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라인가우에 자리한 슐로스 폴라즈(Schloss Vollrads)는 현존하는 와이너리 중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무려 800년이나 되었다. 1211년에 상업적으로 와인을 판매했던 거래 내역서가 발견되어 공식적인 설립연도가 되었지만 그 뿌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올 2016년은 독일에서 최초로 슐로스 폴라즈가 ‘카비넷(Cabinet)’이란 용어를 사용한 지 3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카비넷은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상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슐로스 폴라즈에서는 특별히 우수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카비넷이라 부르며 따로 보관했다고 한다. 이후 카비넷은, 1971년 독일 와인법 제정 당시 포도의 당도에 따라 와인을 분류하는 프레디카즈바인(Prädikatswein)의 첫 번째 등급인 카비넷(Kabinett)으로 철자만 바뀐 채 새롭게 정착되었다.

▲이탈리아 여행 중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냐에서의 괴테>
괴테와 슐로스 폴라즈의 조우
독일의 대문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리슬링을 좋아했고, 라인가우 지역으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괴테가 라인가우를 여행하는 동안 슐로스 폴라즈 고성(古城)에 머물며 여행 일지를 기록했다.
“윙켈(Winkel) 지역 중심부에서부터는 위로 향하는 경사 지대이며 그 경사는 폴라츠(슐로스 폴라즈 와이너리의 고어, Vollath)를 향하고 있다. 산기슭 경사지에는 ‘슐로스 폴라즈’가 있다. 좌 우측으로는 기름진 토양의 포도밭이, 성의 뒤쪽에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의 숲이 즐비해 있다. 와인의 품질은 포도밭의 상태와 수확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수량에 집중하면 품질이 낮아지고, 최고의 품질을 찾게 되면 자연스레 적은 수량을 생산하게 된다.”
슐로스 폴라즈에 대한 글을 통해 천재 괴테가 와인에 대한 일가견 또한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리슬링은 곧 슐로스 폴라즈
최근 슐로스 폴라즈의 CEO 로발트 헵(Dr. Rowald Hepp)이 방한하여, 수입사 금양인터내셔날과 함께 국내 프레스와 만나는 자리에서 리슬링의 정수를 가감 없이 소개했다.1999년부터 현재까지 슐로스 폴라즈의 CEO를 맡고 있는 로발트 헵은 독일 가이젠하임 대학에서 와인양조학을 전공한 인재로 와인 양조에도 참여하고 있다.
슐로즈 폴라즈는 리슬링 품종의 와인만 생산하는데, 로발트 헵은 “가장 정교하고 우아한 화이트 품종인 리슬링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며 “이는 곧 슐로스 폴라즈의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현재 슐로스 폴라즈는 총 80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손 수확을 기본으로 한다. 오크 숙성이나 젖산발효를 전혀 하지 않는데, 이로써 품종 자체의 풍미와 라인가우의 테루아를 고스란히 담아 낸다.
기자는 로발트 햅과 함께 한 자리에서, 리슬링 집중 탐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리슬링을 비교 시음하며 폭넓은 리슬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 리슬링 젝트 b.A. 엑스트라 브뤼 2003
Riesling Sekt b.A. Extra Brut
슐로스 폴라즈는 독일의 다른 와인 생산자들보다 훨씬 앞선 1861년부터 리슬링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빈티지 젝트의 경우, 빈티지 샴페인처럼 좋은 빈티지에만 생산한다. 가장 최근 빈티지는 2009년이며 생산량 자체도 매우 적다. 무려 9년 동안 병 숙성을 거치는데, 그 덕분인지 와인은 크림처럼 부드럽고 이스트의 향미도 그윽하다. 미세한 거품이 생생하게 솟구치고 산미 또한 상쾌하며 잘 익은 과실의 향미가 풍부하다.

