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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솔직해진다는 것."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한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과연 이뿐일까요? 다른 사람들도 "아, 저 사람은 참 솔직해!"하고 인정할 때만 정말로 솔직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 방식을 사용하고 자신의 감정이 "솔직하게" 전달되기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죠?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시음한 와인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 보다 솔직할 수 있고 소위 기술적인 방식이라고 하는 표현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방식이 어떻게 더 "솔직한" 하다고 할 수 있는지 WineSpectator의 주간 기획물 "What am I tasting?"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 한국의 와인 애호가로서 와인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WineSpectator의 "솔직함"을 보라!

전 세계 사람들이 Winespectator의 와인 시음 노트를 믿고 이를 인용하려고 하는 이유는 각 와인들에 대한 아주 "정확한" 묘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묘사가 "정확하다"는 것은 와인을 묘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역으로 글의 내용에서 와인을 알아 맞출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는 인상파 작품들이 특정 부분을 중심 컨셉으로 묘사하는 것과 달리 리얼리즘 작품들이 대상의 모든 요소들을 옮겨와 그림만으로도 실물을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사실주의 그림은 그 대상의 색, 형태 그리고 음영의 요소들을 옮겨놓으므로 대상에 대한 묘사를 시도합니다. 그럼, 와인을 묘사하는 데는 과연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Winespectator의 What am I tasting 실례를 들어 직접 알아볼까요?

This red is pretty, with loads of berry and Indian spices on the nose. Full-bodied, with silky tannins and a long, long finish.

생각보다 지문이 간단하죠? 어려운 묘사나 표현들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지문이 의미하는 와인 프랑스 메독 지역에서 멜로 품종으로 만든 1998년산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 맞추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시음한 이의 "감각적" 표현에서 와인을 읽어낸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와인의 시각적, 후각적 그리고 미각적 측면과 이들의 종합적인 모습을 묘사한 표현들이 바로 힌트랍니다.

이 예문의 경우에는 "pretty red", "berry", "Indian spices", "full body", "silky tannin", "long finish" 등의 색, 향 그리고 맛을 묘사하는 표현들을 이용하는 거죠. 각 요소들을 적절이 조합해 공통 분모를 찾는 작업을 통해 정답이 나오는 거죠.

Pretty red 하는 표현이 어울리는 적포도 품종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면서 베리향과 인도의 향신료 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품종과 생산지는 어디인가? 현재 향의 상태와 탄닌의 숙성정도로 보아 몇 년 정도 숙성된 것인가. 등등 여러 질문을 통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의 정확하게 와인을 알아 맞출 수 있는 겁니다.

다른 경우도 있어요!!

여러 다른 와인 전문 서적에서 시음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볼까요?

Pomerol 1990
Tout est parfait. La robe pourpre, sombre et brillante à la fois. Le bouquet riche et complexe, avec des aromes de raisins tres murs et un boise tres fin, vanille, cacaote. La bouche somptuese, avec une grande palette de saveurs. Un mariage harmonieux entre un grand vin et une bonne barrique.
Guide Hachette 1994 de vins.


[완벽한 맛의 와인. 차분하면서도 반짝이는 보라색. 진하고 복합적인 와인의 향에서는 잘 익는 건포도의 향과 바닐라와 코코아 향이 나는 아주 연한 오크 향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하고 풍성한 맛의 와인. 좋은 와인과 좋은 오크의 최상의 조화.]

Chateau Fougas 1998
La robe affiche un noir profond et brillant. Le nez se trouve encore marque par le bois mais de qualite avec une chauffe qui apparait fine et elegante pour le vin. Ample, avec une attaque franche, la matiere devoile en bouche une superbe palette aromatique allant sur des parfums d'epices et de cedre. Un vin complex au prix attratif.
La Revue du Vin de France


[깊이와 반짝임이 있는 검붉은 색의 와인. 오크 향이 아직 강하게 하지만 이 향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맛의 섬세함과 우아함이 있다. 첫 모금에서부터 쉽게 드러나는 풍성한 향과 맛이 있으며, 향신료와 오크의 훌륭한 향이 입안에서 느껴진다. 적절한 가격대에 복합적인 맛과 향을 지닌 와인.]

Bodegas Alejandro Fernandex Pesquera 1996
Intense, intriguing chocolate, blackberry, plum, and anise aromas. A full bodied wine with a velvety texture and dense, complex flavors of blackberries and plum accented by notes of iron, earth, spice, and pine resin. Definitely made for long-term aging.
Food and Wine Magazine, Official Wine Guide 2000


[초콜릿, 블랙 베리, 서양 자두와 아니스 열매의 강하고 매혹적인 향. Full body 와인으로 벨벳 감촉과 블랙 베리와 자두의 복합적이 맛 그리고 여기에 하이라이트를 주는 철, 흙, 향신료와 송진 향이 있다. 오랜 보관이 가능한 와인.]

어때요? 위 글들에서 설명된 와인들의 향기과 맛이 느껴지십니까? 이들은 나름대로 "솔직하게" 마신 와인을 묘사했는데…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을 분들도 있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알 것 같은 때도 있고 전혀 상상이 안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뭐라구요??!!"

물론 "솔직한" 와인 표현이 가능하려면 와인의 여러 요소들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표현력도 있어야 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와인에 대한 표현 방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로 "yellow"라는 표현을 들어보지요. 영어로 "yellow". 불어로 "jaune". 이 표현을 와인에 적용 시켰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색을 연상해야 될까요? 그리고 어떻게 번역해서 이해야 될까요? "노란색"? "누리끼리"? "샛노랑"? "단무지색"? "개나리색"? 아니면, "엷게 탄 누룽지색"?

"yellow" 정도는 쉬운 편에 속할 수도 있죠. Black berry, raspberry, gooseberry, cranberry, anise, plum, pear(한국배와 전혀 다른 향을 지닌 서양 배), indian spices, passion fruit, marzipan, asparagus 등등과 같은 표현은 어떻게 합니까?

블랙 베리.. 라고 옮겨 놓으면 향이 전달이 되나요? 라즈베리는요? 인도 향신료 무슨 향이고 시계꽃 열매는 어떻게 생긴 거죠? 물론 해외 여행을 많이 하실 기회가 있으신 분은 아실 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베리류를 국내에서 먹게 되는 경우는 블루 베리 치즈 케잌 위에 올려진 블루 베리 정도? 그것도 치즈 케잌을 좋아하는 경우에만이죠. 아! 도너츠 집의 블루 베리 머핀에도 있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런 대상들에 빗대어 와인으로 표현하는 것. 과연 외국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호소력과 전달력이 있을까요?

"알아듣게 말해주세요."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표현들 외에도 다른 친근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저는 전에 "보리차 향","방앗간 냄새에서 고추 빻은 냄새"," 제주 똥 돼지 털 냄새", "집에서 잼 만들 때 나는 달큼한 향"등 여러 재미있고 그 단어가 표현하는 자극이 쉽게 연상 되는 표현들을 사용하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좋은 표현들이 있는데, 우리가 굳이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표현들을 가지고 얘기하기가 좀 그렇죠? 와인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솔직해 지는 것. 아마도 우리식 표현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죠?

저는 지금 선물로 받은 Rosemount Estates Cabernet Sauvignon Coonawara 1998을 마셔보려고 하는데, 같이 마시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실 분 안계신가요? ^^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와인 문화의 발상국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공부하고 우리가 사용한 표현을 고민하는 것이 정도(正道)겠죠?

다음 글부터는 외국에서 쓰는 와인 테이스팅 용어들 중 기본적인 몇 가지의 개념을 살펴보고 한국적인 표현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해 보기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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