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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Stephane SON (sonwine@daum.net)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1999년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 한국 와인 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 와인연구소>를 설립,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와인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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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우)과 신성호 이사(좌)>
 
 
 
<손진호의 와인피플> 다섯 번째 주인공은 나라셀라 신성호 이사이다. 겨울이 지날 무렵 청담동의 ‘더 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그를 만났다.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 검은 눈썹과 검은 눈동자, 수트까지… 검은 색이 잘 어울리는 그는 십여 년 전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필자의 말에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니, 당시 제가 무척 아저씨 같았나 봅니다(웃음)”하며 농담으로 응수하는 그는, 사실 예의와 정중함으로 무장한 한국 와인업계의 소문난 댄디맨이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함께 시음하기 위해 두 가지 와인을 준비했는데, 그 중 하나는 캘리포니아의 메르 쏠레이 Mer Soleil’ 샤르도네 와인이었다. 박카스를 연상시키는 짙은 색상에 희미한 열대 과일 풍미를 지닌 메르 쏠레이는, 처음 이 와인을 맛보았던 13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아련한 과거로 시간을 되감았다. 다른 하나는 나라셀라의 간판 와인인 칠레의 몬테스 알파 M으로, 공동 창업자 아우렐리오 몬테스와 故 더글라스 머레이 씨가 친필 사인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와인이 만들어진 2004년은 신 이사의 득남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했다.
 
이렇게 의미 깊은 두 와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15년 숙성된 그의 와인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르네상스적 인간 알토맨, 와인으로 환승하다
 
필자가 신 이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초반 즈음으로, 한국 와인산업이 막 도약하기 시작하던 때라 모든 것이 역동적이었다. 또한 몇 안 되는 업계 종사자들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며 함께 와인을 마시던 호시절이었다. 필자가 그를 만난 것도,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와인행사에 와인애호가로서 참석했던 때였을 것이다.
 
현재 와인업계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는 이들 중에는, 와인에 푹 빠져 와인애호가에서 전문종사자로 전업한 이들이 적지 않다. 신 이사 역시 그런 경우이다. 천리안 와인동호회 <코르크 따개가 없는 마을>의 2대 운영자로 활동하기 전만 해도, 그의 삶은 와인이 없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친구의 제안으로 와인동호회를 만들었고, 그 친구가 그만두면서 동호회 운영을 떠맡게 된 그는 일년 간 미친 듯이 와인을 공부했다. 와인 공부는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고,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고 매혹적이었다.
 
동호회를 꾸려가며 꾸준히 와인을 공부하던 그는, 와인이 본인의 르네상스적인 라이프 스타일과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와인이 취미 이상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와인을 단지 주류가 아닌 문화적인 코드로 받아들이던 그는 와인업계로의 전업을 고려하기에 이르렀고, 와인을 사기 위해 와인숍 <와인타임>에 들른 것이 우연한 계기가 되어 현재 나라셀라의 전신인 나라식품에 입사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 벌써 30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을 알고 필자는, ‘그나 나나 와인산업이 막 태동하던 당시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향수를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마개를 열어놓았던 메르 쏠레이는 잘 익은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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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숍 매니저에서 유통을 거쳐, 마케팅 본부장으로
 
2001년, 그가 나라셀라에 입사하자마자 맡은 첫 보직은 현대백화점 내 와인숍 매니저였다. 당시 필자는 그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도 했던 터라, 그가 근무하던 매장을 기억한다. 엄친남 분위기의 말쑥한 외모에 성실하고 꼼꼼한 신 매니저는, 당시 폭발적으로 일던 와인 붐을 타고 와인 매장에 들린 고객들 사이에서 큰 신뢰를 얻었다.
 
이곳에서 능력을 인정 받은 그는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전체 직영 숍 및 백화점 숍을 관리하는 유통팀장으로 승진했고, 그 다음 해에는 마케팅 팀장을 맡았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6년에는 확대 개편된 마케팅본부의 본부장이 되어 브랜드 관리, 홍보 총괄, 와인 구매 책임자로서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이렇듯 그의 경력은 탄탄대로를 걸었고, 그는 당당히 능력으로 일구어낸 전업의 보람을 만끽했다.
 
그 후 2010년까지 거의 7년 동안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였으니, 실로 나라셀라의 수많은 브랜드는 그가 키워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WSET 고급과정을 마쳤으며, 2008년에는 미국 나파밸리의 한 양조장에서 양조 인턴십까지 마치는 학구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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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셀라 마케팅의 차별화
 
국내 와인업계 매출 3위의 중견기업 나라셀라는, 우리나라의 대표 제분 기업인 동아원 그룹의 와인 부문 계열사이다. 여기에 외식 사업과 와인 교육 사업까지 하고 있어, 그야말로 와인과 관련한 조직적이고 포괄적인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전국에 7개의 직영 매장(와인타임)을 운영 중인데, 아마 수입사로서는 최대 규모일 것이다. 이렇듯 체계적인 인프라는 신 이사의 마케팅 활동에도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외국에서 방문한 파트너가 와인숍에서,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자사 와인을 발견하면 얼마나 고맙고 뿌듯하겠는가.
 
7년 동안의 마케팅 노하우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신 이사는 단번에, "브랜드의 스토리텔링 요소를 중시한다"고 답했다. 생산자의 헌신적인 노력, 산업에 기여한 공로, 철학, 비전 등의 스토리를 와인과 함께 용광로에서 녹여내어, 문화•예술 콘텐츠를 담은 하나의 아이템으로 만들어 전파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조직적인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관리하고 있는데, 과연 나라셀라와 와인타임의 홈페이지는 필자가 본 수입사 홈페이지 중에서도 단연 뛰어났다.
 
