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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Stephane SON (sonwine@daum.net)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1999년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 한국 와인 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 와인연구소>를 설립,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와인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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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젊음의 거리, 서면. 끊임없이 밀려드는 젊은 커플들의 인파 속에 근처 식당들은 대개 이들의 입맛에 맞는 가벼운 메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통 레스토랑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참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7년 동안 장수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고객들 대부분은 이미 수년째 단골이거나 그 단골들의 소개로 오고 있다. 부산 똑순이, 석윤경 오너 소믈리에가 있기 때문이다.
 
서면 구역의 가장 외곽 쪽 한국전력 부산본부 뒤편 건물 2층에 있는 가비 레스토랑. 커다란 음식 사진이 식욕을 자극하며 필자를 맞는다. 건물 외벽을 타고 만들어진 2층 계단이 묘한 이국적 설렘을 준다. 서울에서 바삐 내려 오느라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모차르트의 실내악이 흐르는 실내는 낮인데도 오렌지 등이 켜 있어 색다른 분위기였다. 식탁에는 이미 2병의 와인이 디캔팅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와인은 오렌지색 불빛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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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에서 레스토랑 오너로
 
중학교 1학년 소녀는 어머니의 모교를 함께 방문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이 학교가 모교라고 말해 주었고, 그 겨울 하얗게 눈에 덮인 캠퍼스와 고색 창연한 음대 건물에 반한 소녀는 꼭 이 학교를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소원대로 소녀는 음대 피아노과를 들어갔고,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 소녀가 석윤경 대표다. 7살 때부터 피아노를 공부해서 피아니스트는 당연한 꿈이고 목표였다. 지방 출신으로서는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이화여대 음대에 합격했다. 대입 실기 시험 직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영정에 자랑스럽게 합격증을 바친 효녀다. 그녀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를 목표로 삼았고,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 등 ‘불태우는 듯한’ 열정적인 음악을 좋아했다.
 
피아노 건반을 치던 섬섬옥수 같은 손으로 어떻게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서빙하게 되었을까?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준비하며 부산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던 석 대표는 살림도 해야 했기에 90년대 중반부터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늦게 배운 뭐가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늦게 배운 요리에서 재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석 대표는 "음표가 모여서 음악이 만들어지듯이, 각 식자재가 모여서 하나의 요리로 탄생하는 신비를 경험했다"고 당시의 감흥을 설명했다. 음악가인 그녀에게 요리는 예술이었고, 특히 조화의 예술로서 다가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요리사의 기술 중 가장 중요한 칼질에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자격증 과정은 포기하고 즐겁게 요리를 공부했다.
 
요리를 공부하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레스토랑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친구의 식당에서 협업을 하면서 운영 경험을 쌓았고, 이 경험은 후일 가비 창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너로서의 자격을 다졌던 셈이다. 일년 후 2008년 8월에 현재의 가비를 오픈하였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 7년째 안정적으로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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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캔터 안의 오렌지 빛깔 와인은 점차 안정이 되면서, 짚단과 들판의 야생화 향기를 뿜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몬드와 헤이즐넛 견과를 잔뜩 뿌린 그리스식 채소 샐러드를 함께했다. 고소한 풍미가 음식에서 와인으로, 와인에서 음식으로 넘나들었다.
 
 
■ 와인의 세계에 눈을 뜨다
 
석 대표는 요리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저렴한 와인들만 시중에서 접할 수 있어서 처음에는 독일 모젤 지방의 리슬링을 즐겨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한 바롤로 와인을 마시고는 와인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했다. 아름다운 루비 색상과 화려한 향기, 긴 여운을 갖고 있었으며, 섬세하면서도 깊이감이 있는 양성적인 매력이 돋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때 처음으로 와인이 어떤 향수나 보석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석 대표가 와인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한 계기는 2007년 친구의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울 때였다고 한다. 향후 레스토랑을 직접 경영하게 되면, 와인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직접 소믈리에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믈리에를 고용하여 맡기는 것보다는 본인이 직접 알고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창 불붙은 열정으로 국내에 나와 있는 와인 책은 모두 다 읽었고, 독학으로 공부하며,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적 목마름으로 와인의 세계를 채워 갔다. 하루 하루가 행복했다.
 
