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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Berlin Wine Trophy, Asian Wine Trophy, Selezione Del Sincaco,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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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나(해발 1950m지점)에서 내려다본 운해
 
 
 
 
“와인을 왜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면 필자는 그저 그런 일상을 그럴듯하게 떠벌리는 이탈리아 친구들의 입담을 듣기만 했던, 입이 무거운 한국여성이었던 옛날이 떠오른다. 소믈리에가 된 후부터는 식사에 맞는 와인 선택과 주문한 와인에 대한 필자의 설명을 눈을 반짝이며 귀담아 듣는 친구를 사귀게 된 와인 수다쟁이가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취미 반 일 반 이라는 핑계로 이탈리아 와인 지역을 다니기 때문에, 피에몬테 와인밖에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피에몬테 지인들에게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 와인을 소개하는 와인 특파원 역활도 한다.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만 쳐다보던 이방인을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는 진지한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필자는 와인이 고맙고 좋다.
 
유네스코 유산이 50여 개나 있는 관광 대국에 살지만 필자는 이것을 안내하는 지도나 팸플릿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와인이나 품종 이름을 들으면 그곳에 가서 포도밭도 거닐어보고 와인 생산자와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눈 후 그곳 와인을 마셔봐야 성이 찬다. 유명한 유적이라도 근처에 있다면 그 와인 여행은 뜻밖의 횡재다. 와인을 만나는 여행은 비노(Vino, 와인)라는 자석에 몰려든 비노 문화 자기장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 자기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가 시칠리아의 에트나 와인을 만난 것이 그렇다.
 
시칠리아 남부에서 바라본 에트나 경치.jpg
 
△ 시칠리아 남부에서 바라본 에트나 경치
 
 
‘끓다’라는 뜻의 그리스 단어 Aἴτνα-ας가 어원인 에트나(Etna) 산은 정상이 3340m, 둘레는 45km로 유럽의 활화산 중 가장 높다. 같은 높이의 겨울 알프스 정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지만, 에트나는 정상에서 토해내는 흰 수증기가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고 눈이 급속히 녹아 흐르면서 골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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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트나에는 260여개의 오름이 있다.
 
 
에트나 산에는 260여 개의 오름(분화구)이 있고 그 안을 걸을 수도 있다는 호텔 직원의 말만 듣고 정상을 향해 차를 몰았다. 실베스트리 분화구가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1920m 사피엔자 산장에 도착하니 여기서부터는 차량이 통제되고 도보로만 갈 수 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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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베스트리(silvestri) 분화구
 
 
현무암이 부서져 만든 작은 돌멩이로 덮인 산등성이는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져서 걷기가 어려웠다. 한 걸음 발을 내디디면 돌멩이들이 밑으로 쏟아질 정도로 미끄러워 두 걸음 뒤로 밀려 내려왔다.
 
2200m에 있는 민간인 등반한계선에 도달했을 때는 필자의 새 운동화는 검은 재로 뿌옇게 덮였고 현무암 자갈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찢겨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졸지에 몇 년 세탁하지 않은 몰골이 돼버린 신발을 보며 이런 땅에서는 어떠한 식물도 뿌리를 내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용지물일 것 같던 이 땅은 필록세라 해충(포도나무 뿌리를 갉아먹는 진딧물)의 천적이었다. 날카롭고 미끄럽기 때문에 결합력이 느슨해 해충이 포도뿌리에 도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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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트나 용암 자갈
 
 
에트나는 화산 지역에 가꾼 포도밭 중 유럽에서 제일 높다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해발 300~1100m에 걸쳐 포도밭이 있는데 모두 에트나 북, 동, 남쪽 경사면에 몰려 있다. 가장 높은 곳의 포도밭은 2011년 에트나 분출 때 흘러내려 온 마그마가 포도밭 돌담 바로 밑에 굳어진 채로 있다. 자주 분출하는 용암 때문에 밭 경계가 아래쪽으로 옮겨질 염려도 있지만 포도밭은 2,500헥타르에 달하며 그 중 250 헥타르에서 재배된 적포도와 청포도로 만든 와인을 통틀어 에트나(Etna DOC) 와인이라 부른다.
 
에트나는 삼고산(三高山)이다. 필록세라의 범접을 허용치 않던 해충안전지역이니 포도나무의 나이는 평균 70~80세, 최고는 1세기 이상일 정도로 높다. 또한, 이탈리아 대부분 와인산지의 강수량보다 2배 높은 평균 1300mm내린다. 비가 많이 내린다 해도 다공질 현무암은 이를 통과시키니 뿌리가 썩지않는다. 세번째는 포도수확때 밤낮기온차가 20~25도로 높다. 따라서 이곳 포도는 천천히 완숙에 달해 10월 중순경에 수확을 한다.
 
