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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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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다. 아직은 늦추위와 겨울의 잔재로 몸은 움츠러들지만, 이미 달의 경계를 넘고 절기를 넘겼으므로 이제는 마땅히 봄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비록 이렇다 할 추위 없이 보냈지만, 지난 겨울은 정치, 경제, 국제분쟁과 각종 사고들, SNS를 타고 흐르는 흉흉한 이야기와 풍문들로 무엇 하나 속 시원한 일 없이 견뎌냈다. 그러고 보면, 이제 봄이 되어서라도 얼어붙은 계곡물이 풀리듯 세상사도 술술 풀려가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봄 처녀의 가슴처럼 설레고 들뜨는 것은 봄이 주는 어떤 기대감이다. 그리고 그 기대감의 원천은 봄이 갖는 생명력, 푸르름으로의 복귀, 다시 청춘의 시작… 이런 것들이 아닐까.
 
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음반 한 장이 있다. 바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Beethoven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5 “Spring” in F major, Op. 24)의 ‘La Primavera’가 그것이다. LP를 꺼내어 턴테이블에 올리면, 살바토레 아카르도(Salvatore Accardo)가 활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다정다감한 멜로디와 상쾌함으로 봄날의 양감을 넉넉하게 전한다. 눈을 지긋이 감고 이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노라면 예쁜 새들의 지저귐과 아침 안개가 피어 오르는 숲, 역광에서 비추는 푸른 새싹 잎 위로 굴러 떨어지는 맑고 투명한 이슬방울 같은 판타지가 떠오른다.
 
완연한 봄날의 아침, 멋진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마리아주다. 이 곡이 발표된 1801년, 베토벤은 이미 귀가 먼 상태였다고 한다. 음악가로서 청력상실이라는 천형을 이겨내고 오히려 자신의 음악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를 만들어낸 마에스트로에게 존경과 경외심이 저절로 솟는다. 어쩌면, 인생의 참다운 결실은 고통을 관통하고 나서야 주어지는 봄꽃 같은 것이 아닐까.
 
여리고 보드라운 새싹이 얼어붙었던 동토의 땅을 뚫고 올라와 마침내 푸른 빛을 터뜨리는 마이크로의 세계는 경이롭고도 감동적이다. 마른 가지에서 안간힘으로 수액을 빨아올려 가지 끝에서 저마다 꽃 봉우리를 터뜨리는 자연의 생명력을 발견하는 순간, 또 하나의 우주와 마주하는 황홀경이 펼쳐진다.
 
(Clos du Moulin aux Moines).jpg
 
여기, 와인의 세계에서도 포도나무 한 그루를 하나의 우주로 인정하고, 그 포도나무 한 그루가 스스로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로 생장하고, 완벽한 와인 한 병이 되길 꿈꾸는 생명주의자들의 와인이 있다. 이름하여, 비오디나미 와인! 이 글에서는 최근 와인산업과 외식업계의 화제의 중심이면서, 와인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완소 와인이자, 최근 장기 침체 불황을 겪고 있는 와인산업에서 오히려 10여 년간 20-30%의 고성장을 구가하는 비오디나미 와인의 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비오디나미 와인은 말 그대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Biodynamic Agriculture)으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 1924년 인지학 정신과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주창한 개념을 와인 농법에 적용한 비오디나미 와인농법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점성술이나 연금술사들이 만든 천체력과 음력 농사법, 미신 등을 기반으로 한다. 과거에는 과학적인 증명이 어려웠지만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그 효용이 입증되고 있다. 비오디나미 와인 농법의 핵심은 화학적 요소가 전혀 없는 자연퇴비를 사용해 토양과 포도나무의 면역력과 자생력을 높여 결과물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친환경 농법으로 만든 와인 또는 자연주의 와인(Natural wine)이라고도 부르는 비오디나미 와인은,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의 아젠다로 ‘지속가능한 발전 Sustainable Development’이 선정되면서 와인산업에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주목 받는 비오디나미 와인들이 출현하면서, 애호가들로부터 엄청난 호응과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농법으로 혁신성을 담보하고 있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의 회귀와 맞닿아 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과정에서 첨단 기술과 지식에 기대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자연 농법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트랙터 대신 소나 말을 끌며 포도밭을 경작함으로써 포도밭 주위의 다양한 생물들이 이루어놓은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100% 천연 퇴비와 천연 효모를 사용하며 비료나 농약 같은 일체의 화학제품이나 이산화황 같은 보존제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즉 인위적인 간섭을 최소화하여 가급적 자연 생태계 스스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별과 달의 주기에 맞춰 포도를 재배하며, 포도나무 한 그루가 독립된 유기체로서 스스로 지력을 강화하고 온전한 생명체로 성장하는 순환 과정을 통해 가장 자연적인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기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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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일부는 포도나무에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천적을 물리치기 위해 동물의 뼈나 피, 가죽을 태워 뿌리는 등 주술이나 미신에 가까운 극단적인 농법까지도 활용한다. 하지만, 첨단 과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생산량을 늘리고 포도의 당도를 높여 좋은 가격을 받는 것에 초점을 두는 상업적인 와인 기업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이들이 모색한 방법은'와인에 대한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졌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대한 와인” 내지는 “괴물 같은 와인”들을 등장시켰다.
 
