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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Berlin Wine Trophy, Asian Wine Trophy, Selezione Del Sincaco,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신화와 전설을 마시다
 
 
캄파니아Campania 와인
 
 
-"베수비오가 낳은 두 와인" -
 
 
 
 
 
 
[신화와 전설을 마시다_캄파니아 와인]의 마지막 편인 이 글에서는, 동일한 적포도 품종을 사용하지만 불과 8km 남짓 떨어진 곳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생산되는 두 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란디 로씨(grandi rossi, 이탈리아어로 '그랑크뤼 와인’을 의미), 바롤로, 슈퍼 투스칸, 또는 아마로네 같은 와인은 잠시 잊어버리자. 캄파니아 시민들이나 알고 마실 뿐 인지도가 낮은 이 두 와인은 이탈리아의 어떤 와인보다도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이 두 와인의 공통점은 바로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다. 로마시대 시인 마르티아스(Marcus Valerius Martialis, AD 40~102)는, 바커스(Bacchus, 포도주의 신)가 고향인 올림포스 산보다도 베수비오를 더 사모했다고 전한다. 두 개의 봉우리 때문에 마치 낙타 등처럼 보이는 이 화산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하늘을 향해 열린 화구는 기전원79년의 재앙(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단 며칠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만든)을 언제 다시 재현할지 알 수 없는 폭풍의 눈이다.
 
베수비오라는 예측불허의 존재가 만들어낸 두 와인은 바로 '라크리마 크리스티(Lacryma Christi)’와 '폼페이’ 와인으로, 적어도 이천년 전부터 베수비오의 경사면에서 재배해 오던 포도 품종으로 만든다. 이 때 라크리마 크리스티는 '신(Christi)의 눈물(Lacryma)’이란 뜻인데,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루치펠(Lucifer)은 지나치게 자만한 나머지 신의 노여움을 사 하늘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갈라진 하늘의 틈 사이로 루치펠이 베수비오산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 신은 눈물을 흘렸고, 그의 눈물로 젖은 베수비오 땅에서 포도가 자라기 시작했다.
 
신의 눈물에서 탄생한 포도의 이름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까마득한 옛날부터 자라던 품종이 Coda di Volpe, Piedi Rosso, Sciascino임을 감안할 때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의 주품종이 무엇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두 품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문 하단 참조)
 
그 기원이 신화로 이어질만큼 오래된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은 중세시대에도 꾸준히 생산되었고, 유럽 대부분의 포도산지에 재앙을 불러온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의 피해도 받지 않았다. 신의 눈물이 뿌리를 내려 포도로 되살아난 이곳의 토양이 모래땅 질감과 비슷한 화산재 토양이라 필록세라의 침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은 그 이름만으로도 꽤 알려져 있지만, 사실 베수비오 DOC 와인들 중 하나다. 베수비오 DOC 와인은 넓게 퍼진 치마 자락 모양의 베수비오산 경사면에 위치한 15개 마을에서 생산된다. 1983년에 DOC로 지정되었는데, 코다 디 볼페, 파랑기나, 그레코 비앙코 같은 청포도 품종으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Vesubio Bianco)을, 아리아니코, 피에디로쏘 등의 적포도 품종으로 드라이한 레드 와인(Vesubio Rosso)과 로제와인을 만든다.
 
단, 드라이 와인의 알콜 도수는 10.5~11도 사이이며 12도가 넘으면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으로 불리는데, 재배면적이나 헥타르당 수확량이 줄어들면 모와인에서 따로 분리되어 특정지역 이름으로 등급이 상승하는 것과는 다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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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에 사용되는 동일한 적포도(피에디 로쏘와 샤시노소)를 폼페이 유적지 내의 포도밭에서 재배해서 와인으로 만든다면, 와인은 과연 어떤 맛을 지닐까? 알다시피 폼페이는 지진이나 전쟁이 아니라 화산 폭팔로 잿더미에 묻혀 사라진 도시이며, 따라서 이 칼럼의 주제인 베수비오와는 매우 인연이 깊다.
 
폼페이 와인은 1996년 폼페이 유적보호국 산하 응용연구소의 소장인 안나마리아 차랄로(Annamaria Ciarallo)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그 제안은 다름아닌 “폼페이 유적지 내 포도밭 재현”이라는 프로젝트였는데, 로마인들이 마셨던 이천여 년 전 폼페이 와인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학계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 하에, 이 프로젝트는 관련 학문 분야의 연구결과를 기본으로 추진되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적지 내에 총 32개의 집터가 발견되었고, 그 중 29개는 와인과 관련된 흔적이 있으며, 유적지 내의 밭 중에서 양조용 포도밭 규모가 제일 크다.
 