그러던 중, 2009년 필자가 부산에 내려가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을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석 대표를 보았다. 그녀는 또랑또랑하게 본인을 소개하며, 지금까지 독학으로 와인을 공부했는데, 내 강의를 듣고는 앞으로 중앙대에서 와인을 공부해보겠다는 열정을 피력하였다. 그녀는 다음 해 2010년 중앙대학교 지식산업교육원 와인마스터과정을 3기로 입학했다. 일 년 동안 주 1회 KTX와 비행기를 이용하여 서울을 왕복하였던 그녀는 결국 최우수 성적으로 총장상을 수상하며 졸업하였다. 그때, 내가 석 대표에게 붙여준 별명이 부산 똑순이다. 그녀의 열정과 노력과 성과에 지금도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석 대표도 나처럼 다른 분야의 전공을 하다가 와인산업으로 들어와 새로운 꿈으로 멋진 출발에 성공하였다. 인터뷰 중에 그녀는 영국의 와인 전문가 오즈 클라크 Oz Clarke 얘기를 하였다. 그는 본래 뮤지컬 배우였는데, 자신의 음악적 감성이 와인을 평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 석윤경 대표도 피아니스트에서 소믈리에가 되었으니, 그 섬세한 음악적 감성으로 고객들을 와인 하모니의 우아한 세계로 인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가비 GAVI 를 오픈하다
 
석 대표는 2008년 8월 레스토랑 <가비>를 열었다. 독자 여러분은 가비 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필자는 업장의 이름을 이탈리아 와인 원산지인 피에몬테 가비에서 따 온 줄로 알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작명가에게서 받은 이름이란다. 가비라는 한글 단어는 음운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좋은 기운을 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작명가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작명가에게 업장 이름을 받을 정도로 그녀는 이 사업을 진지하게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비가 놀랍게도 유명한 와인 산지의 이름이기도 하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묘하다. 결국 와인으로 성공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주요 고객층은 주변에 병원이 많아서 의사들이 많고, 그 다음으로 회사원들이다. 은근히 30대 전문 직종 여성들도 많다고 한다. 필자가 월 1회 이곳에서 와인 교육시음회를 주최하는데, 그때마다 주변 테이블에서 젊은 여성분들이 부산사투리로 대화 나누는 것을 들었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 필자가 가비를 찾았을 때, 지하철 서면역에서 지하상가를 거쳐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며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 도로의 막다른 벽에 와서야 이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서면 구역에서는 가장 변방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입지가 와인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정통 레스토랑으로서의 가비의 콘셉트를 유지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20대를 위한 패스트푸드점과 제과, 커피점들이 많은 서면의 한 중간에 있었으면 아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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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 내부 구조로 볼 때, 가비는 비즈니스 모임, 가벼운 회식,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최적이다. 중앙에 멋진 대형 와인 셀러가 있고, 그 주변으로 다양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다. 룸은 없지만, 적절히 유리 칸막이와 화분 그리고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어서 오히려 답답하지 않아 좋다. 12명 정도의 모임이 가능한 창가 쪽 공간과 6명 정도로 최적화된 큰 타원형 테이블도 있다. 물론 2~4인용 테이블도 다채롭게 세팅이 가능하다. 중앙에서 이 모든 공간을 나누고 있는 셀러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인테리어 역할도 하고 온도와 습도를 맞추며 정확히 작동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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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비>의 와인 리스트
 
가비에는 여러 수입사의 다양한 산지 와인을 망라하며 약 500여 종의 와인이 리스팅되어 있다. 리스트를 열어 보았다. 사진에서 보듯이 글자도 크고 글씨체도 읽기에 좋다. 와인이 바뀌는 즉시 변동 사항을 업데이트하여 비닐 파일에 끼운다. 멋보다는 실용성이 강조되었다. 리스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탈리아 화이트였다. 에스트 에스트, 팔랑기나, 뻬꼬리노 등 매우 독특한 지역과 품종을 중심으로 20여 종이 리스팅되어 있다. 대단히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리스트로, 석 대표 본인도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론 산지 와인도 15종이나 선정이 되어 있어, 가비의 프렌치, 이탈리안 음식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부드러운 와인을 즐기는 부산 애호가들의 특성과 디저트를 즐기는 젊은 층들을 위하여 스위트 와인도 약 20여 종 다량 보유하고 있다. 지역 특성을 살린 리스트다. 디저트 와인 중에서는 특히 포트가 많은데, 이는 석 대표 개인적인 관심과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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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의 와인 매장에서 구하기 힘든 소규모 생산자들의 우수한 와인들도 발굴하여 등재했다. 인터뷰 때 마신 다이얀의 리볼라 지알라처럼 북동부 이탈리아의 자연주의 화이트 와인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지방에서 잘 팔리지도 않을 텐데 희소성이 있거나 개성이 있는 와인들을 알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조금이라도 와인을 더 배운 입장에서 고객들이 새로운 와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애쓰는 석윤경 소믈리에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내가 본 가비의 가장 특징적인 서비스는 바로 와인 정보화 시스템이다. 석 대표는 몇 년 전 와인 박람회에 갔을 때, 한 회사의 와인 소프트웨어를 보고 맘에 들었다. 일반 고객들이 자기가 마시고 있는 와인의 이름과 품종, 맛과 느낌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구입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중앙 서버에 입고된 와인 정보를 입력하면 그대로 영수증처럼 간략하게 출력할 수 있다. 고객이 와인을 주문하면 와인과 함께 출력한 정보지를 가져다 준다. 메인 리스트의 정보는 매우 짧고 한정이 되어 있어서, 와인을 잘 모르는 손님들은 자기가 마시는 와인의 정보가 궁금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자세한 정보지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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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레스토랑 <가비> 의 음식
 
