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은광표

"누가 보졸레누보를 개성 없다 했지.. 자넨가?"

올해 보졸레 누보 맛 보셨나요? 어떠셨나요? 올해 보졸레 누보는 수확 전에 비가 와서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수확기간 동안은 쨍쨍 내리쬐는 햇볕 덕에 수확은 성공적이라고 하네요. 오히려 과일향은 더욱 풍부하고 잘 짜여진 골격에 바디감 마저 느껴진다고 하니 어허.. 그 정도면 보졸레 누보로서의 매력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요?

어쨌든 제가 맛 본 몇 개의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누보 본연의 의무를 다하는 아주 성실한 햇와인이었습니다. 맑고 밝은 연한 루비 빛깔은 너무 순수하다 못해 유혹적이기까지 하더군요. 산뜻한 산미는 제 혀 위에서 생동감이 넘쳐 났고 붉은 과일향은 입안 전체에서 놀아나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졸레 누보를 개성이 없는 와인이라고 했죠? 오랜 숙성의 끝에서 오는 깊은 맛이 없다고 해서 개성이 없는 싸구려 와인으로 치부하기엔 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아니 애당초 다른 와인들과 비교 한다는 자체가 우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졸레 누보는 말 그대로 햇 와인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그 점이 바로 보졸레누보의 개성이고 매력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올해도 보졸레 누보는 한 동안 숙성와인에만 찌들려 있었을 많은 애호가들에게 잠시나마 신선한 청량제가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 보졸레 누보가 왔었다!

2002년 11월 21일 자정에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나요? 아마도 어느 보졸레누보 행사장에서 카운트다운에 맞춰 또 한번 "Le Beaujolais Nouveau est arrive!"를 외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보졸레 누보하면 이제는 으레 시끌벅적한 파티가 연상되기까지 합니다. 올해는 유난히 보졸레누보 출시에 앞서 많은 언론이나 방송사에서 보졸레누보 와인을 다루더군요.

예년에 비해 보졸레누보 판매도 2배 이상 늘었다고 하고, 주요 호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보졸레누보 행사는 그 내용과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일부에서는 너무 과열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습니다. 외국의 상술에 잠시 놀아난 듯한 느낌도 들고... 한바탕 축제가 끝나고 난 지금 씁쓸한 이 기분은 저만의 느낌인가요?^^

보졸레누보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보졸레누보 축제 자체를 탓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허나 무엇인가 왜곡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보졸레누보 축제가 하나의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고는 하나 외국의 축제 내용도 우리와 같은 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실제 모습보다 조금은 과장되고 포장되어 해마다 11월 세번 째 목요일이면 파티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있는 보졸레 누보! 꼭 그렇게 법석을 떨면서 마셔야 하는 술인가요?

* 니들이 보졸레누보를 알아?

보졸레누보 출시에 앞서 이미 많은 언론이나 방송에서 수 차례 보졸레 와인을 다루었기에 어떤 와인인지 다들 잘 아실 줄로 믿습니다. 프랑스의 보졸레 지방에서 그 해 첫 수확한 가메(Gamay)라는 과일향 풍부한 포도로 만들어진 햇 와인입니다.

9월경부터 포도를 손수확하여 최대 4-5일간 발효를 시킨 후 압착을 하여 일주간의 짧은 숙성을 거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의 깊은 맛은 기대할 수 없으며 대신 신선함과 풍부한 과일향을 맘껏 즐길 수 있어 와인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접할 수가 있는 거죠.

6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리옹의 선술집을 중심으로 주로 지역 내에서 소비가 되던 보졸레 누보가 70년대에 파리로 진출하면서 파리내의 술집과 바를 장악하고 결국 보졸레누보 축제는 국가적 차원의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네고시앙들의 해외시장 개척이 성공을 거두면서 보졸레누보는 미국, 독일, 호주, 이탈리아, 일본 등지로 진출하게 되었고 90년대에 들어와서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 보졸레누보는 무죄!!

위의 설명에 의하면 보졸레누보는 햇술이라는 점 말고는 그저 그런 참 별볼일 없는 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보졸레 누보 마켓팅이 얼마나 성공적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략적 마켓팅만으로 이렇게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보졸레누보의 어떤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끌었기에 오늘 날 이러한 열풍을 몰고 온 것일까요? 물론 매체에서 신나게 북치고 장구 쳐 준 덕도 컸겠지만요.. ^^

우선 보졸레누보는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고 일년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하는 축제의 술이라는 점에서 가을 추수한 햇 곡식으로 음식을 하여 이웃과 함께 했던 우리의 정서와 많이 맞아 떨어졌던 건 아닐까요? 왠지 털털한 막걸리 같은 소박한 느낌도 들구요,,

그리고 두번째로는 보존기간이 길지 않아 한시적으로 밖에 맛볼 수 없는 햇 와인이라는 점에서 겨울 동안 소비하기 위해 각종 연말행사에 적극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구요.

