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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르(Loire)는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지방인 동시에 프랑스에서 가장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루아르 전체 포도밭 면적은 약 7만 헥타르로 보르도 지방 포도밭 면적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연평균 약 4백만 헥토리터의 와인을 생산한다.
 
루아르는 새로운 변화와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와인산지다. 1980년대 루아르 와인 역사상 처음으로 화이트 와인을 작은 오크통에서 발효, 숙성시켰다. 그 결과 토스트 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이 루아르 와인의 전통적인 스타일과 대조를 이루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의 선구자인 니콜라 졸리(Nicolas Joly)가 1980년대에 이 지역 최초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실행했다. 그는 많은 와인 생산자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 연장선상에서 루아르의 자연와인(Vin Natural 또는 Natural Wine)을 조우하게 된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 와인 산업의 이슈가 되어온 것이 바로 자연와인이다. 미국의 자연와인 전문 수입사, 지니앤프랑소와 셀렉션(Jenny&Francois Selection)은 알 듯 말 듯한 자연와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독립적인 생산자가 유기농 혹은 바이오다이나믹 방식으로 재배한 포도를 가지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양조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이다.”
 
다시 말하면 제초제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포도를 손으로 수확한 후, 배양 효모나각종 첨가제(설탕, 가산제, 인공색소, 오크 에센스 등이 대표적)의 도움 없이 그리고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양조한 와인이다. 이런 와인은 정제와 여과를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고 포도나 와인의 변질을 막는 이산화황 또한 최소로 사용한다. 전세계적으로 자연 와인 생산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소비량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내에도 하나 둘 자연 와인이 소개되어 접할 수 있었던 기자는 자연 와인 생산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루아르로 향했다.
 
 
끌로드 꾸르뜨와Claude Court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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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프로방스에서 와인을 만들었던 끌로드 꾸르뜨와(Claude Courtois)는 1991년에 루아르의 솔로뉴에 정착했다. 그의 두 아들 줄리앙과 에티엔 또한 대를 이어 와인을 생산하는데, 큰 아들 줄리앙은 멀지 않은 곳에 5헥타르의 도멘을 운영하고 있다. 끌로드 꾸르뜨와가 소유한 13헥타르의 대지 중 포도밭은 6헥타르를 차지하는데, “내 포도밭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꾸르뜨와의 말 그대로, 포도밭은 과실수와 숲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원래 이 땅은 자갈밭으로 풀을 볼 수 없는 황야나 다름없었다. 꾸르뜨와는 포도밭을 에워싸듯이 주변에 나무를 심고 소, 닭, 돼지 같은 가축을 방목하면서 자연을 회복시켰고 지금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포도밭에는 가메, 카베르네 프랑, 꼬(Cot, 말벡과 동일한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소비뇽 블랑을 비롯해 지금은 보기 힘든 옛 품종인 가스꽁(Gascon), 므니 피노(Menu Pineau) 등을 포함해 총 40개의 서로 다른 품종이 자란다.
 
꾸르뜨와는 이렇게 여러 가지 품종을 재배하면서 테루아와 포도 품종과의 관계를 유심히 관찰해 왔다. 해마다 새로운 품종을 심는 그는 AOC 규정을 반대하면서까지 지정된 품종 외의 품종을 재배하여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테루아와 가장 잘 맞는 품종을 찾기 위해 그만이 할 수 있는 실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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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꾸르뜨와가 여러 가지 청포도를 섞어 만든 하신느 블랑(Racines Blanc) 와인의 2012, 2013년 빈티지를 비교 시음할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왔다는 2013년 빈티지는 과일향보다 미네랄 풍미가 좀더 강했고, 신선하고 상쾌한 과일의 맛이 잘 드러나 지금 당장 마시기에도 좋을 듯한 2012년 빈티지는 앞으로 10개월을 더 숙성시킨다고 했다. 뒤이어 2012, 2013년 빈티지의 하신느 루즈(Racines Rouge)도 시음했는데, 전자는 깊고 부드러운 느낌을, 후자는 신선한 딸기 향이 기분 좋게 드러나 가메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연상시켰고 날 것 같은 산도와 붉은 과실의 향이 깊게 인상 깊었다.
 
 
디디에 샤파르동Didier Chaffa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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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르의 앙주(Anjou)에 자리한 디디에 샤파르동의 소박한 셀러에 들어서자 와인 향보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먼저 기자를 맞아주었다. 부르고뉴 본에서 양조 경력을 쌓은 후 1996년에 루아르에 정착한 샤파르동은 3헥타르의 포도밭에서 루아르의 대표 품종인 슈냉 블랑과 카베르네 프랑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연 와인은 어떤 와인이냐는 물음에 샤파르동은 “자연 와인은 살아있는 와인”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늘 변화하는 우리 인생처럼 자연 와인도 변화무쌍하고 대범해서, 빈티지, 시음 시기 또는 병에 따라서 맛이 다를 수 있다고 덧붙인다. “자연 와인은 미라 같이 영원 불변한 게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또 어떻게 변화할지 예상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력 있다”는 그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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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시음한 와인은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 랭클레들 루즈(L’Incredule Rouge) 2012과 2013년 빈티지였다. 먼저 송이째 발효시킨 후 일곱 달 동안 숙성시켜 병입했다는 2012년 빈티지는 산미가 좋고 야성적이며, 동물적인 향과 검은 과일의 향이 짙게 어우러졌다. 생소한 향이 많이 난다고 지적하자, 그는 포도나무가 깊게 뿌리내린 흙에서 비롯된 풍미일 거라고 답했다. 2013년 빈티지의 경우 동물 향이나 미네랄 풍미가 덜하지만 생 땅콩 껍질, 버섯, 붉은 과일의 향이 겹겹이 드러났고, 앞으로 숙성되면서 어떻게 진화할 지 기대되었다.
 
