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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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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한 7월, 건들한 8월을 지나, 바쁜 농사일로 몸도 마음도 발을 동동 구른다는 9월이 왔다. 우주 만물이 봄과 여름, 씨앗의 생장과 발육의 결실로 이 가을, 과일과 곡식을 세상에 내어놓는 계절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가을날의 축제에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하늘과 대지의 신께 감사하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안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축제를 즐겨야 할 충분한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요로운 잔치에 바쿠스의 와인이 빠질 수 없다. 먹고 마시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축제의 시간을 즐겨야 한다. 수확기의 축제는 농사의 연장이며 멋진 피날레인 동시에 내년 봄을 위한 생명 순환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분좋은 선물, 와인
 
한가위를 앞두고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며, 높게 뜬 휘영청 밝은 달과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로 외로움은 더해만 간다.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1년의 수확기에 접어 든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며 여유부릴 팔자 좋은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엊그제 받아 놓은 백화점의 두툼한 DM봉투를 열어 보니 추석 선물 품목이 가득 쏟아져 나와 고민에 빠져든다. 갈비는 구태의연하고, 굴비는 가격이 부담되는 반면 품질은 들쑥날쑥 한 게 문제다. 사과나 배도 특별하지가 않다. 그래서 떠오른 대안은 바로 와인이다.
 
와인을 선물한다는 건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며 지적인 이미지도 있고 유행에 앞서간다는 느낌도 준다. 일거다득, 즉 선물 아이템으로 와인만 한 것이 없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받는 이의 취향이나 스토리텔링에 부합하는 특별한 감동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백화점에서 날아온 추석선물 카탈로그에서 갈비나 과일 책자는 집어 던져야 마땅하다. 틀에 박힌 뻔한 선물 대신 감동과 배려가 있고 소통이 가능한 선물이라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잘만 하면 비용 대비 몇 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바로 와인이다.
 
단, 받는 이의 수준과 와인 지식, 취향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와인 선물은 자칫 독배를 마실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선물로 와인을 고르는 요령을 알아보려고 한다. 일단 와인을 선물하기로 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얼마짜리를 살까, 어떤 산지의 어떤 품종으로 만든 것을 살까, 이 와인을 받을 사람은 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떤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할까 등등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원래 선물이라는 게, 고민하고 재고 할 것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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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선물할 와인의 예산을 정하자
 
필자는 직업상 와인을 가까이 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와인 선정에 대한 자문을 요청 받는 일이 많다. 그런데 무작정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난감하다. 가장 먼저 와인의 가격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편의상 10만 원 이상 100만 원 이하의 와인을 고급 와인으로, 5-10만 원대 와인을 밸류 와인(가격이 합리적이고 품질도 갖춘 와인)으로, 3만 원대 이하는 저렴한 와인으로 분류해 보자. 고급 와인은 어지간하면 맛있는데, 이는 그 와인을 선물로 받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내 돈 주고 와인을 사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돈을 들여 사는 와인은 싸고 맛도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와인에서 높은 만족도를 얻으려면 칠레나 호주산 와인을 고르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 이곳의 온화한 날씨는 와인이 풍부한 과일 풍미, 당도, 타닌을 지니게 하며, 매년 일정한 날씨 덕분에 와인이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5~10만원 사이의 밸류 와인은 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서, 와인전문가(또는 그들이 펴낸 책)나 와인을 잘 아는 지인들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고급 와인을 고를 때는 평상시 스크랩해놓은 그랑크뤼 와인리스트와 가격, 시음 노트와 빈티지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일단 코르크 마개를 열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선물을 받는 사람의 내공과 취향을 파악하자
 
지인 중에 와인을 선물했다가 낭패를 봤다는 사람이 있다. 선물 받는 사람이 와인 애호가여서, 전문가가 발표하는 와인 점수도 들여다보고 와인 좀 안다는 이들로부터 귀동냥도 하는 등 나름 조사를 거듭한 끝에 보르도의 그랑크뤼 와인을 골라서 선물했다. 그런데 문제는, 선물 받은 사람이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와인만 마시는 취향을 가진 것이었다. 결국 선물한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은 빛을 보지 못했고 와인을 선물한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와인을 선물할 때는 받는 이의 내공과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양주 같은 독주를 마시는 이에게는 구조감이 좋은 보르도, 호주, 미국, 칠레산 와인 또는 파워풀한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와인을 선물하는 것이 안전하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이에게라면 굳이 와인을 선물할 필요가 있는지 재고해 봐야 한다. 와인 고수들은 희귀하거나 구하기 힘든 유명한 와인을, 섬세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부르고뉴의 좋은 밭에서 나온 와인을 선호한다. 브랜드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는 와인도 예외 없이 유명세가 있는 것을 선물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와인을 좀더 저렴하게 사는 방법
 
수입 와인의 품목이 점점 많아지고 와인의 빈티지가 해마다 바뀌면서, 남은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와인을 대량 방출하는 일이 잦다. 이는 수입사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와인애호가에게는 다시 없는 좋은 기회다. 우선, 레이블 훼손 또는 반품 등의 이유로 할인 처리하는 와인 중에서도 보관 상태가 좋은 와인을 고른다면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보관상태가 나쁘거나 한여름에 고열로 끓어 넘친 와인도 할인행사에 종종 등장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또한 와인을 살 때마다 작성해 놓은 노트, 빈티지 차트, 우수 와이너리 리스트나 우수 브랜드 리스트 등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터넷 와인 커뮤니티나 와인 전문 사이트에서 활인 정보를 검색하여 발품 파는 수고를 감수하면 훨씬 더 좋은 와인을 구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경험을 쌓을수록 자연스레 터득하는 노하우이다. 이런 노하우를 가진 사람과 함께 와인을 사러 다니다 보면 자동으로 와인 고르는 법은 알게 된다.
 