마지막으로 정해진 출시 일을 맞추기 위해 비행기로 공수 되는 등 비싼 운송비가 한 몫을 하고 약간의 거품이 포함되어 현지 가격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2만원대의 저렴한 편인 와인의 가격도 눈길을 끌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보졸레누보는 우리의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술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값비싼 고급 와인들보다도 당위성이나 의미를 부여하기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네요. 문제는 어떤 식으로 우리의 실정과 조화를 이루어 보졸레누보가 올바른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는냐 인데...

개인적으로 보졸레누보의 인기가 상승하고 이에 편승하여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까지 높아져가는 것을 매우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보졸레누보를 수단으로 하는 우리의 놀이문화의 현실을 확인하면서 보졸레 누보가 왜곡 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보졸레누보축제가 아무리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마켓팅이라고는 하나 우리의 축제에는 목적성이 없는 듯 합니다.

축제의 술이라고는 하나 꼭 그렇게 떠들석해야만 보졸레누보를 음미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보졸레누보 축제에 보졸레누보는 잠시 등장만 할 뿐이고 다른 쇼와 눈요기거리만 가득하지 않던가요?

* 축제는 끝났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보졸레누보가 연말연시 용 선물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한해를 정리하면서 그 동안 고마웠던 지인들에게는 감사를 전하고 열심히 일해 준 동료나 부하 직원들에게는 고마움과 격려의 뜻을 담아서 선물한다는 취지가 매우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졸레누보는 작지만 큰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보졸레누보 파티도 현란한 쇼나 볼거리에 치중하기 보다는 이왕이면 와인동호회를 비롯한 와인애호가들에게 뭔가 의미 있는 행사가 되도록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지금은 우리의 와인문화가 짧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과도기가 아닐 까 싶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진정한 문화로서 자리잡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와인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저 또한 계속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초콜릿과 와인이 만났을 때

    『 사랑의 묘약, 초콜릿 』 영화 'Chocolate'에서 사랑의 전도사로 등장하는 '비안느'. 보수적이고 조용하기만 한 마을에서 그녀가 사랑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콜릿'이란 매개체를 통해서 입니다. 금욕과 위선, 그리고 편견으로 가득했던 마을 사람...
    Date2003.12.01
    Read More
  2. 보졸레 누보 유감 (有感)

    "누가 보졸레누보를 개성 없다 했지.. 자넨가?" 올해 보졸레 누보 맛 보셨나요? 어떠셨나요? 올해 보졸레 누보는 수확 전에 비가 와서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수확기간 동안은 쨍쨍 내리쬐는 햇볕 덕에 수확은 성공적이라고 하네요. 오히려 과일향은 더...
    Date2003.12.01
    Read More
  3. 와인, 그 작명의 원칙을 알아보자! (3)

    * 와인 이름 알기 세번째 산 - 멋스러운 이름의 의미는? 위에서 설명한 와인의 작명 방법과는 전혀 다르게 형용사나 유명 인사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생산지역과 전혀 상관없는 별도의 지역명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주로 뱅드페이(vins de pays...
    Date2003.12.01
    Read More
  4. 와인, 그 작명의 원칙을 알아보자! (2)

    * 와인 이름 알기 두번째 산 - Old World Wine "그럼, 샤블리(Chablis)도 품종명이고, 그리고 음, 버건디도 품종명이구, 어.. 근데. 이 샤또 안제루스(Chateau Angelus)의 레이블에는 포도품종이 안 써있네요. 이렇게 품종이 없는 경우에는 샤또 이름을 와인...
    Date2003.12.01
    Read More
  5. 와인, 그 작명의 원칙을 알아보자! (1)

    와인을 접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 중 하나는 와인의 이름에 관한 것일 겁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와인을 고를 때도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이름이고 와인을 하나 사려고 해도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이름!! 특정 와인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갔어도 "이거...
    Date2003.12.01
    Read More
  6. 양치기 소년과 한국 와인 문화 (3)

    { 빈엑스포와 세계 와인 페스티발 2002 } * 아시아를 매료시킨 와인의 향기 한국과 일본에 있어서 2002년 6월은 월드컵의 달이기도 했지만, 아주 중요한 와인 행사가 열리는 달이었습니다. 동경에서는 6월 4일부터 6일까지 Vinexpo Asia-Paicific이 열렸으며, ...
    Date2003.12.01
    Read More
  7. 양치기 소년과 한국 와인 문화 (1)

    [ 빈엑스포로 가는 길목에서... ] 동화 속에서 거짓말쟁이로 묘사된 양치기 소년 아시죠? 늑대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나타났다구 외친 그 양치기 소년 말입니다. 오늘 제가 갑자기 양치기 소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열심히 얘기를 ...
    Date2003.12.0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0 71 72 73 74 ... 107 Next
/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