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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발폴리첼라 와인의 두 거장을 만나다
 
 
퀸타렐리 & 달 포르노
 
 
 
 
글, 사진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작년 늦가을 발폴리첼라 지역의 두 거물 와이너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예정일이 주말이라 예약은 필수였다. 먼저 퀸타렐리 와이너리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으로 들리는 낮고 명료한 목소리가 “아마로네 와인을 잘 알고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필자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는 토요일 오전11시에 와이너리를 방문해도 좋다고 했다.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은 정말 험했다.
 
도로에 표지판도 하나 없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안내에 의존해서 와이너리를 찾아가는데 (와이너리를 찾아가는데 네비게이션은 대체로 무용지물이다), 어느덧 네그라 언덕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자 더 이상 길을 물어볼 행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가정집처럼 보이는 어떤 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문패에는 Azienda Agricola Giuseppe Quintarelli라고 쓰여 있었다. ‘드디어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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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리첼라 곳곳이 속속들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정상에 단촐하게 서있는 이 와이너리는 이제 고인이 된 주제페의 소박하고 겸손한 성격을 보여주는 듯 했다. 수확 후 앙상하게 남아있는 코르비나 포도나무를 보면서 기다림의 지루함을 잊고 있는데,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인 듯한 문이 열리면서 중년의 여성이 나타났다. 피오렌자 퀸타렐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주제페의 장녀였다(주제페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피오렌자에게는 28세의 아들이 있는데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머니와 함께 와이너리를 운영해가고 있다.
 
필자가 와이너리를 방문했던 당시는 주제페가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 피오렌자는 아버지의 고통을 깨우지 않기 위해, 그리고 와이너리 창고 깊은 곳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깨우지 않기 위해 매우 조용히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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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주제페의 제자이자 동료인 로마노 달 포르노가 운영하는 와이너리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필자는 전날 퀸타렐리 와이너리 찾아가는데 혼쭐이 난 기억에 잔뜩 긴장해 있었고, 길을 잘못 드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빨간 신호등이 켜질 때마다 주변의 거리이름과 번지를 계속 확인했다. 마침내 발레 딜라시Valle d’ Illasi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차라리 베로나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소아베까지 간 다음 발폴리첼라 방향으로 거꾸로 왔다면 시간을 절약했을 것 같아 아쉬웠다. 달 포르노가 아마로네의 중심지인 네그라Negrar, 마라노Marano, 푸마네Fumane 보다는 오히려 소아베Soave 지역에 더 가깝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리이름과 번지를 찾는데 실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달 포르노 와이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예약시간은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다. 초조해지기 시작하던 차에 무턱대고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우리가 세 번이나 빙빙 돌았던 장소가 그곳이란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건물 입구와, 근처에 건물기초공사로 먼지를 풀풀 날리던 그 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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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직원의 말에 의심이 들어 다시 가서 문패를 확인해보니 정말'로마노 달 포르노 와이너리’라고 쓰여 있었다.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신전에나 어울릴법한 거대한 응접실 겸 시음실이 있었고 거기에 앉아있던 로마노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독특한 와이너리 건물에 대한 필자의 호기심은 그의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독립하기로 결정한 후 혼신을 바쳐 만든 와인이 바로 이 곳에서 탄생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역사와 전통을 반영하는 강건한 아마로네 와인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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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발효 중인 와인 냄새로 진동하는 양조실로 들어서자, 그의 두 아들이 부지런히 양조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로마노는 우리를, 와인 저장/숙성통을 만드는 회사와 공동으로 설계/제작했다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발효통이 들어선 곳으로 데려갔다. 이 발효통들은, 건조시킨 포도에서 색깔을 최대한 추출할 수 있도록 특별 펀칭 기기를장착한 발효통이며 100% 컴퓨터로 자동 관리한다고 했다.
 
지상에 지어진 아마로네 신전은 거대한 탱크가 천장과 키재기를 하고 있지만, 그 지하는 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한 발폴리첼라 와인이 만들어지는 오크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아마로네 신전이라기보다는'달 포르노 왕국’이라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발폴리첼라 와인 세계에서'주제페 퀸타렐리’는 신화로, ‘로마노 달 포르노’는 전설로 알려져있다. 주제페와 로마노는, 테이블 와인 수준이었던 발폴리첼라 와인을 바롤로나 부르넬로 몬탈치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정상급 와인으로 만든 주역들이다.
 
