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스위스 와인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와인 책을 볼 때도 생각 없이 페이지만 넘겼던 스위스 와인은, 비록 낯설었지만 만만히 볼 수 없는 품질을 갖추고 있었다. 알고 보면 즐겨찾기에 꼭 저장해놓을 법한 스위스 와인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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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계곡의 영향 받는 테루아
 
스위스의 와인 생산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당시 조성된 포도밭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 스위스 포도밭 총 면적은 약 1만6천 헥타르, 총 생산량은 약 백십만 헥토리터, 2010년 기준으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생산 비율은 6:4 정도로 레드 와인이 조금 앞선다. 스위스에서 재배하는 포도 품종은 무려 90가지나 된다. 대표적인 청포도 품종은 샤슬라(Chassela), 뮬러 투르가우(Muller-Thurgau), 실바너(Sylvaner)이며, 적포도 품종은 피노 누아, 가메, 메를로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품종들 외에 기타 품종들이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니, 재배 품종의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스위스의 와인산지들은 위도 45~47˚에 위치하여 와인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계곡과 호수 주변에는 미세기후가 발달했고 호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하여 포도가 완전히 익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연간 평균 일조시간은 2,000 시간, 연간 강수량은 500-1800m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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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주요 와인산지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인접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언어, 문화, 생활양식 그리고 식문화까지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와인 생산과 그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의 주요 와인산지는 총 6개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과 이웃해 있다: 프랑스에 접해 있는 보(Vaud), 발레(Valais), 제네바(Geneva)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티치노(Ticino), 뇌샤텔(Neuchatel)을 비롯한 3개 호수 지역, 마지막으로 동부의 스위스 독일지역(Swiss German Part)이다.
 
■ 보(Vaud)는 서쪽으로 프랑스 쥐라(Jura), 동쪽으로 알프스에 인접해 있다. 지리적으로 제네바 호수와 레만 호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중세시대부터 이어진 와인 생산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샤슬라 품종으로 만드는 신선하고 과일 풍미가 가득한 화이트 와인과 피노 누아와 가메로 만드는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특히 이곳에 속한 라 코트(La cote) 지역은 꽃 향기를 듬뿍 지닌 와인을 생산한다. 스위스의 많은 네고시앙들이 일찍부터 활발한 와인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발레(Valais)는 프랑스 론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스위스 와인산지 중에서 가장 건조하다. 또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포도의 숙성에 큰 도움을 준다. 일조시간도 평균보다 높은 2010시간에 달하며 다양한 토양 덕분에 여러 종류의 독특한 와인을 생산한다. 요하네스베르크라 불리는 샤슬라, 팡당(Fendant)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 그리고 피노 누아 혹은 가메와 블렌딩해서 만드는 미디엄 바디의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그리고 요하네스베르크, 마르산느, 피노 그리로 달콤한 늦수확 와인까지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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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Geneva)는 제네바 호수의 서쪽에 자리잡은 와인산지로, 보와 발레의 포도원들보다 경사가완만하며 온화한 햇살과 호수 덕분에 봄 서리의 피해가 적다. 샤슬라와 리슬링-실바너가 유명하지만 샤르도네, 알리고테, 소비뇽 블랑, 세미용, 커너(Kerner),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까지 새로운 품종들이 자리잡았다. 국제 품종들의 성공적인 안착과 현대적인 와인 양조 기술의 발 빠른 도입으로 앞서가는 지역이다. 품질 좋은 가메 품종으로 뛰어난 구조를 갖춘 레드 와인을 만들지만 피노 누아의 위치가 높은 편이다.
 
■ 뇌샤텔(Neuchatel)과 3개 호수 지역은 뇌샤텔 호수의 근처 남쪽을 향한 경사지로, 고대 석회질 토양을 간직한 지역이다. 샤슬라와 피노 누아가 중요한 품종이고 피노 누아로 만든 과일 풍미 가득한 로제와 스파클링 와인, 국제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샤르도네 와인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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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독일지역(Swiss German Part)은 17개의 와인산지로 구성된다. 다른 지역에 비해 레드 와인이 우세한데, 특히 블라우부르군더(Blauburgunder, 또는 피노 누아) 와인은 놀라울 만큼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한다. 청포도 뮐러-트르가우(또는 리슬링-실바너)가 전체 포도생산량의 25%를 차지하고 게브르츠트라미너와 피노 그리도 이 지역의 명물이다.
 