가비에서는 음식과 와인 두 분야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오너-소믈리에의 추천 및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애초에 음식에 대한 관심 때문에 레스토랑을 연 석 대표이기에 음식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도 셰프만큼 강하다. 엄선된 식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정성 어린 음식이 메뉴 리스트에 가득하다. 젊은이들을 위한 가벼운 애피타이저나 디저트부터, 파스타, 피자 그리고 미식 애호가를 위한 진지한 스테이크 요리까지 전문 레스토랑의 구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처음에 나온 그리스식 샐러드는 치커리와 꽃양배추 등 싱싱한 채소에 아몬드가 듬뿍 뿌려져 입안이 상쾌하고 고소하다. 특히 놀라운 것은 페타 치즈와 리코타 치즈의 조화였다. 페타가 짭조름한 긴장감을 주었다면 리코타는 부드러운 이완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치즈의 조화까지 기가 막히게 고려해서 만든 음식이다. 두 번째 나온 피자는 마르게리타 기본형에 체다 치즈와 페타 치즈를 푸짐하게 넣었고 싱그런 허브 향의 바질을 듬뿍 얹었다. 도우는 매우 얇고 파삭한 게 피자 전문점보다 우월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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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나온 연어 스테이크는 노아의 방주처럼 튼튼하게 커팅된 연어 몸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껍질 부분은 까무잡잡, 살 부분은 노릇노릇 구워내어 색상에서도 식욕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나이프로 한 겹 베어내니 반숙된 연어의 속살이 부끄럽게 내비쳤다. 매우 연하고 순했다. 내 생애 최고의 연어 스테이크였다. 마지막으로 나온 요리는 최근 가비에서 내놓은 새로운 메뉴, 뉴질랜드산 티본스테이크. 굵은 T자형 뼈대가 중앙에 박혀 있는 티본 스테이크는 자칫하면 오버쿠킹되어 양쪽을 모두 살리기가 쉽지 않은 위험한 부위인데, 부드러운 안심과 풍부한 식감의 등심이 바질과 후추 소스 아래 잘 익혀 나왔다. 워낙 풍요로운 맛이 있는 부위라 가니시는 불필요했고 아스파라거스와 싱싱한 버섯이 신선미를 보충해주었다. 이 모든 음식은 창업 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박상목 셰프의 작품이다. 그가 제대로 된 프렌치 이탈리안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작은 주방,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큰 음식을 만드는 그의 손길이 가비를 지키고 있다.
 
 
■ 서면의 대표 주자, 석윤경 오너-소믈리에
 
고객에 대한 깊은 배려와 인내, 각 와인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에 대한 이해와 애정,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을 소믈리에의 3대 덕목으로 삼고 실천하는 석윤경 소믈리에. 매일 저녁 자신을 돌아보고 늘 새로운 것을 탐구하면서 소믈리에로서의 자질을 닦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석 대표 스스로도 진짜 열심히 공부한다. 부산에는 퓌메 라는 부산 지역 소믈리에들의 공부 모임이 있다. 업무가 끝난 11시경에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데 여기에도 석 대표는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모든 와인 소개나 홍보 행사, 시음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지방은 항상 한 박자 늦게 와인을 접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그녀는, 아예 두 달에 한번 정도 특정 테마를 선정하여 가비만의 독자적인 시음회를 개최하고 있다. 석 대표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그녀는 개인적으로 고집이 있는 와인, 열정 있는 생산자의 철학이 깃든 와인을 좋아한다.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장인의 고집과 자부심으로 만들어진 뚜렷한 색깔의 와인을 칭송하는 매우 야심 찬 소믈리에다.
 
