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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시칠리아의 정열[1] - 네로 다볼라 와인
 
 
 
시칠리아를 색깔로 표현하면 오렌지색이다. 겨울의 따가운 햇빛 아래, 단맛이 물오를 때까지 알맹이를 품고 있는 오렌지의 주홍빛 껍질 때문이다. 12월 중순, 에트나 화산이 손에 잡힐 듯 말듯 보이는 동부 해안의 도로를 달릴 때 스쳐 지나치는 오렌지 과수원은, 하얀 눈을 덮어쓴 채 지열을 토해내는 에트나의 정상과 기이한 대조를 이루며 시칠리아 섬을 더욱 이국적으로 만든다.
 
잘 영근 오렌지를 보면, 풋풋한 젊은티를 벗어내고 숙성을 막끝낸 네로 다볼라(Nero d’Avola) 와인이 담긴 잔의 짙은 오렌지빛을 떠올리게 된다. 시칠리아를 상징하는 오렌지와 잘 익은 오렌지의 껍질색을 띠는 네로 다볼라 와인은 태양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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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도 푸른 시칠리아 섬
 
 
한 여름 40도 이상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자란 네로 다볼라 포도는, 알코올 농도가 높고 안토시안 성분이 풍부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다. 네로 다볼라의 풍부함은, 19세기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 후유증으로 시름에 잠겨있던 북유럽 와인생산자들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검붉은 색깔과 다량의 타닌 외에도, 자연 방부제 기능을 하는 알코올이 높아(주정강화와인의 알코올 농도와 맞먹는 15~16도) 당시 유일한 장거리 수송수단인 배로 운송하더라도 와인이 변질되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칠리아 밖에서는 네로 다볼라로 알려져 있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은 카라브레제(calabrese)라 부르는 이 품종은, 시칠리아 섬이 그리스의 식민지였을 때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 밝혀진 바는 없다. 카라브레제라는 품종명은 calea(포도)와 aulisi(아볼라)가 결합한 방언(calaurisi)이 변형된 것으로, ‘아볼라 마을의 포도’란 뜻이다. 이름만 다를 뿐, 네로 다볼라 역시 ‘아볼라의 검은 포도’라는 비슷한 뜻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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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다볼라 포도
 
 
두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아볼라’는, 시라쿠사에서 남서 방향으로 30km정도 떨어진 조그만 항구도시이며 이 품종이 최초로 재배된 곳이다. 지금은 섬의 곳곳에서 네로 다볼라를 재배하고 있으며, 원산지 등급(DOC)으로 지정된 24개 시칠리아 와인 중에서 19개를 이 품종으로 만든다.
 
네로 다볼라는 발포성 와인에서부터 로제, 드라이, 햇와인, 주정강화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지므로 실증 날 겨를이 없다. 하지만, 네로 다볼라의 고향인 아볼라 근교에서는 품종 자체의 순수한 향미를 담아내는 드라이와 로제 타입이 주를 이룬다.
 
아볼라의 남동과 북동쪽을 포함하는 지역에서는 다섯 종류의 와인(Cerasuolo di Vittoria DOCG, Vittoria DOC, Noto DOC, Eloro DOC, Sicilia DOC)이 생산되는데, 이 와인 지역 근교에는 시라쿠사, 라구사, 카타니아, 노토 등 바로크 시대의 문화재로 유명한 곳이 즐비해 관광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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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최초로 DOCG 등급에 오른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Cerasuolo di Vittoria, 이하 체라수올로) 와인은, 시칠리아의 자존심이자 네로 다볼라 와인의 꽃이다. 다소 긴 와인의 이름은 체리를 뜻하는 체라수올로(와인의 색과 향기 때문)와 비토리아라는 마을 이름이 결합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오늘날의 체라수올로 와인 지역을 있게 한 비토리아 코론나 헨리케즈(Vittoria Colonna Henriquez) 백작부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607년, 백작부인은 새로 점령한 지역에서 와인양조용 포도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소작농들에게 “1헥타르의 토지에서 포도를 재배하면 1헥타르의 밭을 더 주겠다”는 회유책을 폈다. 이후 이곳은 와인의 거점도시가 되었고, 이탈리아 최초로 와인생산을 위해 탄생한 계획 도시가 되었다. 체라수올로 와인이 시칠리아 최초로 DOCG등급을 얻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체라수올로 와인은, 네로 다볼라 50~70%에 토착 적포도 품종인 프라파토(frappato)를 30~50% 섞어서 만든다. 흰색의 응회암, 붉은색의 점토, 검은색의 모래가 층을 이루는 이곳의 토양에서 자란 적포도는, 산도와 타닌이 두드러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섬세한 와인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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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라수올로 디 빗토리아 와인과 프라파토 와인.
 
