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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와인애호가들의 회귀점, 보르도>
 
 
 
보르도의 심장 메독MEDOC에서의
 
시간여행 [1]
 
 
 
글, 사진 _ 유경종
 
 
 
아침 일찍 인천 공항에서 에어프랑스 AF267편에 탑승, 몇 편의 영화도 보고 기내 제공 샴페인도 욕심껏 즐기며 꼬박 11시간이 다 지나서야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보르도 공항으로 환승 수속을 하고 1시간 반을 기다려 조금 작은 비행기로 옮겨 탄 후 약 1시간 20분을 날아가 드디어 와인의 나라 보르도에 도착했다. 축복의 땅이자 와인의 고향인 보르도. 그 중에서도, 1855년 그랑크뤼 클라쎄 와인들과 메독, 오 메독, 크뤼 부르주아, 크뤼 아르티장 와인 등 다양한 와인산업의 스펙트럼을 세계 최초로 체계화한, 세계 와인 산업의 메카이자 심장부인 메독 지역을 집중 탐구하는 와인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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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행기에서 보르도 시내 상공을 지나가며 아이패드로 갸론 강(지롱드 강의 상류이기도 하다)을 촬영한 모습이다. 이 강이야 말로 보르도 메독의 위대한 와인을 키워낸 테루아의 젖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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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독의 기후와 테루아에 대한 이해
 
 
이름만으로도 최고의 권위가 따라다니는 메독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으며 위도 45도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 산지로, 보르도의 중심이자 와인 산업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메독 지역을 말 그대로'周遊天下(주유천하)’하면서'酒遊天下’하고 있자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호강은 없을 듯 하다. 유유히 흐르는 지롱드 강의 하구를 따라 메독을 가로지르는 루트 데 샤토(Route des Chateaux), 이 길을 달리며 끝도 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포도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책이나 와인 병 레이블에서나 보던 유명한 사토들이 휙휙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저 멀리 지롱드 강이 보인다. 그리고 오매불망하는 위대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샤토에 발을 디디면, 얼마나 오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오래된 지하 와인 저장고(카브)가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이곳에서 오랜 잠을 자던 주신酒神 바쿠스가 깨어나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머리가 하얗게 센 촌로村老의 와인생산자가, 멀리 동양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자신이 가꾸는'포도의 땅’을 공개한다. 그가 맛 보여주는 사랑으로 가득 찬 와인 한 잔을 음미하면서, 그의 와인이, 땅이, 포도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에게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그 고단하고 험난한 여정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두 눈을 감고 진지하게 와인을 시음하는 동안, 와인생산자는 우리가 자신이 만든 와인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축복해주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순간은 아주 고요하며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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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독은 포도밭 이랑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테루아가 달라진다” 또는 “위대한 샤토는 물을 바라본다” 등 메독 사람들의 테루아 예찬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이해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MEDOC이라는 지명은 라틴어로 “In medio aquae” 즉 “물의 한 가운데”라는 어원에서 유래한 것이다. 실제로 메독은 서쪽으로 대서양, 동쪽으로 지롱드 강, 즉 물에 둘러 쌓인 곳이다. 북쪽 끝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베르동 지역에서 남쪽 보르도 시내까지 약 100km, 포도밭 면적은 총 16,500헥타르에 달하는 넓적한 바게트 빵 모양으로 생겼다. 해발 평균 10m-25m의 얕은 평지와 구릉으로 이루어진 메독에는 Croupe(자갈언덕)이 많이 보인다. 대서양에 인접한 리스트락 지역의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샤토 퓌르카스 뒤프레(Ch. Fourcas Dupre)가 해발 45m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대서양에 맞닿아 있어 메독은 해양성 기후를 띠며, 이러한 기후는 겨울의 혹한을 막아주며 여름의 혹서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장기의 충분한 강우량과 수확기 직전까지의 충분한 일조량은 포도에 충분한 당도를 축적시키는데, 이러한 천혜의 환경 덕분에 메독은'포도의 땅’,'포도의 나라’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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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독의 샤토들을 방문할 때에는 그들만의 테루아에 대한 열렬한 예찬을 반복적으로 들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테루아라는 단어는 포도나무의 생장에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환경 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지만, 이곳의 와인생산자들은 주로 땅과 결부시켜 “‘메독’은 특별한 곳”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들이 안내하는 포도밭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종종 “우리 포도밭은 석회질”이거나 “점토질”, “저쪽은 자갈땅”, 혹은 그 자갈이 “붉다”, “하얗다”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혹자는 이런 설명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그네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실제로 와인을 시음하면, 뭔가 어렴풋하게라도 토양의 성질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작은 포도밭 안에서도 이 밭과 저 밭이, 심지어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테루아가 달라진다고 호들갑을 떠는 포도밭 농부들을 직접 만나보지 않았다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장된 수사요 지나친 상술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밭이 다르고 빈티지가 다르고 만드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다른 맛의 포도가 만들어지고 와인 또한 다른 맛을 낸다. 이것이 바로 테루아가 부리는 마술이며, 와인애호가들이 세계 각국의 와이너리들을 돌아다니며 찾는 진정한 재미다.
 