다듬어지지 않은 도구는 적절하게 쓰여질 수 없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탐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석윤경 소믈리에. 모든 파인 다이닝의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간 지금, 부산의 전통적 중심인 서면에서 전통과 정통을 지키며 열정적으로 와인을 전파하고 있다. 이런 작은 개인 레스토랑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많아질 때 우리 와인 산업의 저변은 더욱 튼튼해 질 것이다. 굳세어라, 부산 똑순이!
 
 
 
 
< 석윤경 소믈리에와 함께 한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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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ijan, Ribolla Gialla, 2007
다미얀, 리볼라 지알라
 
가장 이탈리아적이지 않은 이탈리아 땅 프리울리, 국토의 북동부 끝에 위치해 있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언어를 혼용하며 동부 유럽인들의 느낌이 난다. 알프스 산맥의 낮은 끝자락, 고리찌아 Gorizia 언덕에 있는 다미얀 농장은 1988년 설립되었는데, 일명 오렌지 와인이라고 불리는 매우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에 따라 포도밭을 가꾸며 자연주의 와인을 생산한다. 보통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는 껍질을 버리고 주스 만으로 생산하는데, 그는 마치 레드 와인처럼 청포도의 껍질과 함께 발효시킨다. 그래서 그의 와인은 색상이 매우 진하고 다소 떱떠름한 타닌 감이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대략 2년의 오크 숙성과 2년의 병입 숙성을 진행한다.
 
그의 리볼라 지알라 와인은 진한 호박 보석색으로 오렌지 껍질 색깔을 연상시킨다. 살구꽃과 연한 들꽃향기, 아니스와 목재향, 그리고 다소 마른 흙내음도 느껴진다. 잔을 흔들면, 호박엿이나 곶감 같은 감미로운 향이 올라오며, 광물질의 터치가 살아난다. 입안에서는 향긋한 감귤과 개암, 캐슈넛의 고소한 풍미가 매우 개성 있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살짝 익은 홍시 하나를 먹은 것 같다. 껍질과 함께 발효시켰기에 빳빳한 타닌감이 잔잔하게나마 느껴진다. 여운이 30초 이상 길게 이어진다. 시음 4~5시간 전에는 미리 브리딩을 해두어야 하며, 일반 화이트 와인의 음용 온도보다 높은 15℃ 정도에서 마시는 것이 좋다. 초보자보다는 오랫동안 와인을 마셔온 애호가들에게 추천한다.
 
 
Elio Altara, Barolo, Arborina, 2008
엘리오 알타레, 바롤로, 아르보리나
 
이탈리아 최고의 레드 와인 산지, 바롤로. 네비올로 품종의 정통성이 깃들어 있는 이곳에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이단아가 등장한다. 그는 바롤로 지역의 셀러와 포도 재배 기술에 혁신을 가져온 장본인이며 부드럽고 풍부하며 화려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 그래서 엘리오 알타레, 그를 모더니스트, 현대주의자 라고 분류한다. 전통주의자 바르톨로 마스카렐로와 각을 세워 토론한 사건으로도 유명한 그다.
 
화학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 농법으로 20년을 재배해 왔다. 열매솎기 Green Harvest 를 최대로 하며, 당시 20톤 정도 생산하던 것을 5톤 정도로 과감히 축소하였다. 그 결과, 농축된 고품질 포도를 얻었다. 양조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껍질 침용 Maceration 방법과 기간을 단축했다. 셀러에서는 작은 프랑스 오크통 바리크를 사용했다. 풍부한 향과 호화로운 특성을 가진 바롤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르보리나 싱글 빈야드는 남향의 경사지에 있다. 따뜻한 햇볕과 적절한 토질의 비옥함으로 풍성하고도 견고한 바롤로가 생산된다. 브리딩한 지 1시간이 경과된 아르보리나는 부드러운 적벽돌 색상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따뜻한 색감을 연출하고 있다. 커런트와 블랙베리의 야생 과일향에 아니스, 정향 등 향신료가 뿜어져 올라온다. 민트와 볏짚단, 들판의 허브 내음이 저변에 깔려 있고, 바닐라, 토스트 등 오크 향이 세련되게 감싸고 있다. 인터뷰로 3시간이 경과하자 전통적인 제비향과 말린 장미, 감초향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풀 보디의 탄탄한 몸집에 빳빳한 타닌으로 코팅된 견고한 구조가 일품이다. 이 정도면, 전통이니 현대니 하는 논란은 의미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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