에트나는 시칠리아 섬에서 생산되는 일반 와인과 달리 ‘와인의 섬’이다. 에트나에서는 시칠리아 평지에서 흔한 네로 다볼라, 프라파토, 인졸리아, 카타라토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네렐로(nerello)라는 적품종과 카리칸테(carricante)라 불리는 청포도가 주로 재배된다. 적품종으로는 Etna Rosso, Etna Rosato, Etna Rosato Spumante, 청포도로는 Etna Bianco, Etna Bianco Superiore, Etna Spumante 와인을 만든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의 색깔처럼 검다고 해서 ‘네렐로’(nerello, 검은색의 nero가 어원)라 불리는 포도가 두 종류 있는데, 하나는 마스칼레제(mascalese)이고 다른 하나는 카푸초(cappuccio)이다. 마스칼레제가 더 고급스런 맛과 향기를 내기 때문에 Etna Rosso와인은 이 품종만으로 양조하는 게 추세지만 카푸초를 소량(최대 20%) 블렌딩하기도 한다.
 
에트나가 시칠리아에 속한다는 이유로 필자는 이곳의 와인으로부터 높은 알코올, 농후한 과일, 송이가 탐스런 붉은색 꽃 향기와 입안을 꽉 조이는 타닌, 둥글한 산미를 기대했다. 그런데 앙증맞은 장미, 비올라와 작은 체리, 자두, 라즈베리의 붉은 과일 향기가 수줍게 올라와 반전의 놀라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와인의 높은 산미는 과일과 꽃 맛을 입안에 불러오며 혀를 약간 말리는 정도의 타닌과 조화로왔다. 여러모로 북쪽의 서늘한 기후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는데, 특히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와인과 많이 닮아 ‘시칠리아의 부르고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와인의 선이 굵지 않다 보니 무의식 중에 잔을 자주 비우게 되고 그러다 보면 헛웃음이 자주 새어 나와 헤픈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게다가 알코올 도수만 14.5도에 달하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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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난티(Benanti) 와이너리의 Etna 와인
 
 
네렐로가 에트나의 피노 누아라면 에트나의 샤르도네는 카리칸테(carricante)*다.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에 다산을 뜻하는 carico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혀를 감싸는 부드러움은 샤르도네에 못 미치지만 열대과일과 흰 꽃 향기와 산미로 유명하다. 산미가 유난히 높아 화이트로는 드물게 장기숙성(10년 이상)도 가능하다. 참고로, 카리칸테를 최소 60% 포함하고 알코올 농도가 11.5 도이면 Etna Bianco, 카리칸테를 최소 80% 포함하고 알코올 농도가 12도이면 수페리오레Superiore가 붙는다.
 
필자가 방문했던 에트나는 12월 말인데도 포도나무는 나뭇잎을 달고 있었고 민들레처럼 생긴 노란 꽃들도 볼 수 있었다. 포도밭 담장을 따라 늘어선 오렌지, 레몬 나무를 보면 걷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밭의 경사가 심해서 걷는 것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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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트나 포도밭의 겨울 풍경
 
 
필자는 예약자에 한해 지프차로 포도밭 투어를 제공하는 와이너리에 도움을 구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때 차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콘트라다(Contrada)’ 라는 푯말을 놓치지 않았다. 중세 시대에는 작은 거리 이름 앞에 contrada를 썼는데 에트나에서는 포도밭 이름에 붙이는 풍습으로 변했다.
 
1968년 이곳 와인이 Etna DOC 등급으로 지정되었을 때 이곳 생산자들은 발 빠르게 토질 특성에 따라 포도밭을 세분화했다. 여러 개로 구분된 포도밭은 전통에 따라 contrada라 이름지었다. 이렇게 탄생한 contrada는 다음과 같은데, 이들 대부분은 필자가 방문했던 에트나 북쪽사면에 있다: Passopisciaro, Malpasso, Moganazzi, Feudodimezzo, San Spirito, Sciaranuova, Guardiola, San Lorenzo, Sollicchiata, Allegracore, Rovitello, Calderare.
 
Etna와인 라벨에서 위와 같은 밭 이름을 발견하면 에트나의 최상급 와인이라 생각해도 좋다. ‘바롤로’라고만 쓰여 있는 와인보다'카누비’,'아눈지아타’가 따라오는 바롤로 와인이 어쩐지 농부의 손길이 더 닿았고 품질을 믿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다만, 바롤로 와인에 포도밭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0년부터지만 에트나는 40년 앞선 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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