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말만해도 안성, 천안 등지에서는 제철을 맞은 포도를 주제로 축제를 한다고 들떠 있었다. 군악대와 의상대 시범경기, 도당굿 공연, 남사당 농악 놀이, 포도주와 칵테일 시음, 안성 맞춤 아가씨 선발 대회 등 이 두 지역에서는 2박3일에 걸쳐 벌어진 포도 축제를 준비했고 이는 올해의 수확에 대한 이들의 기대와 바람을 반영하는 듯 했다. 하지만, 8월 31일에 내린 비는 이 들뜬 분위기에 말 그대로 '찬물이 끼얹었다.'
'프라피룬'이 지나간 뒤, 밭에 나간 농부들은 망연자실했다. 떨어진 포도는 물론이고, 나무에 가까스로 붙어 있는 포도들도 비바람에 흠집이나 팔 수 없는 상태였다. 지난 해에도 비바람에 많은 손실을 입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와 같은 비가 한국에 와인 양조 문화 정착의 최대 방해꾼이다.
포도 양조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후 조건이다.
불어로는 Climat(끌리마).
제아무리 열심히 재배했어도 수확기에 맞추어 내리는 그해의 작황을 망치기 일수다. 비는 포도 나무에 의해서 흡수되고 결국 포도와 이로 만든 와인의 맛이 희석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안오고의 모든 일이 인간 뜻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Great wine is made 105% by God and Nature...
and ...-5% by man."
좋은 와인은 105% 신과 자연의 작품이고 인간은 여기에 -5%의 기여를 한다.
사실이 그렇다. 농부들은 비가 온 후에는 헬기를 동원하여 농원 일대를 건조시키기도 하고, 강수량이 적을 경우에는 물을 끌어다 쓴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이번 해의 비피해처럼 한 순간에 다 허사로 돌아 갈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인위적인 방식을 이용해 포도를 수확한 해의 와인은 자연적인 상태에서 생산한 와인에 비해 그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Galilee는 이와 같은 자연의 영향력을 달리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Le vin, c'est la lumiere du soleil captive dans l'eau.
와인, 물방울 속에 갇힌 햇살
물속에 갇힌 햇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가감을 조절할 수 없는 자연 재료. 따라서 제아무리 양조자들이 와인에 들어갈 포도를 선별하고 양조과정에 들어갈 효모와 사용될 발효, 숙성 통을 결정하고 알코올 도수를 맞추기 위해서 설탕을 넣는다고 해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것은 일정 수준이상의 일조량이다. 적정 수준의 일조량을 쏘인 포도만이 산도와 당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좋은 와인의 재료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와인에 햇빛을 담아 내겠는가?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자연은 와인의 생산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인색하지 않다. 한 차례의 나쁜 해가 있었으며 꼭 좋은 해가(great year)가 오기 마련이다. 밴저민 프랭클린은 이와 같은 자연의 현상들과 와인의 양조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We hear of the conversion of water into wine at the marriage in
Cana as of a miracle. But this conversion is through the goodness
of God, made every day before our eyes. Behold the rain which
descends from heaven upon our vineyards, and which
incorporates itself with the grapes, to be changed into wine
a constant proof that God loves us, and loves to see us happy.
우리는 예수가 가나에서 물을 와인으로 변하게 한 일은 일종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와 동일한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현으로 매일 우리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포도농원에 떨어지는 비를 보라. 이 비(물)는 포도 안에 스며들고 종국에는 와인으로 바뀐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기 좋아한다는 것의 지속적인 증거이다.
Climat가 하늘의 뜻을 반영하든 하나님의 섭리든 간에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와인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음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과 동시에 끊임없이 일깨워지는 것은 다른 행복의 요소들처럼 쉽게 인간이 원하는 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연은 늘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_마침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