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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와인을 구매할 때 와인 병 앞에 놓여 있는 가격표를 100% 신임하십니까?


'비싼 와인이 품질도 좋더라!' 라는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와인은 다른 주류와 달리 종류가 다양하여 코르크를 열기 전엔 결코 그 맛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와인에 대해 공부를 좀 하신 분들은 생산지별, 지역별, 품종별, 등급을 확인하시고 '대충 이러한 맛이겠구나' 하고 감 잡으시겠지만요.


그러나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와인을 구매할 때는 참 난감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여러분은 와인을 구매하실 때 구매의 기준을 어디에 두시는지요?

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오래 전에 선물로 드릴 와인을 사려고 와인샵에 들렸는데 와인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을 보고 매우 당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1-2만원 대에서부터 수 십만원에 이르는 다양한 와인 가격대에서 전 결국 값이 어느 정도 나가는 고급 와인을 한 병 골라 포장을 부탁했었지요.


당연히 전 내가 구입한 와인의 품질이 제가 지불한 만큼의 값을 하겠거니 했는데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와인의 가격엔 상당한 거품이 들어 있었음을..


그 가격으로 훨씬 더 좋은 품질의 것을 2병은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이렇듯 별 정보가 없는 일반인들이 코르크를 열지 않은 와인의 품질을 판단할 때는 아마도 그 기준을 가격에 두지 않을 까 싶습니다. 가격이 비싼 와인들은 시선을 한번 더 끌게 마련입니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각 생산자들은 자사의 와인들을 고급스럽게 보여 소비자들이 구매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심합니다. 병을 예쁘게 제작한다든지, 레이블을 돋보이게 디자인 한다든지, 심지어는 유명 스타들까지 동원하여 적극적인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결국 와인의 품질과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이 모든 것들은 와인의 구매가격과 직결되어 우리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인 것입니다.

도데체 와인의 가격은 왜 그렇게까지 비싸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 Wine Spectator에서는 미국의 와인 가격에 대한 기사를 내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15불이면 살 수 있는 와인들이 실제로는 3,4배나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기사 (2002년 12월 15일자)를 참고로 포도밭에서부터 와인샾에 이르기까지 와인 한 병의 가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떠한 요소들이 와인의 가격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 기회에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와인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포도원 -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노동력을 포함해 포도의 가격은 전체 와인생산비의 60%를 차지합니다. 와이너리들은 일반적으로 와인 1병의 가격을 포도 1톤 가격의 100분의 1로 잡 습니다. 즉, 카베르넷 소비뇽 1톤을 포도 생산자들로부터 4,000불에 구입한 와이너리는 와인 1병의 가격을 대략 40불로 책정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포도의 가격은 지역, 품종, 수확량, 특정 포도밭의 재배나 수확방법, 공급, 수요, 그리고 경제 사정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겠죠. 게다가 직접 포도밭을 구입하는 경우엔 그 비용과 대출 부담이 와이너리의 생산가에 더해지고 종국에는 와인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 와이너리 시설과 장비 -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압축기, 분쇄기, 펌프, 호스,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 저장 시설 등을 마련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교체 및 보수,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생산자들은 최신식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본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모든 부담금은 와인의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 와인양조 - 와인의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오크통의 사용여부 인데 생산자들에게 오크통은 두 번째로 와인의 생산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좋은 와인일수록 새 오크통의 사용비율은 높아지고 따라서 프리미엄급 와인들의 가격이 더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수록 이는 곧 품질과 연결되어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시설을 가동하는데 드는 전기료, 회계 관리비, 보험, 직원들의 급여 및 사무실 유지 비 등의 소소한 행정 비나 관리비도 계산되어야 합니다.

* 시간도 돈이다. - 새 포도원에서 첫 수확을 하기까지는 대략 3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수확을 마친 후에도 배럴과 병 속 숙성을 거치는 시간까지 계산을 하게 되면 와인이 시장에 선보이기까지는 약 5년 반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 기간 동안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확보되어야 하겠지요. 화이트와인의 경우는 많은 숙성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레드 와인보다는 시간 투자가 덜 들게 되고 따라서 가격이 좀 더 저렴하게 됩니다.

* 포장 -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와인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와인 포장에 각별한 신경을 쓰게 됩니다. 레이블에도 더욱 정성을 들이며 두꺼우면서 깊은 펀트를 갖고 있는 유리병들을 선호하게 되는데 이런 병들은 일반 와인 병보다 6배나 비싸다고 합니다. 코르크의 경우도 장기간 보관을 필요로 하는 와인의 경우엔 산화나 변질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좀 더 수명이 길고 품질이 좋은 코르크를 사용하게 되고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와인의 가격과 직결됩니다.

* 판촉과 유통 - 와이너리에서 와인의 포장이 일단 이루어지면 일련의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광고를 하고 판촉을 하고 시음 회를 열고 샘플을 보내고 보관창고 시설을 마련하고 선적을 하고 유통을 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드는데, 소비세를 포함해 이러한 일련의 비용들은 소비자가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도매상과 소매상의 마진 - 생산자로부터 와인을 구매하여 선적 비와 세금을 지불한 도매상은 비용을 충당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와인의 가격을 올리게 되겠죠.

그리고 나서 레스토랑이나 소매점에 와인을 팔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유통업자들이 지불하는 금액의 20~30%의 마진을 남긴다고 합니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와인들은 빨리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마진율을 낮춰 판매를 함으로써 엄청난 재고의 부담을 줄인다고 합니다. 소매점의 마진율은 판로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데, 대형 할인매장이나 체인 슈퍼마켓처럼 대량으로 구매를 하는 판매점은 소규모의 리커샵이나 전문가를 고용하여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인전문샵보다 훨씬 많은 할인을 해 줄 수가 있게 됩니다.

* 생산자 이윤 - 생산자는 수익의 40%를 세금으로 내게 되는데 앞서 말한 모든 비용을 감안할 때 생산자의 마진은 대략 거래가의 0~10%를 차지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그리 많은 이윤을 남기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50% 이상의 마진을 남기는 와이너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와이너리가 상당한 이윤을 보더라도 그건 결국 품질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몫으로 남겨진다고 하네요.

진정한 와인의 가치는 소비자의 판단에서 와야 한다.

와인의 생산과정에서 유통과정까지를 살펴 보니 와인의 가격이 어느 정도 고가에서 시작되는 사실을 그리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각 와인이 그 품질에 맞게 제 가격에 팔리고 있느냐는 것인데, 포장과 판촉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거품이 더해지는 것 또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와인들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여기에 더 많은 세금과 유통과정 중의 마진들이 더해지겠죠?

만약에 소비자들의 결정이 진정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나오게 된다면? 아마도 와인시장의 판도는 바뀌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실은 공급자가 결정한 와인가격이야 말로 소비자들이 와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인 것입니다.

우리 소비자들이 와인에 대해 좀 더 솔직해 질 수 있다면 와인을 지금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는 날이 곧 도래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생산자들의 열정과 포도밭 관리 및 양조기술 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겠죠.[_마침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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