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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포도 수확을 막 끝낸 토스카나의 포도밭은 여전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포도나무에는 뒤늦게 영근 포도송이가 드문드문 달려 있었고, 와인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땅으로 사라지게 될 이들의 운명은 포도밭 풍경에 애처로움을 더했다. 하지만 포도 농부들은 올해 농사가 잘 됐다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았고, 잔을 채워주는 그들의 마음도 덩달아 넉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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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산조베제 와인이 있기까지
 
토스카나에서 주로 재배되는 산조베제 Sangiovese는, 피에몬테의 네비올로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중요한 고유 레드 와인 품종으로 꼽힌다. 산조베제는 토스카나 내에서도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몬테풀차노에서는 프루뇰로, 몬탈치노에서는 브루넬로, 그로세토 근처에서는 모렐리노라고 불린다. 이처럼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지만, 산조베제가 가진 독특한 특성은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다. 짙은 아로마와 블랙체리의 향이 명확하며 숲 향과 스모키한 풍미가 공통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조베제는 슈퍼 토스카나, 키안티 클라시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같은 와인 덕분에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산조베제로 만든 와인은 ‘대량생산되며 짚으로 싼 둥근 병에 담긴 저렴한 와인’으로 인식되었던 게 사실이다. 산조베제가 과거의 이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금의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산조베제 품종에 헌신하며 와인 산업의 근대화를 주도한 선구자적인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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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당시 키안티 DOC의 와인 생산 규정과 와인의 품질에 불만을 품던 피에로 안티노리는 규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 내놓았다. 산조베제에 카베르네 같은 외래 품종을 섞은 후 작은 오크통에 숙성시킨 것이다. ‘티냐넬로’라는 이름을 붙인 이 와인은 곧 ‘산조베제로 만든 슈퍼 토스카나’로 전세계에 알려졌고, 이탈리아 와인 산업 내에서도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웃한 키안티에 비해 몬탈치노의 와인 산업은 더디게 발전한 편이다. 1840년대에 이미 클레멘테 산티가 브루넬로 Brunello라는 우수한 산조베제 클론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자본이 유입되던 20세기 말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피에몬테의 부유한 귀족 가문 친차노가 콜 도르차 Col dOrcia 와이너리를 매입한 것, 반피 Banfi 에스테이트를 소유한 미국의 와인상 존 마리아니가 몬탈치노에서 대규모 와인 생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등은 초기 외부 자본 유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프레스코발디, 안젤로 가야, 피에로 안티노리 같은 거물이 속속 몬탈치노에 도착했으며, 최근에는 베네토의 와인 명가 토마시와 알레그리니가 각각 카시자노 Casisano 와이너리와 산 파올로 San Paolo 와이너리를 사들여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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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시 가문이 몬탈치노에서 만드는Casisano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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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그리니 가문이 소유한 San Paolo 와이너리의 최신 양조 설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산조베제의 격을 높이다
 
몬탈치노에서는 산조베제의 클론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품질을 지닌 산조베제 그로소로 와인을 만든다. 이곳에서 산조베제는 브루넬로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작고 진한 빛깔의 포도' 라는 의미를 가진 방언이다 (일반적으로 산조베제는 안토시아닌 함량이 낮아 색이 옅지만 브루넬로는 예외적으로 짙은 색을 띤다). 몬탈치노가 무더운 지중해성 기후를 띠며 토양에 석회질과 모래가 많아 포도가 빨리 익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브루넬로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배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몬탈치노의 북쪽에 위치한 키안티는 습하고 서늘한 대륙성 기후를 띠며 포도가 천천히 익는다. 두 지역의 이러한 기후, 토양의 차이가 와인의 스타일에도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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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Brunello di Montalcino는 말 그대로 ‘몬탈치노의 브루넬로 와인’을 의미한다. 이 와인을 마시면 묵직한 무게감과 힘이 느껴지는데, 높은 산도가 특징인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또한 최소 10년은 기본이고, 좋은 빈티지일 경우 30년 이상 숙성 가능하다. 몬탈치노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 Fattoria dei Barbi의 Stefano Colombini는 브루넬로 와인이 지닌 숙성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몬탈치노는 기후가 온화하고 토양에 석회질이 많습니다. 그래서 브루넬로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라죠. 이 점은 곧 와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기여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인간과 많이 닮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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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toria deiBarbi 와인
 
 
앞서 언급했듯이, 산조베제 그로소 라는 클론을 발견한 인물은 클레멘테 산티다. 그리고 그의 딸 카테리나가 야코포 비온디와 결혼하면서 얻게 된 '비온디 산티' 라는 성은 오늘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대표하는 브랜드, 비온디 산티 Biondi Santi로 남아 있다. 비온디 산티는 1970년대 이후 몬탈치노에 불어 닥친 브루넬로 붐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관련된 일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9년, 영국을 방문 중이던 이탈리아의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식사하는 자리에 1955년 빈티지의 ‘비온디 산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 와인을 내놓았고 이 와인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이 소식은 곧 이탈리아에 퍼졌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몬탈치노에 숨겨진 보석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로 지금까지 이곳의 와인생산자들은 앞다투어 브루넬로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토스카나의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던 몬탈치노는 오늘날 가장 부유한 마을 중 하나로 변신을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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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비온디 산티 가문의 소유였다가 지금은 La Geria 와이너리의 소유가 된 포도밭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스타 빈티지
 
