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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대선 자금 수사로 한동안 떠들썩 했었지요. 줬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았다는 사람은 없고, 준 사람은 이런 용도로 줬다고 하는데 받았다는 사람은 전혀 다른 용도로 받았다고 하고.. 이렇게 도무지 의사소통이 안 되어 보이는 상황을 바라본 한 네티즌이 따갑게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모두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꼭 정치인들 사이에서만 이런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은 어떤가요?

A : 어제 Mas Daumas Gassac 화이트를 마셔봤는데 빈티지가 92년인데도 산도가 엄청나더라구. 처음에 와인잔에 맺힌 눈물만 보고 너무 꿀렁해서 스위트인가 했다가 놀랐다니까. 굉장히 fruity 했었어.


B : 그래? 나는 일전에 뽀므롤 와인을 마셔봤는데 바디가 아주 묵직~하더라고. 탄닌이 좀 세서 혀가 얼얼한 기분까지 들더라니까?


C : ??????

이 대화를 나눈 세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A와 B는 와인 언어를 말하는 사람이고 C는 그렇지 않다는 것 뿐입니다.
C가 보기에 맥주는 들이키면 목이 따끔따끔 하면서 시원~하고, 소주는 마시면 씁쓸한 것이 '크~' 소리를 불러일으키는 게 다인데, 도대체 와인은 왜 이런 건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겁니다. A와 B는 또 그들대로 "?????" 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C를 보면 김이 빠져서 신나는 기분이 반감되겠지요.


앞으로는 이런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마치 외국인에게 하듯 이렇게 물어봐야 할 판입니다.
"Do you speak wine?"

[ 와인 언어 할 줄 알아? ]

& Sweetness

와인 세계에 처음 입문하신 분들의 어록 베스트 1위는 "처음 와인 마시기 시작했는데 와인 좀 추천해 주세요. 좀 단 맛이 나는 와인이 맛있더라구요." 입니다. 여기서 '단 맛' 이란 와인의 sweetness 를 의미합니다. 주로 화이트 와인에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와인의 단 맛은 실질적으로 당도가 높아서 나타날 수도 있고,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생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와인 언어에서 sweet 의 반대말은 특이하게도 dry 입니다. 불어로는 sec(쎅) 이라고 하지요. 따라서 단 맛이 나는 와인에서부터 그렇지 않은 와인을 구분할 때에는 sweet / semi-dry / dry 혹은 doux (두) / demi-sec (드미-쎅) / sec (쎅) 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와인 초보들이 와인이 fruity한 (과일향이 나는)것과 sweet한 (단 맛이 나는) 것을 혼동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화이트 와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을 때 신선한 과일향이 풍부하게 나면서 과일 특유의 달콤한 냄새들이 기억 속에 저장된 후에 혀로 와인 맛을 보게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와인의 단 맛은 혀로 느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좀 더 잘 구분하려면 코를 막고 와인을 마셔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말로 그 와인이 sweet 와인이라면 과일향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단 맛이 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과일 향이 나는 것 같은데? ]

& Acidity

모든 와인은 산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로 포도 알갱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석산 (tartaric acid)이지요. 이 산도는 와인에 따라 다르며 레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의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할 때 더 유용하게 사용되는 어휘입니다. 화이트 와인이 갖는 산도는 곧 와인 자체의 골격을 상징하기 때문이지요. 이 산도가 높을수록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입 안에 느껴지는 와인의 바디 *1를 느끼고 자신이 마신 와인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됩니다.

산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은 생동감 있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산도가 낮은 와인은 밋밋하고 김빠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 혀의 양쪽 부분에서 이 산도를 감지하지요. 앞으로는 와인을 마시고 나면 그 와인이 '신선한 느낌을 주었는지, 달콤했는지, 밋밋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떫었는지' 혀로 느낀 산도에 따라 구분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와인 언어를 구사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 교회에 와인 언어 모임이 생겼네요? ]

어떠세요, 이제 A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나요? A는 "Mas Daumas Gassac 이라는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데, 처음에 봤을 때는 '단 맛이 강하게 나는' 스위트 와인인 줄 알았다가 막상 마시고 나니 산도가 매우 높고 과일향이 풍부한 (fruity) 와인이어서 놀랐다." 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B 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요?

1. 바디 : 입 안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부피감이나 중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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