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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다시 되짚어 보는 디켄팅 방법

‘와인 방울이 줄기를 이루며… 붉은 명주실처럼 똑바로… 병 주둥이로 떨어져 들어간다. 와인을 안 이후로 처음 보는… 신의 솜씨 같은 디켄팅이었다. 어린- 즉, 만들어져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와인은… 이처럼 디켄터라는 병에 옮겨 마심으로써, 그 잠재된 맛을 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옮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섬세한 와인일수록… 와인의 아로마와 맛과 그 복잡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명주실을 뽑는 듯한 섬세함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

요즘 인기 절정인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의 디켄팅 솜씨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디켄팅은 매우 형식적인 와인서비스의 전통적인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장단점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요. 디켄팅을 하면 더 좋을 와인이 어떤 것인지, 디켄팅 시간을 얼마나 해야 할지 등 다양한 이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일 전에 1952년 샤토 탈보(Chateau Talbot)를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디켄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 하다가 그냥 하지 않고 마시기로 했습니다. 3일 동안 얌전하게 세워둔 와인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고 찌꺼기가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살살 따랐습니다.

세월의 깊이 만큼 농후하고 부드러워진 타닌과 긴 시간을 받쳐준 산도가 남아 과하지 않았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올드(old) 와인의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디켄팅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교하지 않은 솜씨와 시간 차이 때문에 오히려 맛을 손상시킬 수 있다 하여, 디켄팅을 피한 것이 더 좋았던 겁니다.

지난 6월 14일에 2006 한국 소믈리에 대회의 결선이 열렸습니다. 세가지 부분, 블라인드 테이스팅과 와인과 음식의 매칭 그리고 디켄팅 시험으로 나눠서 결선 후보자들이 겨뤘습니다. 심사위원장이었던 프랑스 소믈리에 연맹의 마스터 소믈리에, 빠스칼 부쉐(Pascal Bouchet)씨는 침전물 없이 디켄팅이 잘 되었는지 기술적인 면을 유심히 평가했다고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디켄팅을 해야 와인의 숨어있는 2%를 뽑아낼 수 있을까요. 빠스칼 부쉐씨가 그 방법을 귀뜸해줍니다.

어린(young) 와인과 올드(old) 와인의 디켄팅 목적은 다릅니다. 어린 와인은 좀더 마시기 좋은 상태, 그 와인의 최고점에 도달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이고 올드 와인은 순전히 침전물 제거입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오래될수록 미세한 침전물들이 생기는데, 이런 찌꺼기 없이 깨끗한 상태에서 와인을 서빙해야 하기 때문에 디켄팅을 하는 것이지요. 디켄팅 방법 또한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올드 와인을 디켄팅 할 때는 먼저 와인의 상태를 가늠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침전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만 따라 먼저 테이스팅을 한 후 상태가 양호하다면 마시기 바로 직전에 디켄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공기인데, 올드 와인의 경우 공기는 적입니다. 되도록 공기 접촉이 적게 해야 와인의 산화를 더디게 할 수 있습니다. 사용할 디켄터 또한 넓지 않은 올드 와인용 디켄터를 선택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코르크를 제거한 후 호일을 벗겨내고 병 목을 깨끗이 닦아 냅니다.

촛불 등 빛이 병 목 부위를 비추도록 자리잡고 침전물이 병 목 부위에 올 때까지 천천히 따릅니다. 이 때도 와인 병을 비스듬히 눕혀 와인의 줄기가 디켄터의 유리벽을 타고 살살 내려가도록 주의합니다. 그리고 침전물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침전물이 있는 나머지 와인을 병에 남기면 됩니다.

어린 와인에게 공기는 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기와 접촉함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물질들을 사라지게 하고 과일향을 더 집중시켜 와인의 구조가 한결 부드럽게 느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750ml의 작은 병에 갇혀 있던 와인이 공기와 많이 만날 수 있도록 넓은 디켄터를 선택해야 하고 올드 와인과는 달리 약간 높은 지점에서 와인 병을 기울여 유리벽에 닿지 않고 한 줄이 되도록 일정하게 따릅니다. 되도록 병에 남지 않게 다 따르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합니다.

디켄팅은 주로 레드 와인을 하는데, 화이트 와인도 디켄팅하면 맛이 매우 좋아진다고 합니다. 화이트 와인을 공기와 접촉시킴으로 남아 있는 이스트의 기분 나쁜 냄새 등 여러 가지들이 없어지고 과일향이나 순수한 와인의 맛이 깊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들은 개인적인 선호에 따른다고 볼 수 있겠지요. 심지어 샴페인도 디켄팅 하는 경우가 있으니, 와인의 세계에서 정답이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선호가 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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