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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와인애호가들의 성지
 
 
부르고뉴 Bourgogne [1]
 
 
 
글 _ 유경종
 
 
부르고뉴는 프랑스 북동쪽에 있는 샤블리(chablis) 지역부터 남쪽의 지중해와 가까운 론(Rhone)과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을 잊는 기다란 바케트 빵모양으로 생겼으며, 약 200Km에 걸쳐 펼쳐진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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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부터 동남쪽으로 국도 A6도로를 타고 180Km정도의 거리, 약2시간쯤 달리다 보면 샤블리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디종(Dijon), 본(Beaune)을 지나 보졸레(Beaujolais)까지를 일반적으로 부르고뉴 지역이라 부른다. 구불구불한 구릉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온통 포도밭 천지의 황금 들판. 오죽하면 코트 도르(Cote dOr, 황금 들판)라 부를까! 마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라도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그야말로 전원적이고 목가적이다. 밀레의 ‘대지와도 같은 한 폭의 명화처럼 성스럽기까지 한 이곳은 와인애호가에겐 성지(聖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전세계 미식가들이 여행을 꿈꾸는 가장 아름답고 맛있는 천국, 부르고뉴다.
 
부르고뉴에는 절대 혼자 가지 마라.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맛보려면 아무래도 4명 정도가 적당하다. 렌트카 한 대를 빌려 여행하는 동안, 4-5가지 정도의 메뉴에다 스파클링-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 피노누아 레드 와인으로 이어지는 와인코스를 즐겨보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식도락 여행이 아니다. 14시간의 비행과 2-3시간의 운전 끝에 도달한 그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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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은 왜 비쌀까?
 
동네 뒤 산에 대한 정복 욕구는 끝이 없고 새롭고 더 어려운 것을 끝없이 갈망하고 도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런 인간에게 부르고뉴의 피노누아 와인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맥락이다. 칠레 와인으로 입문해서 호주, 미국, 이태리, 보르도 와인을 거쳐 종국에는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과 미식가들이 오매불망하는 부르고뉴에 당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들 부르고뉴 와인에 열광하는가?
 
첫째, 프랑스 와인 총생산면적의 3%에 지나지 않는 협소한 면적에서 극히 제한적인 양만 생산하며 전세계 140여 개국에 수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희소 가치가 생기고 결국 높은 가격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생겨난 복잡한 소유구조로 말미암아, -45헥타르 규모의 보르도 샤토 하나가 부르고뉴에서는 몇 십 명의 소유주에게 쪼개어져 상속된다- 여러 번 마시고 여러 번 가보아도 언제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와인으로 신비를 더한다.
 
둘째, 보르도 와인은 인간이 만들지만 부르고뉴 와인은 신이 만든다는 말처럼, 부르고뉴 사람들은 테루아(terroir)라는 말을 달고 산다. 테루아는 포도나무가 자라는 환경과 양조하는 사람들의 노고까지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 개념을 통해 부르고뉴의 토양과 배수지형, 날씨 등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와인이 만들어지는 천혜의 환경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세계 와인산지 중 최북단에 위치한 부르고뉴에서 양조가들은 부족한 일조량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려 노력하고 혹독한 추위와 싸운다. 이렇게 해서 얻은 와인은 물론, 세상에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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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 지역에는 일종의 선민의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부르고뉴는 로마시대부터 포도나무를 재배해왔으며, 910년경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종교 의식에 쓰기 위해 와인을 생산하면서 포도 재배기술과 밭의 구획별 분류 체계 등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과 체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한때 신들의 와인이었고, 수도사들의 와인이었으며, 왕과 귀족들의 와인이었던 부르고뉴 와인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네고시앙들에 의해 부자들과 미식가들을 위한 와인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수백 년씩 내려오는 검증된 특정 포도밭들은 테루아 또는 양조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몇 이랑 차이로 와인 가격에서 무려 수십 배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이탈리아, 칠레처럼 와인이 잘 팔린다고 그랑 크뤼 포도밭의 면적이 확장되는 일은 거의 없다. 빛나는 유산을 지켜가는 고집이야말로 부르고뉴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
 
넷째, 그 어떤 지역과 품종도 부르고뉴 와인을 대체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피노누아는 서서히 깨어나면서 관능미를 발산한다. 마치 청초한 현모양처가 밤에는 요부로 변하는 것처럼. 피노누아를 잔에 따르면 처음에는 딸기를 비롯한 베리향, 꽃냄새가 발산되다가 점차 부엽토나 흙냄새, 고양이 오줌 냄새, 늑대나 여우의 가죽 냄새 등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즉 숙성된 와인의 부케가 풍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피노누아의 신선한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 같던 향이 어느새 사람의 혼을 빼앗듯 관능적인 향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 뒤라면, 더 이상 다른 와인은 단순해서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며 ‘이제 파산의 길로 들어선 것인가’라는 걱정이 뒤따른다.
 
 
 
[와인애호가들의 성지, 부르고뉴]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글쓴이 _ 유경종
(주)바롬웍스 대표이사, WineBooks 발행인, WineOK 대표, WineBookCaf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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