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양의 와인을 생산하는 포르투갈은 구대륙의 전통성은 물론 신대륙다운 참신함을 갖춘 와인산지로 주목 받고 있다. 비니 포르투갈(Vini Portugal)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포르투갈의 와인 생산량은 약 6백만 헥토리터이며 그 중 절반이 수출된다. 한편, 포르투갈 하면 대부분 포트 와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고정관념일 뿐이다. 실제로 수출용 와인에서 테이블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고, 생산량으로 봐도 디저트 와인의 비율은 총 생산량의 20% 안팎이다.
이와 함께 2006년 이후 포르투갈 와인의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0년 상반기 영국으로의 와인 수출액은 전년 대비 금액 면에서 20%나 상승했고, 2012년 미국으로의 테이블 와인 수출 역시 15% 상승했다. 동 기간 캐나다로의 수출 또한 14%나 늘었다. ‘와인 오브 포르투갈’의 적극적인 홍보와 디켄터, 와인 스펙테이터 같은 미디어의 높은 평가가 더해져 포르투갈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포르투갈의 드라이한 레드 와인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와인” 혹은 “레드 와인의 새로운 강자”라며 호평 받기 시작했는데, 그 진원지는 바로 도우루(Douro)다.

소위 ‘도우루 보이즈(Douro Boys)’라 불리는, 품질 높은 드라이 와인을 생산하며 와인 산지 도우루의 명성을 높인 다섯 명의 정상급 와인 생산자가 있다. 낀따 도 크라스토(Quinta do Crasto)도 그 중 하나인데, 이곳의 미구엘 로게트(Miguel Roquette) 마케팅 이사가 최근 방한하여 포르투갈의 드라이 와인 생산 역사와 낀따 도 크라스토 와이너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도우루 강 유역에 요새같이 자리잡고 있는 와이너리와 포도밭
1615년에 설립된 낀따 도 크라스토는 도우루 지역의 최초 와인생산자 중 하나다. 와이너리는 도우루 강 유역의 오른편에 위치하며 지난 120년 동안 현재의 로게트 가문이 소유해 왔다.'낀따’는'에스테이트(포도원)’를,'크라스토’는 라틴어로'카스트룸(castrum, 로마 시대의 요새)’을 뜻하는데 사방이 탁 트인 언덕에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자리잡고 있어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로게트 가문은 도우루에서 230헥타르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모든 와인을 직접 재배한 포도로 만든다. 한때 포트 와인만 생산하던 낀따 도 크라스토는 1994년 첫 빈티지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드라이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총 생산량에서 드라이 와인이 90%, 포트 와인이 10%를 차지한다.
■ 척박한 토양이 만들어 낸 도우루의 테루아
도우루 지역은 토양, 기후, 지리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로게트 이사의 말에 따르면, 산악지대에 포도밭을 조성했기 때문에 경사가 심해서 기계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가축의 힘을 빌리거나 직접 손으로 경작해야 한다. 또한, 이곳의 토양은 얇은 조각들이 겹겹이 쌓인 메마른 편암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물을 찾아 깊게 뿌리내린다. 더욱이 한여름 그늘에서의 온도가 45℃나 될 만큼 덥고 건조하므로 관개를 일부 허용하고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쓴다.


▲테라스식 포도밭에 비해 경사가 훨씬 완만한 포도밭.
■의미 깊은 도우루의 올드 바인
로게트 이사는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라는 100년 수령의 오래된 포도나무가 자라는 포도밭을 예로 들면서 도우루의 포도 재배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초로 포도밭을 조성하던 당시 사람들은 품종을 구분하지 않고 심었는데, 이렇게 뒤섞여 자란 다양한 품종을 혼합하여 포트 와인을 만들었다. 이때 심어져 지금 수령이 110~150년에 달하는 포도나무는 그 품종을 확인하기가 힘들다(특정 품종 대신 “올드 바인(old vine)”이라고만 표기된 포트와인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낀따 도 크라스토의 오래된 포도밭에도 120종이나 되는 토착품종이 섞여서 자라고 있었는데, 지난 6년 간 DNA 조사를 통해 46종의 적포도 품종과 4종의 청포도 품종, 그리고 2종의 연한 적포도 품종을 밝혀냈다. 한편, 이러한 올드 바인은 포도 재배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생산성과 경제성을 따져 평가하지 않는다.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온도조절 장치는 필수다.

▲연중 85%로 습도를 조절하는 와인저장고
낀따 도 크라스토의 와인 스타일을 묘사하는 키워드는 바로 신선함과 항상성이다. 더운 기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산도와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며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와인을 만들려는 양조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 낀따 도 크라스토 수페리오르(Quinta do Crasto Superior) 2010
품종: 뚜리가 나시오날, 띤따 로리즈, 뚜리가 푸랑카, 소사옹, 오랜 수령의 토착 품종
신선하고 과일 풍미가 잘 드러난다. 부드러운 타닌과 향신료의 풍미를 지니며 마시기에 편안하다.구운 닭요리, 파스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아시아 음식, 한식 등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 낀따 도 크라스토 레세르바 올드 바인(Quinta do Crasto Reserva Old Vines) 2010
품종: 수령이 오래된 30종의 토착 품종
A~F 사이의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A등급을 받은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산딸기와 각종 향신료의 향이 감각을 집중시킨다. 알코올이 드러나지 않으며 우아한 여운을 지닌다. 오크 풍미와 과일 풍미가 조화로우며 타닌은 매우 부드럽다.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 4차례나 선정되었고, 2005년 빈티지는 TOP 3에 오르기도 했다.
■ 낀따 도 크라스토 띤따 로리즈(Quinta do Crasto Tinta Roriz) 2010
품종: 100년 수령의 띤따 로리즈
여러 품종이 섞여 자라는 포르투갈의 포도밭에서 단일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이 와인은 더욱 특별하다. 첫 빈티지는 1997년으로,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하기 때문에 20년 동안 총 5개 빈티지만 생산했다. 과일과 꽃 향에 미네랄 풍미가 더해져 복합적이고 풍부하다. 입 안에서는 강렬하고 깊이 있으며 균형이 잘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여운이 남아 더욱 인상적이다. 생산량이 불과 5,000병 밖에 되지 않아 컬트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포르투갈이 “유럽 최고의 밸류 와인 산지”라는 위상을 지니게 된 것은, 도우루를 중심으로 포르투갈의 와인생산자들이 드라이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는 포트 와인 판매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으로, 로게트 이사는 이를 두고 “지금 포르투갈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혁명의 진원지는 바로 도우루이며, 10-20년 후면 도우루 자체의 독자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렇듯 혁명에 가까운 흐름 속에서, 현대화를 지향하면서도 전통을 잃지 않으려는 낀따 도 크라스토의 철학은 빛을 발한다. 낀따 도 크라스토 같은 실력파 와인생산자들의 행적과 더불어, 앞으로 포르투갈이 세계 와인 시장에서 보여줄 활약상이 기대된다.
문의 _ 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