시음을 마치고 셀러를 나서자 유리로 만든 드미존(dmijhon)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병 안에 담긴 와인은 온도 변화를 겪고 햇빛을 받으며 숙성되고 있었는데, 이는 랑그독 지방에서 뱅 두 나튀렐(Vin doux naturel)을 만들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다. 기자가 요청하자 샤파르동은 병 안에 든 2013년 빈티지 슈냉 블랑을 시음하게 해주었는데, 와인은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옅은 노란색을 띠고 탄산의 느낌이 살짝 났으며 암염 맛이 많이 났다. 포도를 수확해서 병에 집어넣은 후 한번도 옮기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어떤 와인이 탄생하게 될지 무척 궁금해졌다.
 
 
■장 프랑소와 슈네Jean-Francois Ch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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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소와 슈네의 양조장은 루아르의 볼리외 쉬르 레이용(Beaulieu sur Layon)에 위치해 있다. 금발의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젊은 와인메이커는 2005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3.5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카베르네 프랑, 슈냉 블랑, 그롤로 누아(Grolleau Noir)를 재배하고 있다. 포도밭은 언덕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남서쪽을 향하고 있어 일조량이 풍부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유기농 방식으로 경작되는 그의 포도밭은 풀 한 포기 없도록 땅을 갈아 엎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슈네는 땅을 일구는 일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말하며, 일 년에 네 번 정도 땅을 갈아준다고 덧붙였다. 굳었던 땅이 뒤집히면서 흙이 부드러워지고 공기가 통하면서 포도나무가 자라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물이 부족한 여름에는 수분이 포도나무에만 공급될 수 있도록 토양 표면의 흙을 살살 쓸어주어 잡초를 제거하고 예방한다. 제초제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 와인 생산자들은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최선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시음한 와인은 슈냉 블랑 2010, 2011년 빈티지로, 전자는 견과류의 향과 미네랄 풍미가 강하게 느껴졌고, 후자는 견과류 풍미와 함께 부드럽고 풍성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는 두 와인 모두에서 견과류의 향이 강한 이유가,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가 생기더라도 상태가 좋다면 양조에 사용하며 36개월 동안 효모 앙금과 함께 숙성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이라 할 수 있다.
 
 
■도멘 드 샤블로네뜨Domaine de Sablonnet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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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과 조엘 메나르(Christine & Joel Menard) 부부는 20년이 넘게 루아르의 꼬또 뒤 레이용(Coteaux du Layon AOC)에서 와인을 만들어 왔다. 13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까베르네 프랑, 그롤로 누아, 가메, 슈냉 블랑을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재배한다. 방문 당시, 두 사람의 아들이자 뒤를 이어 와인을 만들게 될 젊은 농부 제레미 메나르를 만날 수 있었고, 그로부터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레미는 포도밭 주변의 야생꽃이나 풀을 뽑지 않고 내버려 둔다.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자라온 풀과 꽃을 보면서 땅의 성질과 주위 환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풀이 나는지, 어떤 특징을 가진 것인지를 연구하다 보면 주변 환경을 알게 되고 포도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매년 주변 식물의 변화를 자료로 축적하다 보면 빈티지에 대한 예측과 준비가 가능하다.
 
그가 생각하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의 기본은 무엇보다도 주변 자연 환경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다이나믹 재료를 만들 때도 포도밭에서 난 꽃이나 열매를 활용해서 만든다. 제레미는 수시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과 그 철학에 관해 공부하며 포도밭의 생태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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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시음 공간이 마련된 저장고에는 레이블이 예쁜 르 프티 블랑(Le P’tit Blanc) 2013년 빈티지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슈냉 블랑으로 만들어진 이 와인은 꽃과 레몬의 향이 전하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친구 먼저’란 뜻의 레 꼬팽 다보르(Les Copains dabord) 2013년 빈티지도 시음할 수 있었는데, 그롤로 누아로 만든 이 레드 와인의 첫 느낌은 가볍고 과즙이 풍부하며 신선해서 샐러드나 샌드위치처럼 간편한 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까베르네 프랑으로 만든 르 쁘띠 디아블(Le Petit diable) 2013년 빈티지는 붉은 과일의 향이 풍부하고 타닌이 부드러우며 산미가 높아 음식과 함께 먹기에 좋을 것 같았다.
 
 
자연 와인은 와인세계에 등장한 또 하나의 경향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을 둘러싼 자연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가는 과정의 결과물일 것이다. 기자가 만난 루아르의 자연 와인 생산자들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고 현대적인 시스템을 거부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자연의 법칙대로 만든 와인은 자연처럼 독창적이며 개성 있으며 때로는 낯설기도 했다.
 
자연 와인은 빈티지에 따라 와인의 성격이 달라지고 생산량에 있어서도 매년 차이가 나며, 보관하거나 운반할 때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와인이 갖춘 빼어난 미덕이 있으니, 바로 테루아를 온전히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연 와인이야 말로,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게 만드는 테루아를 찾아 떠나는데 유용한 길잡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듯 자연 와인이 테루아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기자의 믿음은, 이들 자연 와인 생산자들의 솔직함과 자유로운 정신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디디에 샤파르동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한다.
 
“와인에 대한 지식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와인은 자연이 만들어주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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