퀸타렐리의 발폴리첼라 와인은 수많은 젊은 양조가들을 매료시켜'퀸타렐리 학파’를 형성할 정도였고, 그의 유명한 제자 중에는 로마노 달 포르노, 토마소 붓솔라, 첼레스티노 가스파리가 있다.
 
사제로서의 관계는 로마노의 독립선언으로 끝났지만, 후에 발폴리첼라 와인이 맺어준 두 사람의 인연, 와인 스타일과 철학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녔다. 아마로네나 레초토를 마시면서 발폴리첼라 애호가들이 수다를 떨 때 감초처럼 등장하는'신화의 주제페’와 ‘전설의 달 포르노’ 얘기를 엿들어보기로 하자.
 
주제페는 포도를 재배하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빚은 와인이 인기를 얻자 벌크와인 형태로 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아버지 실비오는 1차 세계대전 후 네그라(Negrar)로 옮겨 지금의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50년대에 주제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기로 한다.
 
한편 로마노는 3대 째 포도재배를 하는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와인은 수출은커녕 염가로 팔려나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와인교육이나 양조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1979년 로마노는 주제페 와인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제자로 입문했다. 자기 와인에는 인색하고 엄격했던 주제페였지만 제자들에게는 그의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할 정도로 아량이 넓었다. 몇 년 후 로마노는 주제페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발폴리첼라 와인세계를 개척하고자 했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결정한 주제페는 그의 꿈이었던 최고의 아마로네와 레초토를 만들기위해 포도건조기간을 최대로 늘렸고, 전통 보테와 프랑스 오크통에서 머무는 시간과 병숙성을 최소 7년 이상으로 늘렸다. 또한 잔당과 불휘발성의분 함유율을 높였다. 보르도의 대표품종인 카베르네에 아마로네 기법을 접목시켜 성공시킨 와인 알제로(Alzero)를 선보여 보르도와인과 경쟁할 준비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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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나 키우기에 적당한 땅이지 와인용 포도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고 스승이 말렸던'발레 딜라시’에, 로마노는 그의 꿈을 이룰 와이너리의 말뚝을 박는다. 그는 블렌딩의 예술이라 불리는 발폴리첼라 와인에 몰리나라 품종 대신 오세레타(oseleta)를 섞었다. 이는주요품종인 코르비나와 코르비노네를 오세레타와 같이 발효시키면 색소를 최대한 축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승이 양조과정에 심혈을 기울인 반면, 로마노는 포도밭 재배기술과 포도건조과정이 발폴리첼라 와인의 품질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는 우선 헥타르당 11,000~13,000 그루의 포도나무를 심어 면적당 포도나무 밀도를 늘렸다. 수확한 포도는 완전 건조시켰으며, 헥타르당 발폴리첼라 생산량을 연간 4만 병, 아마로네 생산량을 약 2만병으로 조절했다. 또한 양조실 2층에 위치한 거대한 건조실에서는 아마로네 와인 생산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포도건조기간 동안 좌우로 움직이면서 습기와 바람을 조절해주는 대형 선풍기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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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포르노 와이너리 방문은, 로마노가 오크통에서 직접 따라준 발폴리첼라 와인을 맛보는 것으로 끝났다. 달 포르노의 거대한 아마로네 왕국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퀸타렐리의 유족 피오렌자와 이제 막 와인업계에 들어선 그녀의 장남 프란체스코가 생각났다. 와인이 좋으면 지구 반대쪽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믿는 그들은, 그 흔한 웹사이트도 없이'마케팅 무(無 )’의 마케팅전략을 펼치고 있었다. 포도 건조실 안내 중 틈틈히 포도를 뒤집어주고 터진 포도알을 솎아내던 퀸타렐리의 피오렌자 여사와, 작은 호수쯤은 하루아침에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할 정도의 거대한 건조능력을 갖춘 선풍기들이 굉음을 내며 포도알 속속들이 바람을 넣어주던 달 포르노의 건조실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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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폴리첼라 와인 _ 베네토 주의 대표적 와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으로 유명한 베로나 시의 북쪽에 서→동 방향으로 병풍처럼 펼쳐있는 일련의 계곡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DOCG), 레초토 델라 발폴리 첼라(DOCG), 발폴리첼라 리파소(DOC), 발폴리첼라(DOC) 등 네 종류의 와인을 모두 아우른다. 동일한 지역 내에서 같은 품종을 같은 비율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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