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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바다 건너 우리에게 찾아온 와인. 어떻게 그 맛을 표현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아, 그냥 즐기면 되지. 표현하는 방법에 그렇게 신경을 써야 하느냐?"하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분들은 진정 와인을 "즐기시는" 분들이고 전혀 틀린 말씀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와인을 주도적인 위치에 두고, 내가 와인으로 인해 느낌 감정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전달하려는 입장에서는 통용되는 표현방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람직 하겠죠?

따라서 와인과의 솔직한 대화 제 2편과 3편에서는 와인을 표현하는 방법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채택해야 할 표현 방식들에 대한 논의를 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와인을 마시고 난 다음 이를 표현하는 데에는 첫번째로 두리뭉실하게 또는 상대적인 기분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방법과 시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이들과 달리 다소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시각, 후각과 미각, 그리고 이들의 상호조화도를 구분 및 조합하여 평가하는 다소 기술적인/테크니컬한 표현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이 둘 사이에도 그 정도에 따라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겠지만, 크게 이 둘로 나누어 살펴 보도록 합시다. 그럼, 이 표현방식들이 얼마나 와인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1-1. 두리뭉실하고 상대적인 기준을 사용한 표현.

미국 19세기의 유명한 단편 소설 작가인 Washington Irving(1783-1859)이 와인을 표현할 때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경우가 있어 예를 들어봅니다. 그는 Bordeaux에서 Ch. Margaux, Lafite와 Latour을 시음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Chateau Margaux was a wine of fine flavor-but not of equal body.
Lafite on the other had had less flavor than the former but
more body-an equality of flavor and body. Latour, well, that had
more body than flavor"

"샤또 마고는 맛은 좋지만, 바디가 그 맛에 따라주지 못한다. 반면에 샤또 라피트 (롯드쉴드)는 맛에서는 이 전 와인(마고)에 비해서 떨어지지만, 보다 묵직한 바디를 지녔다. 즉, 맛과 바디가 대등한 와인이다. 샤또 라투르는, 음, 바디 보다 맛이 더 강했다."

이 설명을 읽은 이에게 각각의 와인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이는 마치 영어 시험에서 A는 B보다 나이가 많고 C는 A와 친구인 경우, 각각의 나이는 얼마이고 그 성격을 어떠하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식의 묘사에서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와인을 묘사할 경우에는 각 와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조차도 불확실하지 않습니까?

맛과 바디가 균형을 이루지 않고 있어도 맛이 좋다는 것인지. 오히려 맛은 덜 하지만, 바디와 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더 좋다는 것인지. 샤또 마고와 샤또 라투르는 맛이 같다고 할 수 있는지. 알려고 들면 더 모호해 집니다.

다 일등급 와인 생산지의 와인들임을 틀림없지만, "flavor"과 "body"의 비교만으로는 각각의 맛의 탁월성을 구별 지어주는 개성을 알 수 가 없겠죠.

그가 진정 동시대의 단편 소설 작가들과 달리 유일하게 습작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작가일지는 몰라도, 그의 이와 같은 와인 묘사는 21세기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신 "도대체 그때 그가 마신 와인이 무슨 맛이였나구요!!!"라는 반응은 불러 일으킬지도 모르지요.

1-2. 시적인 표현.

시적인 표현이라함은 문학적인 표현법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은유법, 직유법 등등.. 국어와 문학 시간에 배웠던 다양한 표현법들. 비교를 통한 와인의 맛의 전달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표현 방식은 어떨까요? 의인법을 사용하여 San Gimignano의 화이트 와인을 표현한 이가 있어 그의 표현을 여기에 한번 옮겨보았습니다.

"[The wine]…kisses, licks, bites, thrusts and stings…"

음… 이 표현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kisses"와 "licks"는 그다지 부정적인 표현들이 아니지만, 나머지 표현들에서는 약간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듯도 하지 않습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리고 이 표현들은 와인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와인의 어떤 요소 때문에 화자가 이런 말을 했을까요? 화이트 와인이니까 와인의 산미 때문이었을까요? 왜 영어로 " biting acidity"라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요?

그럼 이 사람이 마신 와인이 처음에는 달콤하게, 그러니까 일종의 키스와 같이 다가 와서 핥아 내리듯 부드럽게 퍼지다가, 화이트 와인의 뼈대를 형성하는 산미가 강하게, 마치 물듯이, 불거져 나오듯이 또는 벌에 쏘인 듯이 느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이건 저 나름의 해석이지만, 확인해 볼 수도 없으니 불확실한 상태로만 남아야 겠네요. 게다가 이 단어들을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에 쓰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 어떤 와인인지 명시되지 않을 경우에는 더더욱 오리무중이겠죠?

이런 식으로 와인을 표현하는 것은 초보자들에게서 경이로운 눈길을 받을 지 몰라도 표현들이 다양하게 이해/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맛을 표현하는 것의 정확성에서는 조금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시적인 표현은 와인보다는 특정 와인을 묘사함으로 얻어지는 분위기에 더 역점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이 있을 수 있겠지요.

"와인이 자아내는 영롱한 색과 향기의 향연은 입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풍랑을 일으켰고, 그 부드러운 흐름과 길게 남는 메아리는 오래도록 뇌리에 향내를 피웠다."

이는 모든 이의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와인과 당시 나의 기분이 하나가 되는 몰아 지경. 하지만, 이와 같은 표현으로 기록된 와인은 과연 여러 해가 지나서 다시 읽어보았을 때 정확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시음을 그 때와 이를 다시 읽어보는 순간 사이에 마셔보았을 수많은 와인들이 그 당시의 감동을 감가했을 텐데 말입니다.

사실, 필자도 이와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필자를 와인의 세계로 끌어들인 와인은 다름아닌 Castello Verrazzano Chianti Classico입니다. 다른 라이트 바디의 와인과 마셔서 인지 이 와인이 상대적으로(?) 보인 묵직함과 오래 남는 향기는 나의 볼에 발그레한 꽃으로 피어났고, 그 경험을 와인의 색을 닮은 자주빛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몽롱한 기분은 이 와인과 이 와인에 사용되는 품종 특유의 산도를 잊어버리게 하여 다음에 이 와인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여 같이 마시게 되었을 때 모두들 입 하나 가득 고인 침을 삼키느라 고생 했어야만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그때 마신 와인이 어떤 해의 와인이었는지 조차도 기억을 못하고 있군요. 이러니까 보다 와인의 맛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이 더 확실히 되있는 기록이 필요한거구요.

이런 의미에서 제 3편에서는 시각, 후각, 미각을 이용하여 와인의 맛을 분석하고 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어떤 맛을 형성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기록한 여러 경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이 선택해야하는 표현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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