매년 1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생산자협회 Consorzio del Vino Brunello di Montalcino는 가장 최근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의 샘플을 분석하여 해당 빈티지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빈티지의 품질은 다섯 개 만점의 별로 표시되며(괄호 안에 기재된 연도는 각각에 해당하는 빈티지), 이 때 평가하는 와인은 Brunello di Montalcino DOCG, Rosso di Montalcino DOC, Moscadello di Montalcino DOC 그리고 Sant’Antimo DOC를 포함한다.
 
 
좋지 않은 빈티지 (1972. 1976. 1984)
평범한 빈티지 (1954, 1956, 1969, 1974, 1989, 1992, 2002)
좋은 빈티지 (1949, 1952, 1953, 1959, 1960, 1963, 1968, 1971, 1973, 1981, 1986, 1987, 1996, 2000, 2014)
뛰어난 빈티지 (1946, 1947, 1950, 1951, 1957, 1958, 1962, 1965, 1966, 1967, 1977, 1978, 1979, 1980, 1982, 1983, 1991, 1993, 1994, 1998, 1999, 2001, 2003, 2005, 2008, 2009, 2011, 2013)
매우 뛰어난 빈티지 (1945, 1955, 1961, 1964, 1970, 1975, 1985, 1988, 1995, 1997, 2004, 2006, 2007, 2010, 20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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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탈치노의 마을 회관에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각 빈티지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세라믹 타일이 전시되어 있다. 이 다섯 개의 타일은, 다섯 개의 별을 획득한 2015 빈티지를 축하하기 위해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5인이 참여해서 만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2000, 2002, 2014년을 제외한 2000년대의 모든 빈티지가 ‘뛰어나거나’ 또는 ‘매우 뛰어난’ 빈티지로 평가 받았다는 사실이다. 날씨에 크게 상관없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인 진보가 이루어졌고, 2000년대 이후로 지속되어 온 기후변화가 와인의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함께 자연스레 높아지는 알코올 함량은 와인생산자들에게 한 가지 고민을 안겨준다. 높은 알코올 농도가 자칫 와인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몬탈치노는 일조량이 좋아서 와인의 알코올 농도가 자연적으로 높다. 다행히 2016년은 날씨 덕분에 알코올 농도가 다소 낮아질 거라며 와인생산자들은 만족한 기색을 내비쳤다.
 
몬탈치노의 정상급 와인생산자들은 하나같이 ‘균형 잡힌 우아함’ 이야말로 자신의 와인이 지향하는 바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적지 않은 자금을 들여 온도 조절 발효조를 도입하고, 엄청난 노동을 수반하더라도 포도를 손으로 수확하며, 구획 별로 수확한 포도를 별도로 양조한다. 또한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 특히 북부에 비해 질병이나 병충해의 위험이 적어 농약을 덜 사용하면서도, 환경 친화적인 농법을 도입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이다. 한발 앞서 발전을 이룬 키안티를 제치고 몬탈치노의 브루넬로 와인이 ‘이탈리아의 3대 명품 와인’으로 주저없이 꼽히는 것은, 바로 ‘브루넬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들 와인생산자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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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acioche의 와인메이커,산조베제 포도를 들고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다.
 
 
참고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 등급의 최상급인 DOCG에 속하며 다음의 생산 규정을 따라야 한다.
 
 
□ 생산 지역: 몬탈치노 지구
□ 허용 품종: 산조베제 (몬탈치노에서는'브루넬로’로 불림)
□ 허용 수확량: 헥타르당 최대 8톤(또는 52 헥토리터)
□ 숙성 기간: 최소 2년 오크 숙성 최소 4개월 병 숙성(리제르바의 경우 6개월간 병 숙성)
□ 출시 일자: 수확연도로부터 5년째 되는 해의 1월 1일 이후 (리제르바의 경우 6년째 되는 해의 1월 1일 이후)
□ 허용 용기: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 병
 
 
위 규정에 따르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이 시장에 나오려면 적어도 4년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쳐야 한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외에도 와인생산자들은 동일한 품종으로 만든 좀더 가벼운 스타일의 로쏘 디 몬탈치노 Rosso di Montalcino를 매년 출시하는데, 오래 숙성시킬 필요 없이 바로 출시할 수 있으므로 와이너리의 현금흐름에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숙성되기를 기다리며 조바심 내는 소비자를 달래는 역할도 훌륭히 해낸다. 최근 시장에는 2014 빈티지의 로쏘 디 몬탈치노가 활발히 유통되고 있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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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sino 와이너리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로쏘 디 몬탈치노
 
 
 
※ 참고자료_www.consorziobrunellodimontalcino.it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 (2010, 조 바스티아니치)
[와인 테이스팅 노트 따라하기] (2010, 뱅상 가스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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