■ 티치노(Ticino)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알프스 남쪽에 위치한다. 지중해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온화하며 포도 숙성에 필요한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하는 곳이다. 눈에 띄는 것은 메를로를 비중 있게 재배한다는 것이다. 티치노의 메를로는 대개 가벼운 스타일로 만들어지만, 세심하게 양조되고 새 오크통을 사용하여 무게감을 더한 와인도 만들어진다. 메를로 비앙코(Merlot Bianco)는 우아한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으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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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보 지역의 라 코트 와인 생산자들 85명이 모여 설립한 와인생산자연합 '우바뱅-카브 드 라 코트(Uvavins-Cave De La Cote)’는, 현재 400명의 생산자들이 참여하고 총 415헥타르 포도밭에서 200가지 이상의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청포도는 샤슬라, 샤르도네, 피노 그리, 피노 블랑, 게브르츠트라미너, 리슬링-실바너를, 적포도는 가메, 피노 누아, 가마렛(Gamaret), 가라누아(Garanoir),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외 총 29가지의 포도 품종을 재배한다.
 
모르쥬(Morges)와 니옹(Nyon)에 와인 양조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고품질의 우아한 와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바뱅 와인은 스위스 정부로부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로잔 세계 체조경기, 세계 승마대회, 스위스의 유명 축제인 팔레오 축제, 세계적인 뮤직 아티스트와 팝 가수들의 축제인 '메트로 팝(Metro pop)' 축제의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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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수입사 스위스 트레디션에서 선보이는 우바뱅의 4가지 와인들을 시음할 수 있었다. 각 와인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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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블르 뉘 무스 드 로망디, 뷔플란 샤토 라코트, 가르누아 라코트, 메를로 가마레
 
블르 뉘 무스 드 로망디 VdP(Bleu Nuit Mousseux do Romandie)는 놀랍도록 풍부한 기포를 지닌다. 오랫동안 계속 솟아나는 미세한 기포는 보기에도 섬세하며 고급스럽고 입 안에서도 풍성함을 느끼게 해준다. 사과 향이 풋풋하면서도 싱그럽고 꽃 향기가 아주 매력적이다. 가메, 무스카토, 리슬링-실바너로 만들어 살짝 단 맛이 느껴지지만 산미와 균형을 잘 이뤄 깔끔하고 상쾌하게 마무리된다. 함께 시음한 참가자들로부터 “마실수록 맛있다”, “여성들이 특히 좋아할 것 같다” 또는 “브런치에 어울릴 것 같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이 와인은 비넥스포(세계적인 와인박람회)에서 열린 올림피아드 뒤 뱅에서 트로피를 수상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뷔플란 샤토 라코트 AOC 2012(Vufflens-le-Chateau La Cote)는 스위스의 대표 품종인 샤슬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숙성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황금 색상이 눈길을 끈다. 오스트리아의 화이트 와인과 비슷한 느낌도 있으며, 열대 과일과 바닐라 향이 은은하고 미네랄 풍미가 짙다. 입 안에서 매끄러운 질감과 청량감을 선사한다. 분명한 풍미를 지니고 있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가르누아 라코트 AOC 2011(Garanoir La Cote 2011)는 제네바 호수 주변 포도밭에서 재배한 가르누아 품종의 포도로 만들었다. 가르누아는 가메(Gamay)와 라이헨슈타이너(Reichensteiner)를 교배한 품종이다. 프랑스 론 지역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제비꽃 향이 나며 스파이시한 향신료의 향이 이어진다. 타닌이 강하지 않고 매끄러운 질감을 지녔으며, 부담스럽지 않은 중간 정도의 무게감을 지닌다. 개운한 입맛 덕분에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메를로 가마레 보 AOC 2011(Merlot Gamaret Vaud 2011)는 레만호 주변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메를로와 가마레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이다(가마레는 가르누아와 자매 격인 품종이다). 포도, 블랙베리 향이 나며 산도가 꽤 강하다. 타닌은 강하지 않지만, 균형이나 조화가 살짝 부족하다.
 
요약하면, 스위스의 화이트 와인은 맑고 깨끗한 호수를 연상시키듯 상쾌함을 전하며, 레드 와인은 중간 정도의 무게감을 지녔고 절제되고 조화로운 모습이다.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목록들-알프스, 초콜릿, 치즈, 시계-에 이제 스위스의 와인을 추가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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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_스위스 트레디션 (010.5331.6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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