▲ 리슬링 크발리태츠바인 트로켄&apos800주년 기념 와인’ 2011
Riesling Qualitätswein trocken&apos800 years of selling wine’
위 와인은 슐로스 폴라즈의 800주년을 기념하며 1761년 당시의 양조법으로 만든 와인이다. 포도뿐만 아니라 줄기와 씨까지 모두 넣고 발효해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줄기째 넣고 발효하는 것과 동일하다. 일반적인 리슬링과는 달리, 배와 복숭아 같은 과일 풍미 외에도 각종 허브와 향신료의 향미가 느껴진다. 중간 이상의 산미와 함께 미네랄이 풍부하다. 리슬링의 알코올은 보통 9% 전후인데 반해 이 와인의 알코올은 13.5%이란 것 또한 독특하다.

슐로스 폴라즈는 카비넷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와이너리답게 카비넷이란 카테고리 아래 세 종류의 시그니처 리슬링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와인은 미묘한 당도와 산도의 차이를 보인다.
리슬링 카비넷 트로켄 2015 Riesling Kabinett trocken(왼쪽 사진)의 경우 세 와인 중 가장 드라이한 타입으로 꽃, 사과, 라임, 미네랄의 향미가 상당히 두드러진다. 산미도 강하고 미네랄 느낌이 잘 나타나는데, 로발트 헵은 “미네랄은 산미가 좋은 와인에서 잘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리슬링 카비넷 파인허브 2015 Riesling Kabinett trocken feinherb(가운데 사진)은 잔당이 18.8g/L으로 미디엄 드라이 타입이다. 직접적인 단맛보다는 감미롭고 부드럽게 느껴지는데, 이는 좋은 산도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슬링 카비넷 2015 Riesling Kabinett(오른쪽 사진)은 잔당이 60.4g/L으로 세 와인 중 가장 달콤하다. 그러나 산도가 강해 당도가 그대로 느껴지진 않는다. 꽃, 즙이 많은 파인애플의 향미가 나며 여운에서 달콤한 뉘앙스가 이어진다.

또한 로발트 헵은 빈티지에 따라 리슬링의 풍미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알려주기 위해 2014, 2011, 2004 세 빈티지의 와인을 선보였다. 세 와인의 공통점은 일등급 포도밭에서 자라는 오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 프리미엄 와인이라는 점이다.
가장 최근 빈티지인 슐로스베르그 리슬링 크발리태츠바인 트로켄 VDP 그로스 게벡스 2014 Schlossberg Riesling Qualitätswein trocken VDP Grosses Gewächs(왼쪽 사진)은 리슬링 특유의 패트럴 향이 기분 좋게 나면서 라임, 청포도, 복숭아의 향이 이어진다. 자갈을 연상시키는 미네랄 풍미가 풍부하고 군더더기 없이 드라이한 맛이 인상적이다.
리슬링 크발리태츠바인 트로켄 에어스테스 게벡스 2011 Riesling Qualitätswein trocken Erstes Gewächs(오른쪽 사진)의 경우, 가장 완벽한 빈티지에 생산된 와인이다. 꽃과 구아바, 오렌지 향이 나고 신선한 산미가 강한 편이지만 튀지 않고 조화롭다. 미네랄 또한 잘 어우러져 더욱 신선하고 구조적으로도 옹골찬 느낌이다.
리슬링 크발리태츠바인 트로켄 에어스테스 게벡스 2004 Riesling Qualitätswein trocken Erstes Gewächs는, 작황이 좋지 않은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와인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충분히 숙성되어 마시기 좋은 때가 되었기 때문인데, 리슬링 품종의 잠재력에 새삼 놀랍다. 레몬그라스, 라임, 배의 향이 나고 젖은 돌과 패트럴의 향도 은은하게 난다. 여전히 산미가 강한 덕분에 10년이 지났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다.
마지막으로, 로발트 헵은 자신의 개인 셀러에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고 소개하며 1967, 1976, 1989, 1996 빈티지 와인의 마개를 열었다. 라인가우에서 내노라하는 와이너리에서 만든 달콤한 리슬링 와인들이었다. 이 와인들은 한결같이 산도가 뛰어나고 질감이 크림처럼 부드러웠으며 맛이 풍부했다. 이쯤 되면, 리슬링이야말로 진정한 안티에이징 와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게 한 테이스팅이었다.
수입_ 금양인터내셔날 (02. 2109. 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