척박한 토양과 배수가 잘 되는 땅에서 포도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려 생존하고, 뿌리가 흡수한 수분과 영양은 와인의 맛과 향기로 인간에게 전해진다. 이 때문에 테루아를 담은 포도나무 한 그루, 포도 한 송이가 하나의 완벽한'우주’이자'전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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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독의 토양은 크게 2가지가 섞여있다. 첫 번째는 신생대 제3기 말에 형성된 모래와 충적토로 이루어진 피레네 자갈 토양으로, 물리스, 리스트락, 생테스테프 같은 지역에서 점토질-석회석 토양과 자갈-점토질의 단단한 토양을 구성한다. 이러한 토양은 우기에 저장된 물을 저장하여 건조한 여름에 수분을 공급하며, 타닌이 풍부하고 살집이 풍만하며 골격이 잘 잡힌 스타일의 와인을 만든다. 이 지역은 메를로 품종의 블렌딩 비율이 오 메독 지역보다 강조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신생대 제4기 갸론 강 좌안을 따라 강 하구로 휩쓸려 가면서 만들어진 갸론 강의 자갈 토양이다. 주로 그랑크뤼 와인이 많이 집중 생산되는 오 메독 지역의 토양을 구성하고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이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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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보르도 메독 와인과 리더십의 탄생
 
 
역사적으로 보르도 지역의 와인산업이 번성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152년 아키텐의 엘레노어 공주가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앙주 지역의 백작인 앙리 2세와 결혼했고, 이후 1154년 앙리 2세가 영국 왕위를 계승하면서 보르도는 영국 왕의 영지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와인 산업이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후 보르도는 13~14세기까지 프랑스 남서부 지방 와인들을 영국 등지로 수출하는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1453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100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한 이후 16세기까지, 보르도 메독은 황무지나 호밀밭, 사냥이나 낚시 등을 즐기던 그저 그런 땅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 이 지역 귀족들이 진정한 의미의 포도원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에게 늪지의 물을 빼는 작업을 맡겼는데, 이 때 새 포도밭은 강가의 충적토 지형에 조성되었고 이곳이 샤토 마고, 샤토 라투르 등 명성을 쌓은 포도원들의 기초가 된다. 특히, 17세기 샤토 오브리옹의 소유주였던 아르노 드 퐁탁의 선구자적인 역할로,'고급 와인’ 이른바'그랑크뤼 와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선진적인 포도재배 및 양조기술로 만든 와인은 영국으로 수출되어 최고급 와인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다른 와인보다 3배 이상 비싸게 팔렸다. 곧 샤토 라투르, 샤토 라피트, 샤토 마고 등도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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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8세기와 19세기 중반까지 보르도 메독 지역은 영국 등지의 수출이 순조로워 태평성대를 구가하였고, 이윽고'1855년 그랑크뤼 클라쎄 와인등급제정’을 통해 전 세계로 명성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물론 하나의 산업이 언제나 발전과 확장일로일 수만은 없다. 일례로 메독은 1860대 필록세라의 창궐로 대부분의 포도밭이 궤멸될 만큼 큰 위기를 겪었으나, 부이 보르드레즈(bouillie bordelaise) 노균병 치료제를 개발하여 필록셀라를 극복하기도 하였고, 1930년대 경제위기와 세계 전쟁, 1956년 대한파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두운 밤이 지나면 항상 눈부신 아침이 오지 않던가. 1960년대 세계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보르도의 와인생산자들은 현대적인 양조시설과 기술을 도입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기술, 양조 설비, 품질 및 등급체계 확립 등에 있어서 세계 와인산업의 기준이 되었으며 선도적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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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르도(메독) 와인은 역사적으로 로마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와인 문화의 메카이자 와인 산업의 표준을 구축하고 세계 각지에 전파하며'위대한 유산’으로서의 확고한 전통을 만들어왔다.'네고시앙(Negociant)’이라는 와인 전문 상인의 탄생,'사토Chateau’나'크뤼Cru’의 개념, 와인 블렌딩의 미학 역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일찍이 수출 전략 상품으로써 높은 품질 관리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1855년 그 유명한 그랑크뤼 클라쎄가 도입되는 등 등급(Classification) 제도가 만들어졌다. 1935년에는 세계 와인 산업의 표준이 되는 AOC 제도를 설립하고 실행하였으며, 그 외에도 와인양조와 제조기술의 발전 측면에서도 바리크(225l 오크통)의 사용, 프랑스 최초의 스테인리스 양조시설 도입, 필록세라균을 퇴치시킨 약품 개발, 포도 껍질 침용 기술, 미세산소를 이용한 2차 발효 기술 등이 최초로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국제 품종 개발과 보급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일반인의 포도원 방문 허용, 세컨드 와인의 개발, 벌크 와인 판매, 엉 프리뫼르 en primeur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였다. 파스퇴르, 에밀 페노 등 와인 연구학자들의 혁혁한 연구 성과와 미쉘 롤랑 같은 와인 컨설턴트의 시대를 개척한 것 등을 포함해, 보르도가 세계 와인 산업의 중심에서 이뤄온 선도적 위치와 역할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막중하다.
 
 
 
글쓴이 _ 유경종
(주)바롬웍스 대표이사, WineBooks 발행인, WineOK 대표, WineBookCafe 대표
 
 
▷ [보르도의 심장, 메독MEDOC에서의 시간여행]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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