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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오늘날 칠레는 450년이 넘는 와인생산의 전통을 지닌 세계 5위의 와인 수출국이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와인 생산량 대비 수출 점유율로 보자면 칠레는 세계 1위의 '수출 주도형' 와인생산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칠레 와인의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국내 와인수입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동안 칠레 와인의 시장 점유율은 금액면에서 4.1%(미화 120만 달러)로 7위였으나 2003년 상반기에는 7%(130만 달러)의 점유율을 보이며 무려 182.5%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 해 새로 선보인 와인 전문지 'Winies'는 창간호에서 국내 전문가 그룹의 1차 와인평가 대상으로 칠레 와인을 선정했는가 하면 청담동의 와인 바 'CASA del VINO'가 주최하는 '와인 아카데미' 시음회에선 칠레의 수퍼 프리미엄급 와인 7종을 골라 수평 시음회를 열기도 했다.

칠레 와인이 이처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마도 가격 대비 와인의 질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칠레 와인은 값에 비해 품질이 우수한 '밸류 와인(value wine)'의 보고라 일컬어지고 있다.

칠레 와인의 형성과 역사적 전개

와인생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칠레에 최초로 포도나무가 전해진 시기는 스페인의 아메리카대륙 식민지 정복자들에 의해 16세기 중반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6세기 후반 이후에는 여러 종류의 유럽 포도 품종이 전파되어 와인 생산량이 증가되었으며 이웃 페루에까지 수출되기 시작했다.

상업적 와인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 가능했으며 스페인 본국으로부터 자국 와인생산업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조치까지 발동될 정도였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칠레는 아메리카대륙의 최대 와인생산국으로 부상하는데 이는 캘리포니아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보다 20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18세기 들어서도 칠레의 와인생산과 수출은 증가 추세를 이어갔지만 대체로 값싼 와인의 대량판매 수준에 머물렀다.

칠레 와인산업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은 1830년 칠레 정부가 유럽에서 들여온 포도나무 등 각종 식물과 나무의 표본 묘목을 가꾸는 실험적 종묘원(Quinta Normal)을 설립한 사실이다. 이는 나중에 가서 19세기 후반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와인 재배지역에 필록세라(phylloxera)가 창궐했을 때 피해를 입지 않은 칠레가 유일하게 보유한 포도나무 표본이었다.

또 하나 칠레가 현대적인 와인생산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1851년 프랑스로부터 오늘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고급 포도품종을 수입하여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칠레는 1877년 경부터 품질이 월등하게 향상된 와인을 유럽에 수출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크게 번성하기 시작한 칠레의 와인산업은 세기말에 이르러 황금기를 구가했으며 국내에서도 1인당 연평균 와인 소비량이 80리터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칠레 와인 산업의 빛과 그늘

아이러니컬하게도 칠레 와인산업의 내리막길은 그 팽창 국면의 정점으로부터 시작됐다. 여기에는 칠레 정부가 한 몫을 단단히 해냈다.

와인산업의 호황이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사회적으로는 과음과 알코홀 중독에 따른 폐해가 발생하자 정부 차원의 각종 규제조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02년에 최초로 알코홀 규제법이 제정되어 주류 판매에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고 주말에 주류 판금조치가 내려졌다. 1938년에는 와인생산을 일정 한도로 규제하는 법까지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와인업계는 기술발전에 필요한 장비와 기계를 수입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불황의 찬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 칠레의 포도원은 절반 가량이 문을 닫아 다른 용도로 대체되었으며 국내 와인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다. 칠레 와인산업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반면에 1970년대 이후 미국, 호주 등 후발 신세계 지역 와인생산국에서는 괄목할 만한 와인산업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함으로써 칠레 와인의 국제경쟁력은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었다. 와인은 포도나무가 성장한 토양과 기후 그리고 와인을 만드는 인간의 열정을 반영하는 거울이지만 와인산업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와 드라마에는 흥망과 성쇠 그리고 위기와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1985년을 기점으로 칠레의 와인업계는 품질향상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기술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국내외로 동분서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칠레는 1985년에 처음으로 비넥스포(VINEXPO)에 4개 업체가 참가했으며, 점차 더 많은 와인업계 관계자들이 프랑스, 이태리, 캘리포니아 등지의 유수한 와이너리 견학을 마치고 돌아와 품질혁신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 특히 보르도가 칠레 와인산업의 부흥을 위한 중요한 귀감이 되었다.


