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비평상, 2005년 골든 글로브 작품, 감독상 등을 이미 수상하고 2005년 아카데미 감독상 및 5개 부분에 후보에 오른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Sideways)가 개봉되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이 등장하는 영화라고 하여,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두 주인공 마일즈(폴 지아미티 분)와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 분)은 잭의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 총각여행으로 산타 바바라 와이너리 투어를 떠납니다.
늘 소심한 마일즈와 무엇이든지 저질러 보는 잭의 서로 다른 캐릭터는 버디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포도품종을 블랜딩하여 만든 와인처럼 영화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여기서 두 친구가 떠난 산타 바바라에 대해 살짝 짚고 넘어갈까요…
산타 바바라 지역 (Santa Barbara County)은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서늘한 기후가 나타나고 특히 태평양에서 안개가 내륙으로 들어와 어떤 계곡에서는 특별한 미세 기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산타 바바라 지역 (Santa Barbara County)에는 두 개의 Appellation(AVA)이 있는데, 바로 Santa Maria Valley와 Santa Ynez Valley 입니다. 이 AVA는 미국 와인의 지리적인 원산지를 통제하는 규정으로, 대부분이 캘리포니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Santa Maria AVA는 Chardonnay와 Pinot Noir가 주요 재배 품종으로 내륙에서는 Cabernet Sauvignon과 Merlot도 소규모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잭이 땄던 92년 Byron은 이 Santa Maria Valley의 유명한 Robert Mondavi Winery 소유의 Byron Vineyard and winery의 와인이지요.
좁은 Santa Ynez Valley에서는 Pinot Noir와 Chardonnay가 보다 서늘한 서쪽 끝(태평양에서 약 24km 떨어진)에서 주로 재배되고 내륙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Cabernet Sauvignon과 Merlot의 천국이 펼쳐집니다. 특히 Sanford winery & vineyard가 대표적으로, 영화에서도 마일즈는 이 와이너리가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로 유명하다고 잭에게 귀뜸해 줍니다. 그리고 직접 방문하여 기초적인 와인 테이스팅에 대해 잭에게 한수 가르쳐주었던 와이너리입니다.
이외에도 Buellton, Solvang, Los Alamos 등을 오가며 돌아다녔던 와이너리, 포도밭, 레스토랑과 와인 바 그리고 두 사람이 묵었던 모텔까지도 실제 장소이기에, 리얼리티가 더욱더 돋보입니다. (현재 미국에선 이 두 친구의 여행을 따라가는 ‘Sideways Tour’가 인기 폭발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 마일즈처럼 한때 별볼일 없는 작가였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대단한 와인 애호가라고 합니다. 사실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마일즈를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죠. 게다가 호사가들이 선호하는 와인보다는 DRC의 리쉬부르나 61년 슈발 블랑은 적절하게 선택되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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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C의 Richebourg와 Ch. Cheval Blanc |
잠깐, 다른 영화에서 와인은 어땠을까요? 멕시코 감독인 알폰소 아라우의 ‘구름 속의 산책’(Walk in the clouds)가 떠오릅니다. 액션물의 영웅 키아누 리브스가 로맨스에 도전한 작품으로 포도 수확, 매력적인 포도 밟기, 새벽 서리가 포도에 내려앉지 못하게 하기 위해 뜨거운 열기를 포도 나무로 보내는 행동, 오크통이 쌓인 창고에서 오랜 와인처럼 성숙한 할아버지(안소니 퀸)과의 대화 등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또 바람난 약혼자를 되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는 맥 라이언의 ‘프렌치 키스’(French Kiss)는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의 포도밭 사이에서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되지요. 게다가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이야기는 와인 애호가라면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직업병인지, 이렇게 영화 속에서 와인이 등장하면, 어느 때보다 바싹 긴장하게 됩니다. 매트릭스 2, 리로리드(Matrix, Reloaded)에서도 악당이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에게 Ch. Haut-Brion 이외 다른 건 모두 쓰레기라고 말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화에서 와인은 로맨스의 매개체로, 권력과 허영의 상징으로, 지혜로움의 대표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제 인생을 얘기하네요. 어린 포도가 자라고 와인이 되고 오랜 시간동안 숙성되어 마지막에 제 맛을 내는 와인의 삶을 얘기합니다. 지금도 말없이 내 곁에서 향기를 내고 있는 이 와인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