또한 보아리오 포로(Foro Boario, 고대로마 시대 때 도시 중앙의 큰 광장을 가리킴) 근처의 포도밭에서 땅 속에 묻혀있던 대형 토기 10점이 발견되었는데 와인을 발효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 당시에도 외부 온도의 영향을 줄이는 양조 방식을 채택했음을 말해 준다. 또한, 대형토기가 묻혀있는 곳에서 멀지않은 곳에서는 포도를 압착하던 곳, 압착한 포도즙을 담는 통, 포도를 저장하고 운반하는데 사용하던 암포라의 보관창고도 함께 발견되어 포도수확 즉시 와인을 만들려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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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에는 포도품종학, 고생물학 분야도 가세했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적지 내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에 수확한 포도를 들고 있는 두 명의 아기천사가 그려져 있는데(아래 사진, 출처_http://goo.gl/si2DUZ) 그 품종이 피에디 로쏘와 샤시노소인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플리니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BC116 ~ BC27), 카토네(Marcus Porcius Cato, BC 234~BC149) 등의 저명한 로마 대학자이자 영농학자들이 쓴 고서적을 고증한 결과, 폼페이 와인은 적포도로 만들어졌고 매우 강건하고 거친 맛이 나서 그냥 마시기에는 부적당했으며 향신료와 물을 희석시켜서 마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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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할 곳은 마스트로베라르디노(Mastroberardino) 와이너리로 결정되었는데, 이 양조장은 1878년에 설립되었으며 캄파니아 주의 주요 와인을 연간 백만 병씩 생산하는 대규모 와인생산자다. 즉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만한 충분한 기술과 경험이 축적된 곳이라는 말이다.
 
마스트로베라르디노는 특별팀을 구성해 1996년부터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우선 비알레 빌라 데이 미스테리(Viale villa dei misteri) 거리에 있던 포도밭 다섯 군데를 복원했다. 당시 식당이나 귀족의 저택에 속해 있던 이 포도밭들은 합해봤자 1,5헥타르 정도이며, 포도나무는 그 당시 관행에 따라 말뚝을 타고 자라게 했다. 포도나무 간격은, 말뚝과 포도나무가 심어졌던 곳으로 추정되는 움푹한 곳에 석고를 부어 굳힌 다음 얻어진 석고 주물을 측정해 얻은 결과(1.20 m x 1.20 m)에 따라 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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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 경내에 있는 포도밭(출처_ wine.mastroberardino.net))
 
폼페이의 토양은 입자가 큰 화산암이 부스러져 형성된 흙이 30cm 두께로 표면을 덮고 있다. 따라서 땅의 밀도는 촘촘하지 않지만 모래 함량이 적기 때문에 대목(rootstock)에 접붙인 포도나무를 심어 필록세라 감염에 대비했다. 농약과 해충제는 사용하지 않고, 품종 자체가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가지치기는 따로 하지 않는다.
 
마침내 1999년 최초로 포도를 수확했으나 분석용으로만 사용했고, 2001년에 수확한 포도를 저온침용, 발효하여 12개월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뒤 2003년에 출시했다. 총 생산량은 1,721병으로 Pompeiano Rosso IGT 등급을 달고 경매로 판매되었고 경매 수익금은 Foro Boari암포라 발굴 지원 사업에 쓰였다.
 
20여년 간의 산학협력으로 탄생한 폼페이 와인은 “신비의 빌라 Villa dei Misteri”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이는 유적지 내에서 발견된 어떤 프레스코화의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채 신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판 폼페이 와인은 어떤 맛과 향이 날까? 와인의 짙은 루비색은 포도가 자란 화산 토양의 색을 떠올리게 하며 장미, 자두, 베리류 향과 함께 바닐라, 계피, 정향, 타바코 향이 난다. 산미와 부드러운 타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아몬드의 쌉쌀한 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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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빌라’ 와인 레이블(출처_wine.mastroberardino.net))
 
폼페이 유적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망연자실했던 것을 기억한다. 폭발 당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갖가지 군상들의 화석, 신전, 원형경기장, 귀족의 저택 등 볼 것이 너무나 많은데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복원된 포도밭까지 추가되어 무엇을 봐야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가 되었으나, 이천년 만에 다시 부활한 생명체를 만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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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다 디 볼페coda di volpe(왼쪽 사진): ‘여우꼬리’란 뜻이며, 이 이름은 은회색 포도송이가 위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서 기원한다. 로마시대의 대학자 플리니우스가 쓴 “Naturalis Historia”에는 Cauda Vulpium으로 적혀 있다. 캄파니아 주에서만 재배되며, 베수비오 비앙코 처럼 파랑기나 품종과 블렌딩되지만 단독으로 양조하기도 한다. 산도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신선한 해물로 만든 파스타 요리,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 튀김, 생선 요리와 함께 마시면 좋다. 병입 후 1~2년 내에 마신다.
 
샤시노소sciascinoso(오른쪽 사진): 올리브 열매처럼 타원형으로 생겨 올리벨라(olivella)라고도 불린다. 만생종이며 성장이 왕성한 이 품종은 산도는 높지만 당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적포도 품종과 섞어 와인을 만든다. 베수비오 비앙코처럼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몇 개월 숙성시킨 후 병입된다. 미네랄 향, 포도가 발효되면서 나는 향, 풋풋한 과일, 꽃 냄새가 주된 향이다. 짭짤한 맛이 나며 타닌이 짙거나 거칠지 않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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