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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Berlin Wine Trophy, Asian Wine Trophy, Selezione Del Sincaco,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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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일 밤 10시경 토리노에 소재하는 디플로마틱 호텔의 시음실,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가 막 끝났다. 참가자 앞에는 각각 여덟 개의 잔이 놓여 있고, 이 중 4개는 20분 전에 따라놓은 와인으로 채워져 있다. 와인잔 표면을 덮고 있던 뿌연 김은 이미 사라졌고 와인의 색이 드러난다. 시음실에 흐르던 침묵을 깬 것은, 와인을 시음한 후 사람들이 내뱉은, 놀라움과 실망이 담긴 다음과 같은 웅성거림이다. “화이트 와인인데 맛이 왜 이렇죠?” “화이트 와인인데 색이 붉어요.” “화이트 와인의 배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와인을 시음하는 순간까지, 조용히 해달라는 진행자의 당부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소란은, 바로 그 순간 이탈리아 와인의 무한한 다양성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감의 촉수를 바짝 세운 와인전문가들이 일명 ‘오렌지 와인’을 시음한 후 보여준 반응이다. 예리한 감각의 소유자인 전문가들조차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 이 오렌지 와인을 이해하는데 있어, 스탄코 라디콘(Stanko Radikon, 오렌지 와인의 선구자 중 한 명)의 인터뷰 내용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질문: 왜 오렌지와인을 선택하셨죠?
답변: 리볼라 잘라(Ribolla Gialla, 이하 리볼라) 품종은 껍질이 두껍고 근육질인데, 기존의 화이트 와인 양조방식으로는 품종의 특성을 살릴 수가 없었어요. 수많은 실험을 거친 후에야, 포도즙과 껍질을 3개월 정도 함께 두면 리볼라 잘라 포도의 장점을 최대한 추출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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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렌지 와인이 화이트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맛, 향, 색깔이 화이트 와인의 표준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바로 품종 때문이다. 리볼라의 포도송이는 샤르도네의 그것에 비해 6~7배 정도 무게가 더 나가고, 포도알은 10배나 더 크다. 따라서 리볼라를 압착해서 얻어지는 포도즙에는 수분이 많고, 이는 곧 와인의 집중감과 알코올 도수를 떨어트리기 쉽다. 다행히 리볼라는 껍질이 두꺼워서 폴리페놀 함량이 매우 높은데,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 양조 방식대로 포도즙을 짠 후 껍질을 곧장 그라빠 증류장으로 보내버리는 것은, 정작 피자의 도우만 먹고 나머지 토핑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볼라 잘라.jpg
 
껍질이 두꺼운 것 말고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리볼라를 그럴듯한 와인으로 만들 방법을 찾던 생산자들은, 레드 와인을 양조할 때 거치는 침용 과정(maceration)을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다만, 레드 와인 양조 시 이 과정은 일정하게 조절된 온도에서 이루어지지만, 리볼라의 경우에는 통제되지 않은 높은 온도에서 시작된다. 주석산 함량이 낮은 리볼라의 즙과 포도껍질이 따뜻한 온도에서 침용 과정을 거치면 산도가 낮아진다. 또한 폴리페놀 성분이 다량으로 추출되고 산화과정이 빨라져서 와인이 황금색, 호박색, 오렌지색을 띠게 되고, 추출된 타닌은 와인에 뚜렷한 구조감과 장기 숙성력을 부여한다.
 
오렌지 와인이 정말로 “화이트 와인의 배신”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사실 오렌지 와인을 처음 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와인생산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오렌지 와인 생산자들은, 조상들이 만들던 와인을 재현했을 뿐이라며 위 견해를 일언지하에 무시한다. 온도조절기가 달린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가 도입되기 전, 즉 1950년대 이전에는 화이트 와인을 오렌지 와인 양조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자들이 자신이 만든 와인을 오렌지 와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침용추출한 화이트 와인(Bianchi Macerativi)”이라 부르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들은 오렌지 와인을 화이트 와인의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레드, 로제, 스푸만테, 파시토처럼 전혀 다른 타입의 와인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들의 제품 목록을 보면, 오렌지 와인을 화이트 와인이 아닌 별개의 와인으로 구분해 놓기도 한다.
 
한편, “장기 침용 방식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토착 품종의 다양성과 테루아의 특성을 반영해 왔던 기존의 화이트 와인이, 과도한 침용추출로 인해 자연적인 요소가 사라지고 개성 없이 단순화, 평준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침용 과정을 리볼라 품종에 적용했을 때 최대의 효과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밖의 토착품종(베르멘티노, 말바지아, 베르디끼오, 카리칸테 등)에 적용했을 때의 결과는 아직까지 증명된 바가 없다.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색뿐만 아니라 짙은 황금색이나 갈색을 띠기도 하며, 여과하지 않고 병입하는 경우가 많아 먼지 크기의 부유물이 떠다니는 경우도 있다. 오렌지 와인의 맛과 향은 침용 기간과 사용하는 용기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예를 들면, 극단적인 성향의 오렌지 와인생산자에 의해 25~35hl들이 대형 보테(bote)에서 3~6개월의 오랜 침용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와인은 그 풍미가 매우 강렬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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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시음한 대부분의 오렌지 와인에서는 졸인 과일, 향신료, 스모키향, 페트롤, 톡 쏘는 매운 향이 났으며, 산화된 와인의 특징인 왁스, 매니큐어, 페인트 향은 침용 기간에 따라 강도가 모두 달랐다. 비교적 중도적인 성향을 지닌 생산자의 오렌지 와인은, 각각의 향이 튀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마치 맛과 향이 농축된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좋았다. 또한 바닷물처럼 짠맛이 났지만 강한 신맛과 조화를 이루었고, 리볼라 특유의 타닌과 튼튼한 구조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오렌지 와인을 맛보기 전만 해도 상큼, 신선, 발랄함으로 화이트 와인을 정의하던 시음자들에게, 오렌지 와인 생산자들은 다음과 같이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렌지 와인이라고 다 오렌지 색깔을 띠는 것은 아니다. 화이트 와인처럼 차갑게 마시지 말고, 만약 잔에 담긴 와인이 차갑다면 손으로 덥혀 가며 천천히 마셔라. 보디감 있는 레드 와인을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볼이 넓은 잔에 따라 마시면 와인의 풍미가 살아난다. 막 숙성을 끝낸 와인은 거칠게 느껴질 수 있으니 최소 5년 정도 숙성시킨 후 마시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오렌지 와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오렌지 와인을 “단지 주목 받기 위해 만드는 와인”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와인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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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와인: 198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동부에 위치한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주의 콜리오 언덕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화이트 와인이다. 오스라비아(Oslavia)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그 중심지인데, 이곳 조상들이 리볼라 잘라라는 청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던 방식 그대로 양조하는 것이 골자이다. 특히 이 품종을 오랫동안 침용하면 산화가 일어나 와인이 오렌지 껍질색을 띠는데, 이 때문에 콜리오 지방을 제외한 외국에서는 오렌지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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