 재배자들은 20년 전만 하더라도 실의에 빠져있던 그들의 생산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분위기는 낙관주의와 완전주의다. 어떻게 하면 각자의 토양에서 최상의 맛을 낼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가 되었고 많은 연구를 비롯하여 새 오크통과 그밖에 다른 설비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샤또의 주 와인(Grand vin)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정에 미달되는 와인은 엄격하게 배재하게 된다. 냉각 장비는 효모, 타르타르 산염, 잔여 침전물 등을 제거하기 위해 설치되며 이러한 설비의 도입으로 발효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많은 황을 넣지 않아도 되는 깔끔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좋지 않은 빈티지라 할지라도 품질에서는 많은 향상이 되어 전체적인 와인의 품질이 향상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당시 변화는 놀라웠다.

비일리에르가 리우쌕에 처음 시도한 변화는 새 오크통의 대량 도입이었다. 비일리에는 1976빈티지 이래 점차적으로 새 오크통의 사용 비율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새 오크통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제반 경비의 증가와 함께 총투자비의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적의 맛과 품질을 위해서 비일리에르는 이러한 조건에서도 1983년 이래로 생산량의 50%를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켰다.

오늘날 샤또 리우쌕의 주 와인은 최대한 늦게 그 배합을 결정한다. 리우쌕의 주 와인(Grand Vin)보다 더 많은 양의 와인이 제2와인인 끌로 라베르(Clos Labere)로 병입될 만큼 세심한 선정 과정과 블랜딩을 거친다. 이 포도원에서 재배되는 소비뇽 블랑 포도 품종은 리우쌕 와인에 거의 사용하지 않고 또 다른 무감미(Dry)화이트 와인인 "R"(쎄미용 50%과 소비뇽 블랑 50 %)에만 사용된다.

시설 개량은 포도주 양조장과 저장고로도 이어졌다. 현재까지도 이 지역에서는 작은 기계 압착기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리우쌕에서는 1989년 빈티지 일부분에 공기 압착기를 시험 사용하였고, 훗날 모든 구식 압착기를 교체하였다.

샤또 리우쌕에는 새로운 압착기 뿐 아니라 저온 추출실도 가지고 있다. 가을 우기에 유용한 이 저온 추출실은 육십오만 프랑을 투자하여 1987년 설치되었고 와인 품질의 향상을 더욱 촉진 시켰다.

롯드쉴드(라피트)家의 구매 시기인 1984년 이래로 보르도 포도 최고급 재배지의 땅값은 엄청난 수준으로 상승하였다. 사람들은 리우쌕 땅값이 현재의 과도한 가격으로 오르기 전 투자한 롯드쉴드家의 선경 지명을 부러워할 따름이다. 알베르 비일리에르에게 위로의 말 뿐.

그는 쏘테른 현 시대 르네상스의 모든 미덕과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호인이며 매력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리우쌕의 모든 힘든 기초 작업을 완수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샤또 리우쌕은 찬란한 금빛의 색깔로 대단히 잘 농축된 다 차원의 와인으로 말린 살구, 다즙의 잘 익은 서양 배, 달콤한 파인애플, 대추 야자열매와 건포도 향이 진한 쏘테른의 훌륭한 최고 수준의 스위트 화이트 와인이다.

[_이석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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