그는 마케팅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뛰어난 필력과 통찰력으로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한다. 최근 나라셀라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의 칼럼 <나파 밸리의 인물열전(3) 고집불통 영감님 알 브라운스틴(상, 하)>에는 인물에 대한 묘사와 그가 어떻게 포도밭을 가꾸고 어떠한 심정으로 와인을 만드는가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고, 그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글쓴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다이이몬드 크릭 빈야즈 와인을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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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필력을 바탕으로, 그는 매우 유쾌한 와인 서적 <와인 천재가 된 홍대리>(2012)를 출간하였다. 이쯤에서 필자는 그의 지적인 작업의 성과에 축배를 들고 싶다.
 
 
■ 와인산업의 세계적인 거성들과 함께한 15년
 
나라셀라와 신성호 이사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더해 삼각관계를 완성하려면, 국민와인 몬테스를 빼놓을 수 없다. 나라셀라는 미국 고급 와인과 칠레 와인 카테고리에 있어서 국내 최고의 강자이다. 컬트 와인을 비롯한 미국 고급 와인들이 경영자의 선택의 결과라면, 오늘날 몬테스가 누리는 입지는 신 이사가 완성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패와 좌절을 맛본 경험담으로 주저 않고 “2011년 말 국내 와인 가격을 다룬 모 일간지의 기사 때문에 몬테스가 애꿎게 집중포화를 맞은 사건“을 드는가 하면, 와인 산업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몬테스의 공동 창업자 더글라스 머레이 씨를 꼽는 것을 보면, “신성호는 몬테스 테루아의 일부"라는 주변인들의 농담을 이해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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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개인 이력에서 가장 중요했고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자, 2008년 세계적 와인 구루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Jr. 위 사진)가 방한했을 때 갑작스럽게 통역을 맡게 되었던 일과, 철학적인 와인 저술가 맷 크레이머(Matt Kramer, 아래 사진)의 첫 방한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일을 꼽았다. 두 번째 현장에는 필자도 참석했기에, 마치 수도승처럼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의 기도와 땅의 기운이 만나 이루어진 테루아의 신비를 설명하던 크레이머 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그만큼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잘 풀어 통역했던 신 이사의 재치와 능력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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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위 와인맨, 신성호 이사
 
신성호 이사를 알거나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추를 채운 양복 차림으로 통역과 진행을 하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나라셀라에 입사한 이래 500회 이상 와인 행사를 진행했다니, 그는 아마도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기록의 보유자일 것이다. 물론 그 기록을 깨는 자도 본인이겠지만.
 
와인숍 매니저에서 유통과 영업을 거쳐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직을 두루 거친 그는, 현재 기획 홍보 이사를 맡으며 언론 및 SNS 홍보를 총괄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방문한 파트너들에 대한 의전도 관리한다. 이처럼 그의 세심한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디에 있든, 항상 믿음직하게 그 자리를 빛내고 지키는 그는 그야말로 전방위 와인맨이다.
 
 
 
< 나라셀라 신성호 이사와 함께 한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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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 Soleil, Reserve Chardonnay, Caymus Vineyards
메르 쏠레이, 리저브 샤르도네, 케이머스 빈야즈 (2012)
 
메르 쏠레이! 불어로 "바다와 태양"이라는 뜻이다. 중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에서 불어 오는 태평양의 서늘한 바다 기운(Mer)이 와인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면, 낮 동안의 뜨거운 태양(Soleil)은 감미로운 천국의 과실향을 포도에 알알이 담아 내었으니, 메르 쏠레이라 불릴 만하다. 13년 만에 다시 맛보게 된 이 와인은 레이블 색상만큼이나 짙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고, 명불허전을 되뇌일 만큼 옛 기억 그대로였다. 시골집 울타리의 잘 익은 탱자로 술을 담으면 이 색과 이 풍미가 나려나? 패션 프루트와 파인애플, 천도복숭아의 풋풋한 열대 과일향이 특징적인 이 와인은 지난 여름 피렌체에서 보았던 봇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게 했다. 14.5%의 알코올이 전하는 볼륨감이 더해져, 영락없는 그 비너스다. 겨자와 버터, 라임 소스를 뿌린 은대구 구이나 풍성한 해물이 가득 담긴 부야베스 요리와 잘 어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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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es Alpha M, Vina Montes
몬테스 알파M, 비냐 몬테스 (2004)
 
칠레 콜차구아 밸리의 산타 크루즈 구역은 최고의 포도를 생산해내는 명산지 중의 명산지이다. 특히 창업자 아우렐리오 몬테스의 애정이 깃든 아팔타 포도밭은 몬테스 4대 명품 와인의 고향이다. 이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약간의 카베르네 프랑과 까르므네르, 쁘띠 베르도, 메를로를 블렌딩하여 보다 화려한 옷을 입은 보르도 스타일을 구현하였다. 11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잔잔히 비치는 적보랏빛은 고급 칠레 와인의 숙성 잠재력을 보여 주었으며, 싱그러운 산도와 감초, 아몬드, 덤불 숲, 시가 등의 묵은 부케가 균형을 잘 이루어주었다. 또한 다크 초콜릿과 커피 풍미로 마감되는 진하고 긴 여운 덕분에 칠레 까베르네의 강한 타닌감마저 부드럽게 느껴졌다. 더 반 스테이크 하우스의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비로소 제 친구를 만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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