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르도와 부르고뉴에 이어 론 밸리는 프랑스에서 유서 깊은 와인 생산지이다. 코트 로티와 에르미타주, 콩드리유 같은 고급 와인 산지가 자리하고 있는 북부 론의 경우 대규모의 네고시앙뿐만 아니라 생산자 조합을 비롯한 소규모 생산자들까지 흥미롭고 개성 넘치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기자는 최근 수입사 비노쿠스 주최로 진행된 이브 걍글로프(Yves Gangloff) 와인 디너에 참가하여 컬트적인 매력을 가진 북부 론의 와인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약 30년 전 알자스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이브 걍글로프는 화가인 형을 만나러 콩드리유에 왔다가 아내 마틸드를 만나 결혼하여 와인메이커라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멘 들라스(Domaine Delas)에서 와인 양조 경력을 쌓은 그는 1982년에 운 좋게도 콩드리유와 코트 로티에 적은 면적의 포도밭을 사들였고, 수확한 포도를 이 기갈(E. Guigal) 같은 인근 네고시앙에 팔았다. 그러던 1992년, 이브는 자신의 이름을 건 최초의 와인을 출시했고 이 와인은 출시하자마자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브 걍글로프의 연간 와인생산량은 15,000병에 그치며 25% 정도는 수출하고 나머지는 프랑스 내 고급 레스토랑과 샵에서 판매된다. 유명세에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적기 때문에 와인애호가라면 눈에 보이는 즉시 사야 할 정도로 희귀하다. 이처럼 이브는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시장에서도 그의 와인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최고의 와인”이란 극찬을 받아 왔다.
한편, 이브 걍글로프 와인은 화가인 형 피에르의 누드화로 만든 레이블로도 항상 화제에 오른다(위 사진). 어떤 레이블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수입금지 처분까지 받았지만 흥미롭게도 와인이 가진 독창성과 개성을 배가시키고 와인의 대담한 맛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제부터 살펴볼 이브 걍글로프의 네 가지 와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 꽁드리유 2013 (Condrieu 2013)
품종: 비오니에 100%
포도나무 수령: 20~25년
생산량: 5,500병
새 오크통과 2년 정도 사용한 오크통에서 와인을 10개월 가량 숙성시킨 후 2차 발효를 거친다. 가벼운 여과작업을 거친 이 화이트와인은 맑고 투명한 색을 띠며, 서양배, 살구, 복숭아, 은은한 꽃 향기가 난다. 입 안에서 단단한 구조감을 느낄 수 있고 과실의 풍미가 신선하게 잘 살아있다. 비오니에 품종 특유의 기름진 느낌은 덜하면서 부드러운 감촉으로 남을 뿐이다. 여운에서 쌉싸래한 미네랄의 맛이 나서 깔끔하다. 10년 이상 거뜬히 보관 가능할 것 같은 이 와인은 순수하고 우아하면서도 매우 대담해서 사랑을 탐닉하는 듯한 연인을 그린 레이블 그림과도 묘하게 어우러진다.

■ 생 조셉 2012 (Saint Joseph 2012)
품종: 시라 100%
포도나무 수령: 15년
생산량: 1,500병
2007년에 매입한 생 조셉 마을의 포도밭은 이브의 다른 포도밭과 마찬가지로 유기농법으로 관리된다. 전통적인 양조방식에 따라 포도를 잔가지와 함께 발효시킨다. 와인은 새 오크통과 4~5년 사용한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치며 정제 및 여과과정 없이 병입된다. 북부 론의 위대한 빈티지로 평가 받는 2012 빈티지 생 조셉은 장기보관도 문제없지만 지금 마시기에도 좋다. 라즈베리, 까시스, 제비꽃 향이 풍부하고 숙성과 함께 드러나는 독특한 부케도 매력적이다. 단단하면서도 잘 다듬어진 타닌, 신선한 산미, 길게 지속되는 여운과 함께 전체적으로 관능적이며 세련된 느낌이다.

■ 코트 로티 라 바르바린 2012 (Cote Rotie La Barbarine 2012)
품종: 시라 97%, 비오니에 3%
포도나무 수령: 평균 20년
생산량: 9,000병
앞서 시음한 생 조셉과 달리 잔가지를 제거한 후 포도를 발효시키며 22개월간 숙성시킨 후 정제와 여과를 거치지 않고 병입한다. 코트 로티 중에서 가장 향기롭고 제 모습을 강하게 드러내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제비꽃, 검은 후추, 장미, 라즈베리, 검은 과실의 향이 힘차게 퍼진다. 은은한 동물성 향도 함께 느껴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부드러운 타닌, 생생한 산미, 음지에서 자란 과실 등의 느낌이 어우러지는 매우 섬세하고 우아하며 복합적인 와인이다.

■ 코트 로티 라 세렌 누아 2012 (Cote Rotie La Sereine Noir 2012)
품종: 시라 100%
포도나무 수령: 평균 60년
생산량: 4,400병
편암질 토양의 로시에-코트 브룬(Rozier-Cote Brune)과 화강암질 토양의 몰라드-코트 블론드(Mollard-Cote Blonde)에서 재배한 포도를 섞어서 만든다. 포도는 잔가지를 절반만 제거한 후 스테인레스통에서 발효시키고 23개월 간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이 높은 숙성 과정을 거치며 정제 및 여과 과정 없이 병입된다.. 와인은 “최고의 코트 로티”라는 평에 걸맞게 복합적이고 집중도가 훌륭하며, 흰 후추, 볶은 커피, 구운 향, 미네랄의 향이 풍부하고 동물향도 함께 난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풀 바디 스타일로 깊이감과 매끄러운 타닌, 신선한 산미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여운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와인이 가진 독창성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하는 와인으로 숙성 잠재력은 약 15년 정도이다.
수입 _ 비노쿠스 (02 454 0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