대표적인 비오디나미 와인 생산자로는 프랑스에서 가장 척박하고 볼품없었던 땅 보졸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놀라운 와인을 창조해낸 마르셀 라피에르(Marcel Lapierre), 비오디나미의 권위자로 불리는 루아르 지역의 와인생산자 니콜라 졸리(Nicolas Joly),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천재적인 양조가 디디에 다그노(Didier Dagueneau), 알자스 지역의 거장 마르셀 다이스 (Marcel Deiss), 그리고 ‘와인의 여제’ 르루아(Lalou Bize-Leroy) 여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들의 거대한 영향력은 호주의 마가렛 리버와 타스마니아, 칠레, 스페인, 미국의 나파 밸리, 오레곤, 워싱턴 등 세계 도처에서 확산 일로에 있다. 최근에는 영국과 프랑스에 비오디나미 와인 전문 상점까지 찾아볼 수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극단적인 비오디나미 와인생산자로 분류되는 요스코 그라브너(Josko Gravner)의 화이트 와인(오렌지색을 띠고 있어'오렌지 와인’이라고도 부른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와인업계의 이단아 또는 괴짜”, “와인의 혁명가”, “와인 천재”라고 불릴 만큼 그의 와인은 충격적이고 특이하며 특별하다. 마치 전쟁과도 같은 그만의 와인 혁명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와인 산업을 견학하며 상업적으로 표준화되고 매뉴얼적인 와인 농법과 획일화된 와인들로부터 어떤 깨달음을 얻은 그는, 귀국 후 돌연히 포도밭을 갈아엎고 프리울리 카르조 지역의 백악질 산악 지대에 지하 셀러를 짓기 시작한다. 또한 조지아에서 주문 제작한 질그릇 항아리에 와인을 담은 후 밀랍으로 봉인하여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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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수천 년 전 그리스로마 시대에 와인을 보관했던 암포라(Amporae, 그리스 시대에 사용하던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진흙 항아리)에 와인을 넣고 땅속에 묻는 등, 이제까지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양조법을 시도했다. 그는 한 병의 와인을 생산하기까지 기술적 개입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는데, 예를 들어 포도알을 파쇄하지 않고 침용시켜 만든 오렌지색 화이트 와인은 파격에 가까웠다. 이러한 그라브너 스타일의 와인에 대해 와인 전문가들조차 “상했다”, “산화되었다”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누구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위대한 초자연주의 와인의 출현”이라는 등 극단적인 평가가 오갔다. 필자의 경우는 물론, 후자다.
 
세계적인 와인전문지 Wine Spectator의 칼럼니스트이자 <와인력>(원제:Making Sense of Wine)의 저자인 매트 크레이머(Matt Kramer)는, 최근 칼럼을 통해 와인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나파 밸리와 보르도 지역을 향해 날을 세웠다. “미국 나파 밸리의 와인은 1980년대 이후 더 이상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고, 명성에 안주해 안정적인 판매와 막대한 이윤 챙기기에 급급한 보르도의 크뤼급 샤토들 역시 더 이상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와인 시장은 기득권에 안주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호시절이 아니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Jr. Parker)의 100점 평가 체계에 길들여진, 이른바 파커화(Parkerization) 된 와인들은 수준 높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더 이상 감흥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라브너 같은 비오디나미 와인들의 새로운 도전은 그 의미가 크다.
 
