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비밀을 푸는 첫 번째 열쇠는 품종입니다. 품종에 대한 지식은 와인을 이해하고 느끼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품종에 대해 꼼꼼하게 알아보고 사랑 받는 와인들도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 주자는 이태리 품종 바르베라(Barbera)입니다.
여성적인 이름을 가진 이 품종의 원산지는 이태리 북서부 피에몬테의 몽페라토(Monferrato)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태리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 다음으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는 인기 품종입니다.
바르베라는 피에몬테 뿐만 아니라 롬바르디아,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도 중요한 품종이어서 85% 이상 블렌딩하거나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듭니다. 포도 재배자들에게 바르베라는 장점이 많은 품종입니다.
토양의 선호가 까다롭지 않으며 가뭄이나 세찬 바람에도 잘 자라는 편입니다. 그리고 각종 병에도 저항력이 높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20세기에 바르베라는 대서양 너머 새로운 땅으로 이동하여 캘리포니아와 아르헨티나에 뿌리내렸습니다.
◀바르베라 /www.braida.com
바르베라 와인을 마시고 안 좋은 기억이 남았다면 그건 높은 산미 때문이었을 겁니다. 태생적으로 산도가 높은 바르베라는 더운 지역에서도 그 산도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타닌의 수준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와인 메이커들은 산도와 타닌 둘 중 어떤 쪽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다른 품종들과 블랜딩을 하거나 모더니스트들은 풍미와 타닌을 더하기 위해 오크 배럴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그 결과 튀는 산미는 누그러지고 한결 부드럽고 풍부한 와인이 되었습니다. 전통을 지향하는 생산자들이 마세라시옹(maceration, 발효 전 포도즙과 껍질을 접촉시키는 것)을 오랫동안 하고 가급적 오크 사용을 줄였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 밖에도 수확량을 낮게 조절하거나 높은 당도를 얻기 위해 포도를 푹 익힌 뒤에 수확하는 방법 또한 바르베라의 높은 산도에 맞춰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수확하지만 최근 들어 어떤 생산자는 높은 당도를 얻기 위해 네비올로 다음에 바르베라를 수확하기도 합니다.
바르베라 와인은 미디엄 보디(medium body)와 풍부한 과일 풍미를 가집니다. 좀더 강하고 집중적인 힘을 가지려면 장기 보관이 필요합니다. 와인은 깊은 루비 색상을 띠는데, 오래 전부터 바를로와 바르바레스코에서는 다소 약한 네비올로의 색상을 보강하기 위해 바르베라를 블렌딩했습니다. 동시에 바르베라의 뛰어난 산도도 얻을 수 있지요.
◀Elio Altare의 셀러/www.elioaltare.com
앞서 말했듯이 발효나 숙성을 시킬 때 오크 배럴을 사용하면 와인은 더 부드러워지고 풍부해지며 자두, 체리와 향신료의 향이 더해집니다. 늦게 수확해 만든 와인에서는 건포도의 향도 납니다. 보통 바르베라는 2-3년 정도 보관했다가 마시는데, 오크 배럴을 사용해 복합적으로 만든 바르베라는 5~10년 후에 마셔도 좋습니다.
바르베라 품종은 이태리 전역에 퍼져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바르베라 달바(Barbera d’Alba)와 바르베라 다스티(Barbera d’Asti)입니다. 바르베라 달바는 DOC이고 2008년에 바르베라 다스티는 DOC에서 DOCG로 승격되었습니다.
바르베라 다스티가 좀더 과일 풍미가 강하고 우아한데 바르베라 달바는 좀더 집중적이며 강렬한 과일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크 배럴의 사용을 통해 바르베라 다스티도 복합적이고 응집력이 강한 스타일의 와인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몽페라토 DOC에서는 바르베라를 85% 이상 그리고 필요에 따라 프레이자(Freisa), 그리뇰리노(Grignolino), 돌체토(Dolcetto)를 15% 이하로 혼합합니다. 생산량으로 본다면 바르베라 다스티가 가장 많고 바르베라 달바, 바르베라 델 몽페라토 순입니다.
바르베라 와인의 고급화는 가격의 상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로버트 파커나 와인 스펙테이터에 90점대를 획득하는 와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단순한 데일리 와인의 테두리에서 벗어났습니다. 5만원대의 바르베라도 있지만 10만원을 훌쩍 넘는 바르베라도 눈에 뜁니다.
와인 애호가들의 주머니를 무자비하게 털어가는 유명 바르베라 와인 생산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Coppo, Giovanni Manzone, Martinetti, Elio Altare, Vietti, Roberto Voerzio, La Spinetta, La Barbatella, Brida, Conterno Fantino, Luciano Sandrone, Ca’ Viola, Hastae 그리고 Michele Chiarlo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쓱 보면 알겠지만 내노라하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 생산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모던 바롤로를 추구하는 생산자들은 바르베라 또한 같은 방식을 따르는 편입니다. 한편 아스티의 브라이다(Brida)는 바르베라만 고집하는 와이너리로 바르베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노력한 주인공입니다. Bricco dell'Uccellone는 아스티에서 처음 작은 오크 배럴을 사용하여 탄생한 브라이다의 싱글 빈야드 와인(1982년 빈티지)입니다.
네비올로와 함께 피에몬테에서 레드 와인 품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바르베라. 와인 애호가들은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내에도 더 많은 바르베라 와인이 소개되어 다양한 와인의 세계를 몸소 느끼게 되길 바랍니다.
참고 문헌
J. Robinson. The Oxford Companion to Wine Thir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Oz Clarke. Encyclopedia of Grapes, Harcourt Books, 2001
Franco Ziliani. “Barbera Renaissance in Piemonte”, www.winebusiness.com,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