 
와인을 선물할 때 글을 덧붙이는 센스
 
보통 와인을 포장해서 명함 한 장 붙여 보내면 그뿐이다. 그러나 모든 선물이 그렇듯 ‘성의’야 말로 선물의 정수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와인 한 병 달랑 보내는 것보다는, 와인에 엮인 역사와 와인의 정보 또는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정보를 프린트해서 덧붙인다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선물 받는 사람이 와인애호가라면 와인과 와인책으로 구성한 선물도 값질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선물은 정성이다. 비싼 와인 한 병보다는 마음 담긴 한 줄의 글과 카드 한 장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가을은 일년 중 와인 마시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봄마다 괴롭히는 알레르기도 없고 여름처럼 덥고 지치지도 않으며 겨울처럼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와인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사람도 결국 자연의 일부이기에, 가을에는 잘 숙성된 와인처럼 마음의 여유와 온도가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이 가을, 우리는 바쿠스가 벌이는 가을 축제에서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 와인애호가들도 이 축제에 동참해서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와인을 사랑하고 즐겨야 한다. 이것이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카르페 디엠 CarpeDiem의 참다운 가치일 것이다. 이것이 삶이고, 이것이 와인이며, 이것이 또한 바쿠스의 축제이다.
 
 
[ 추천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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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코야 다이아몬드 마운틴 까베르네 소비뇽
Lokoya Diamond Mountain Cabernet Sauvignon
 
로코야는 미국의 유명한 와이너리 켄달 잭슨 社에서 소유한 컬트 와인 브랜드이다. 켄달 잭슨은 나파 밸리에 가장 넓은 까베르네 소비뇽 포도원을 소유하면서 로코야, 카디날레 등 다양한 컬트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100% 프랑스산 새 오크 배럴에서 20개월 숙성시킨 후 정제나 여과과정 없이 병입하는 로코야의 연간 생산량은 100케이스가 채 되지 않는다. 블랙베리, 블루베리 등의 과일 향과 여운으로 이어지는 스모키한 아로마, 흑연과 미네랄 향 등이 잘 만들어진 까베르네 소비뇽 스타일을 보여준다. 풍부한 맛과 파워풀한 바디감을 지닌 와인으로, 수확연도로부터 최소한 8년에서 최대 20년까지 숙성시킬 수 있는 와인이다.(신세계 L&B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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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 오로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Ruffino Riserva Ducale Oro Chianti Classico Riserva DOCG
 
루피노는 토스카나 와인의 전통을, 특히 끼안티 와인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 왔으며, 1984년 끼안띠 지역이 DOCG로 지정되었을 때 끼안티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초의 보증 레이블 “AAA00000001”을 수여 받기도 했다.'공작을 위해 별도로 보관된 와인’임을 뜻하는'리제르바 두깔레’라는 와인의 이름은, 과거 아오스타 지역의 공작이 와인을 시음한 후 반한 나머지 그 와인들을 자신에게만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산조베제에 소량의 카베르네와 메를로가 섞인 이 와인은 강렬한 베리와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 초콜릿과 커피 풍미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균형이 잘 잡혀있다. (금양인터내셔날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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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토 몽투스Chateau Montus
 
'프랑스 남서부의 페트뤼스', '프랑스의 베가 시실리아'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샤토 몽투스는 프랑스 마디랑 지역의 대부代父 알랭 브루몽이 만드는 와인이다. 따나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은 짙은 색과 높은 알코올 함량을 지니며 타닌이 많은데, 샤토 몽투스처럼 잘 만든 와인은 놀랍도록 훌륭한 균형을 갖추고 있으며 매끈한 질감을 선보인다. (비노쿠스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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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오크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Silver Oak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실버오크는 카베르네 품종과 미국 오크만을 고집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최상급 와인을 만들어 온 와이너리로, 1972년 알렉산더 밸리의 포도원에서 출시한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실버오크의 첫 빈티지이며 1978년부터 나파 밸리에서도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 두 와인은 출시 직후 바로 마셔도 좋지만, 수 년의 숙성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낸다. 2009년에 실버 오크는 자체적으로 오크통을 제작함으로써 그 품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는데,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2010년 빈티지 와인부터는 더욱 정제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하이트진로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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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 텔레그라프 샤또네프 뒤 빠쁘 라 크로우
Vieux Télégraphe Châteauneuf du Pape La Crau’
 
브루니에 가문의 시작이자 플래그쉽 와이너리인 도멘 뒤 비유 텔레그라프는 라 크로우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된 2011년 빈티지의 샤또네프 뒤 빠쁘 라 크로우 와인은 뜨거운 봄, 시원한 여름, 뜨거운 가을이라는 묘한 빈티지가 잘 표현되어 있는 레드 와인으로, 짙은 보라빛에 둘러싸인 붉은 색을 띄고 있다. 또한 잘 익은 체리, 자두, 블랙 베리의 향과 함께 검은 후추의 스파이시한 향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은은한 삼나무 뉘앙스가 길고 그윽한 여운으로 이어진다. 화려하기보다는 담백하고, 상당한 파워와 구조감을 느낄 수 있는 장기 숙성형 와인이다.(에노테카코리아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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