1985년 이후 계속된 선진 와이너리 견학 열풍과 함께 보다 질 좋은 포도 품종과 이에 걸맞는 최적의 포도원 및 산지 탐색이 이어졌다.

경사진 언덕을 찾아 포도원을 조성하고 서늘한 기후지역을 찾아 샤르도네, 삐노 누와 품종 등을 새로 심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빠블로 모란데(Pablo Morande)가 까사블랑까(Casablanca Valley)에 샤르도네 품종을 새로 심기 시작했고 미구엘 또레스(Miguel Torres)가 도입한 온도조절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방식이 칠레에 두루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열기는 1990년대 들어서 까사블랑까와 레이다(Leyda)가 서늘한 기후지역의 새로운 와인산지로 떠오르고 꼴차구아(Colchagua)가 레드 와인의 중요한 산지로 부상하게 된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1990년대는 칠레 와인산업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고조된 시기였다.
칠레가 포도재배의 낙원으로 각광받으면서 유럽 및 미국의 유수한 와이너리 소유자와 투자가들이 칠레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거나 합작 또는 기술제휴를 제안해오기 시작했다.


일찍이 스페인의 미구엘 또레스가 1970년대에 가장 먼저 칠레에 와이너리 설립을 위한 투자를 했고 1987년에 프랑스의 샤또 라피트 로칠드(Baron Eric de Rothschild)는 칠레의 로스 바스꼬스(Los Vascos)와 합작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더 많은 외국의 와인 명가들이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1994년 리큐르 회사(Grand Marnier)로 유명한 프랑스의 알렉산드라 마르니에 라뽀스똘(Alexandra Marnier Lapostolle)은 와인 컨설턴트 미셸 롤랑(Michel Rolland)과 함께 칠레의 라바뜨(Rabat) 가문과 공동으로 까사 라뽀스똘(Casa Lapostolle)을 출범시켰다.

여기에서 1997년 첫 빈티지로 생산된 끌로 아빨따(Clos Apalta) 레드 와인은 칠레가 내놓은 최고급 와인 가운데 하나로 합작 생산의 위력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다.

1997년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 가문과 칠레의 대표적 와이너리인 꼰차이 또로(Concha y Toro)가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생산을 위한 합작계획을 발표하고 이듬 해 1996년 빈티지로 첫 출시한 알마비바(Almaviva)도 세계적 수준의 정상급 칠레 와인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1996년 끌로 께브라다 데 마꿀(Clos Quebrada de Macul) 포도원 소유주인 리까르도 뻬냐(Ricardo Pena)가 와인메이커 이그나시오 레까바렌(Ignacio Recabarren) 및 미국 뉴욕의 변호사인 데이빗 윌리엄스(David Williams)와 함께 3각 파트너십을 맺고 출범시킨 Domus Aurea 와인도 정상급 반열에 오르는 명품이다.


참고로 이그나시오 레까바렌은 칠레 뿐만 아니라 전체 신세계 와인 지역에서 영향력있는 일급 와인메이커이다.
칠레의 대표적 와이너리들을 두루 거치면서 와인을 만든 이그나시오는 서늘한 기후지역 와인 산지인 까사블랑까를 발굴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대형 와인업체와 합작을 통해 명품 와인을 생산한 사례로는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와 칠레의 비냐 에라쑤리스가 1995년 선보인 쎄냐(Sena)가 유명하다.


이후 많은 캘리포니아 와인 업체들이 칠레에 합작 또는 직접 투자를 시도하게 된 벤치마크의 의미가 있다.

이 자리에서 다 열거할 순 없지만 이 밖에도 현지 직접투자 혹은 합작투자를 통한 고급 와인생산의 사례는 부지기수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칠레 와인의 르네상스는 1990년 4400만 달러(30만 헥토리터)의 수출실적이 2003년에 6억 7천만 달러(394만 헥토리터)로 크게 증가한 사실만 보아도 그 활력을 짐작할 수 있다.

- MBC 부장 & 와인컬럼니스트 / 이세용 -

1. 칠레 와인의 세계 1
2. 칠레 와인의 세계 2
3. 칠레 와인의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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