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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이고 야심 차며 독창적인 안젤로 가야만큼 피에몬테의 잠재력을 제대로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는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부분 바꾸어놓았다."
- <더 와인바이블>(캐런 맥닐, 2010)
 
 
얼마 전 이탈리아 와인업계의 거물 안젤로 가야가 방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수입사 신동와인 측은 기자가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2011년 이맘때쯤 그의 열변에 매료되어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안젤로 가야, 와인잔 밖의 가야를 말하다”에 옮겨 적었으니, 그로부터 3년만의 만남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한국 방문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반가움과 함께 서운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이번이 정말 마지막 방문이라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의미가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통찰을 엿들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앞뒤로 빡빡하게 짜인 그의 일정 탓에 질문과 대답이 속사포처럼 오고 갔다. 그 와중에도 그의 메시지는 정확하고 명확했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 힘을 발휘했다.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은 가야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본인이 이룬 가장 값진 성취는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그가 꼽은 가장 큰 성취는 와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이 가족 사업에 뛰어들어 그의 뒤를 잇는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이로써 가족 경영 체제를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이야 말로 자신의 가장 값진 성취라고 답했다. 장인 가문으로써의 가야를 지속시키는 것이 그에게 큰 숙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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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의 뒤를 이어 해외를 돌아다니며 가야를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는 가야 가야(Gaia Gaja, 안젤로 가야의 장녀, 위 사진 왼쪽)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것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가야의 와인 중 약 90%가 외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의 파트너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이자 책임 중 하나다. 또한 이제 막 와인을 접하기 시작한 입문자 또는 젊은 세대의 와인소비자들과의 소통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 때에, 젊은 나이의 가야가 이들과의 소통을 더욱 유연하고 원활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안젤로 가야의 대답에는 안도감과 그녀에 대한 확신이 동시에 묻어났다.
 
가야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세대교체는 이탈리아 와인 산업 전반의 변화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안젤로 가야는 이탈리아 와인 산업 내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기운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그 성장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는데, 중요한 성장 동력 중 하나로'장인 와인생산자’를 꼽았다: 그렇다면, 가야를 비롯한 장인 와인생산자들은 어떤 식으로 와인산업 발전에 기여해 왔는가?
 
가야가 말하는 이탈리아 와인 산업의 성장잠재력은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이탈리아 내에서 재배하는 토착 품종의 수만 해도 1천 개가 넘으며, 와인생산자의 수는 약 3만5천, 그 중 독립적인 장인 와인생산자는 무려 2만5천이다. 종종 적은 생산량 때문에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지기 힘들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이탈리아 와인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개혁을 이끌어온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들 장인 와인생산자들이다. “장인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가야의 말처럼, 가야를 비롯한 장인 와인생산자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와인보다는 ‘남들과 다른’ 또는 ‘특별한’ 와인을 만들고자 노력해왔고 이것이 이탈리아 와인에 다양성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장인 정신과 다양성의 연관성에 대해 설파하는 가야의 열띤 목소리는, 과거 몰도바와 조지아 와인의 품질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이 독창성과 혁신을 가로막은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 체제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던 3년 전의 그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활력을 지닌 그를 바라보며, 문득 그의 은퇴 여부 또는 마지막 방한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번이 마지막 방한이 될 거라고들 하던데, 은퇴한다는 의미인가?
 
가야는 요즘 포도밭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이 늘었고 자연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자녀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기꺼이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약간 뒤로 물러섰을 뿐, 내가 여행을 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당신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대답을 들을 때, 기자의 머릿속에는 어린 사자의 사냥을 지켜보는 어미 사자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이탈리아 와인의 메신저 역할을 당장 그만두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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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일정이 몇 분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모든 질문에 세세히 답변하는 그의 태도에 자신감을 얻어 마지막이 될 질문을 던졌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 와인 시장에서 와인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맡은 우리(와인상인, 와인교육가, 와인매체 등)가 어떻게 하면 이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에 답변하기는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오늘날 와인산업 종사자들이 당면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의 지혜를 빌리고 싶었다.
 
그는 의외의 대답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내 고장에서 만든 와인을 마시는 것만큼 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 한국의 와인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라는 것이 요지였다. 와인 양조가 가능한 산지를 발견하고 적합한 품종을 찾으려는 실험을 계속하다 보면,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가 차츰 늘어날 것이고 마침내 한국의 장인 와인생산자도 나타날 거라는 얘기였다. 가야는 다음과 같은 따끔한 조언도 덧붙였다.
 
“와인애호가나 수집가가 전체 와인 시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따라서 미디어나 교육가들은 그 이외의 집단이 가진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고, 소믈리에나 와인상인은 그들이 제대로 된 와인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와인에는 두 가지 종류, 즉 포도가 자란 곳의 특징을 말해주는 (여권과도 같은) '장인의 와인’과 다양한 가격대로 다양한 맛을 제공하는 '보급형 와인’이 있는데,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을 소비자들에게 명확히 제시하고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즉, 와인에 어떻게 접근하고 감상해야 할지 그 맥락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1940년생으로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든 안젤로 가야,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전염성이 강해 주변을 감동시키고 전율하게 만든다. 본문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리더십의 중요한 부분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고무시키는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와인 산업의 리더로써 그리고 장인 와인 가문으로써, 가야는 이러한 리더십의 표본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은퇴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가 내년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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