 
섬세한 구조감을 지닌 이 와인은 프라파토와 블렌딩되어 신선한 과실 향과 꽃 향기가 더해진다. 프라파토는 네로 다볼라와는 다르게 빗토리아 근교에서만 자라는데, 프라파토 와인은 라즈베리 향이 강해서 라즈베리 쥬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라즈베리 향을 즐기기 위해 이 품종을 85% 이상 사용해 만든 Vittoria Frappato 와인은 빗토리아의 특산물이다.
 
빗토리아의 동남쪽, 이오니아 해와 시칠리아 해협이 만나는 곳에 이르면 또 하나의 네로 다볼로 와인 지역이 있다. 노토 계곡(Valli di Noto)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년 강수량이 100~300mm내외로 유럽에서 비가 가장 적게오는 곳이며, 수확기에도 수은주가 40도 경계에 머무는 사막같은 곳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양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 가득한 해풍이 태양열에 달구어진 포도를 식혀준다. 과도한 태양열 때문에 북향의 포도밭이 최상의 포도재배지로 간주되며, 네로 다볼라는 북쪽의 서늘한 밭에서 재배한다. 반면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파시토 와인 양조용 포도는 남향의 포도밭에서 재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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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 계곡. 저 멀리 이오니아 해와 시칠리아 해협이 보인다.
 
 
노토 계곡의 이름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노토’에서 유래한다. 시라쿠사나 카타니아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를 제치고 노토가 이 지역을 대표하게 된 이유는 그 아름다움 때문이다.
 
1693년 시칠리아 남동부에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섰는데, 이 건물들은 노토 계곡 특유의 노란색 암석을 반질반질한 대리석 느낌이 날 때까지 연마한 돌로 지어졌으며, 이 때문에 “돌의 도시(The City of Stone)”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멋스러운 건물 외관에 홀려 걷다 보면, 노토의 심장인 언덕 정상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언덕 정상에는 노토의 보석인 두오모(대성당)가 서있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지나쳤던 건물들이 두오모를 우러러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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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후 지어진 노토의 대성당
 
 
두오모에 오르면 또 하나의 이색적인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시칠리아 해안선을 수 놓고 있는 알베렐로(alberello)가 그것이다. 알베렐로는, 3천년 전 그리스인이 포도를 시칠리아에 들여오면서 함께 전수해 준 최적의 포도재배 방식으로, 네로 다볼라를 재배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 방식에 따르면, 무릎 높이까지 자란 포도나무를 비슷한 크기의 말뚝에 묶는데, 포도가 맺는 가지는 말뚝에 묶고 그 외의 가지와 잎은 잘라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품질 좋은 포도만 얻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가지가 옆으로 뻗는 일반적인 재배방식으로는 헥타르당 약 5천 그루의 포도나무를 심을 수 있지만, 알베렐로 방식으로는 7천 그루의 포도나무를 심을 수 있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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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 계곡의 그리스 전통- 알베렐로 방식으로 재배되는 포도나무
 
 
노토 계곡에서는 Noto DOC, Eloro DOC, Rosso IGT와인이 생산된다. 체라수올로 와인처럼 네로 다볼라와 프라파토를 블렌딩하지만, 노토 계곡에서는 여기에 약간의 피냐텔로 적포도를 섞는다.
 
또한 드라이와 로제 타입만 양조한다는 점에서 체라수올로 와인과 같지만, 와인의 맛과 향은 사뭇 다르다. 바닷 바람을 맞으며 해안에 접한 토양이 낳은 네로 다볼라 와인이기에, 심연과 같이 깊고 폭이 넓다. 또렷한 체리, 라즈베리, 자두의 검붉은 과일 향기에 이어 정향, 가죽 향기와 엔초비의 비릿한 바다향이 스며나온다. 짙은 잉크 빛과 알코올의 뜨거운 기운 때문에 강건하게 느껴지지만, 부드러운 타닌과 산미는 씁쓸한 뒷맛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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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 계곡에서 생산된 Noto, Eloro, Noto 모스카토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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