햇볕이 따스한 어느 봄의 오후, 책 속의 잘 정제된 지식 못지않게 날 것의 생명력을 오롯이 담은 그라브너 와인 한 잔을 음미하며, 세상에 반복되는 수많은 것들 중에 자신만의 One & Only의 가치에 도전하는 삶, 자연주의와 생명력의 위대함을 보여준 요스코 그라브너에게 경배를 보낸다. 춘풍연풍이라! 아무래도 봄바람엔 싱그러운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추 천 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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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지역의 혁명가, 요스코 그라브너가 만드는 명품 와인이다. 주황색에 가까운 탁한 금빛으로 인해 그라브너의 화이트 와인은'오렌지 와인’이라 불리며,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 소비뇽 블랑을 위주로 피노 그리지오와 샤르도네가 블렌딩된 이 와인은 밀랍, 라벤더 허니, 카라멜 같은 향을 발산하며, 살구, 오렌지 껍질, 꽃과 달콤한 향신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질감, 적당한 무게감, 길고 조화로운 여운을 갖추어 우아한 풍미를 선사한다. (수입_비노비노)
 
 
클로 드 물랭.jpg
 
한때 수도원의 소유였던 도멘 클로 드 물랭 오 무안은 10세기가 흐른 2008년에 앙드리유 가문에 귀속되었다. 특히 이곳의 지하 저장고는 조상들의 손길이 묻어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오늘날에도 세심하고 주의 깊게 관리되고 있으며,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기다란 돌담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포도밭은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가문의 와인에 대한 열정과 노력 덕분에, 도멘이 위치한 오세이 뒤레스 지역은 오늘날 부르고뉴의 오랜 와인 산지로써 새롭게 재조명 받고 있다.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은 강건한 타닌과 매력적인 향신료 향을 드러내며, 짙은 루비색과 풍성하고 농축된 향미가 일품이다. (수입_비노쿠스)
 
 
아로호 아이슬 빈야드.jpg
 
아로호 에스테이트는 나파 밸리의 스크리밍 이글, 할란, 콜긴, 그레이스 패밀리와 함께 세계 정상급 와인을 생산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컬트 와인생산자이다. 이곳이 소유하고 있는 아이슬 빈야드는 나파 최북단의 고원에 위치하며,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숙성력이 길고 고상한 와인을 탄생시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포도밭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진한 보라색을 띠며, 카시스와 블랙베리, 구운 빵과 흙, 희미한 삼나무 향이 나고, 비단같이 부드럽고 풍만한 질감을 드러낸다. 아로호 에스테이트는 땅이 건강할수록 와인의 풍미가 더 향상된다는 믿음 하에,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수입_나라셀라)
 
 
디디에 다그노.jpg
 
디디에 다그노는 한마디로 세계 최고의 소비뇽 블랑 와인 양조자이다.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이단아이자 천재로 알려진 디디에 다그노는, 소비뇽 블랑을 오크통에서 발효시켜 육중한 스타일로 만든 최초의 푸이 퓌메(Pouilly Fume) 양조가이다. 복합적이고 풍부하며 오랜 숙성력을 지닌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그는 완벽한 균형을 갖춘 극소량의 포도만 수확해서 와인을 양조했으며, 와인을 오크통에 숙성시킴으로써 차원이 다른 소비뇽 블랑 와인을 탄생시켰다. 2008년 경비행기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의 뒤를 이어, 현재 그의 아들 루이 벤자민(Louis-Benjamin)이 대를 이어 아버지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수입_비노쿠스)
 
 
끝.

 

※[옴부즈 맨] 비오디나미 와인과 자연 와인의 경계에 대하여

 

비오디나미 와인생산자 중 특히 큰 규모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경우, 허용된 범위 내에서 아황산을 사용하기도 하며, 병입 전의 와인을 시음할 때에 아황산을 첨가했는지의 여부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반면, 자연와인에는 아황산을 전혀 첨가하지 않은 자연와인(natural wine)과 극소량(1~4g/hl)의 아황산을 첨가한 와인,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물론 비오디나미 와인 중에도 아황산을 극소량만 첨가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허용된 최대량을 첨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자연와인과 비오디나미 와인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친환경 와인은 이들과 또 다릅니다. 친환경 농법은 포도밭에서 농약은 사용하지 않지만 제초제나 해충제 등은 사용합니다. 따라서, 농약뿐만 아니라 제초제, 해충제마저도 사용하지 않는 비오디나미 와인 및 자연와인과는 다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본문 중 친환경 농법으로 만든 와인 또는 자연주의 와인이라고도 부르는 비오디나미 와인은…”이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와인의 경계를 불명확하게 만드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또한 이산화황 같은 보존제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장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모든 포도밭은 포도나무, 포도꽃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 황산을 사용합니다. , 사용량과 횟수, 수확하기 전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시기 등이 와인생산자마다 다를 뿐이죠. 언급했다시피 자연주의 와인생산자도 포도를 재배할 때 극소량의 아황산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덧붙여, 포도밭에서뿐만 아니라 와인을 숙성시킬 때, 와인을 병입할 때에도 아황산을 사용합니다. 아황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제보: 프랑스 르와르 앙쥬 지역의 자연와인 생산자이자 네고시앙인 손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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