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샤토 마고는 2009년 빈티지 발타자르(Balthazar, 12리터들이 와인 병) 여섯 병을 한 병당 195,000 달러(한화로 약 2억 원)에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이 와인을 출시하는 행사에서 6병 중 1병은 그 자리에서 팔렸으며, 2병은 두바이 국제공항의 와인 숍에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 보르도의 2009년은 전세계 와인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극찬할 만큼 작황이 뛰어났던 해이다. 한마디로 2009년은 큰 어려움 없이 잘 익고 건강한 포도를 수확할 수 있었던 해이고, 그 결과는 유연하고 농익은 와인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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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한한 샤토 마고의 양조자 폴 퐁탈리에(Paul PONTALLIER)와 함께 시음한 와인 중 2009년 빈티지 '파비용 루즈(Pavillon Rouge)’ 역시, 이러한 빈티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파비용 루즈는 샤토 마고가 생산하는 세컨드 와인으로, 그랑 뱅(Grand Vin)인 샤토 마고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령이 어린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한편 파비용 루즈의 농익은 풍미와 짙은 색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입 안을 적시는 맑고 미세한 타닌은 거의 투명하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샤토 마고의 와인에는 이처럼 섬세함과 강렬함이 공존한다”는 퐁탈리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재 아시아 시장에서 샤토 마고의 브랜드 홍보를 맡고 있으며, 아버지와 함께 방한한 티보 퐁탈리에(Thibault Pontallier)는 “보르도의 특급 샤토들이 만드는 세컨드 와인 중 샤토 마고의 파비용 루즈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데 한국의 와인애호가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0-30년 장기 숙성이 가능한 이 와인의 국내 소비자 가격은 대략 50-55만 원 사이다.

한편, 샤토 마고에서 오래 전부터 생산해 왔던 유일한 화이트 와인인 '파비용 블랑(Pavillon Blanc)’은 이름 때문에 샤토 마고의 세컨드 와인으로 오해 받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파비용 루즈에 앞서 시음한 2011년 빈티지 파비용 블랑은 코 끝에서 신선한 과일 향과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꽃 향, 기분 좋게 하는 청량감을 선사하는 한편, 입 안에서는 아삭한 질감과 적당한 무게감으로 인한 우아함이 돋보였다. 몇 차례에 걸친 수확으로 잘 익은 포도만 골라내어 만든 이 와인은 농익고 집중감 있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국내 소비자 가격은 대략 55-6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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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인내의 산물, 샤토 마고


파비용 블랑과 루즈에 이어 등장한 2004년 빈티지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는, 가볍고 경쾌한 꽃 향과 더불어 갓 딴 포도의 신선한 풍미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 마치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와인이었다(퐁탈리에 역시 이 와인에 대해 묘사하면서 aliv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퐁탈리에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향 때문에 고급스런 향수를 연상시키는 이 와인은 샤토 마고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강직한 품성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샤토 마고를 음미하는 동안 기자의 머리 속에는 '언감생심’이라는 단어가 스쳤지만, 2백만 원이 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와인이 임자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토 마고의 와인이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예상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먼저 샤토 마고는, 이곳의 설립자가 첫눈에 알아보고 와인을 생산하기로 결정할 정도로 훌륭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덧붙여 토양에 맞는 품종을 고르고 재배하는 데에도 많은 실험과 엄청난 노력이 뒤따랐다. 이러한 실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축적된 오랜 양조 경험은 샤토 마고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소다.

수확은 일년에 단 한차례 일어난다. 샤토 마고의 400년 역사에 누구나 경의를 표하지만, 한편 매년 포도를 수확해서 와인을 양조해 온 경험이 400번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고’의 끝이 있나. 단지 '더 나아지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위대한 와인을 만드는 인물의 위대한 정신(겸손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훌륭한 토양과 오랜 경험에 덧붙여 언급되어야 할 또다른 요소는 바로 인내다. 퐁탈리에는 샤토 마고의 성공이, 그들이 끊임없이 쏟아 부은 노력과 세세한 부분에까지 주의를 기울이게 한 원칙 덕분이라고 말하며, '노력과 원칙’이라는 이 두 가지 신념을 지켜나가는 태도가 바로 인내라고 덧붙인다. 샤토 마고에서의 30년은 그에게 겸손과 인내라는 두 가지 삶의 교훈을 선물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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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16일 서울에서 만난 샤토 마고의 중심 인물들. 왼쪽부터 티보 퐁탈리에, 알렉산드라 프티 망첼로풀로스 그리고 폴 퐁탈리에.


한 마디 한 마디에 세월의 깊이가 담겨있던 폴 퐁탈리에의 말을 되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퐁탈리에와 함께 자리했던 알렉산드라 프티 망첼로풀로스(Alexandra Petit – Mentzelopoulos, 샤토 마고를 소유한 망첼로풀로스 가문의 1남 2녀 중 차녀)의 다음과 같은 말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샤토 마고의 테루아와 400년 간의 역사를 보존하고 앞으로도 마고의 명성을 유지해 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에 틀림없다. (중략) 현재 가족사업(샤토 마고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것은 형제자매 중 내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녀는 부모의 권유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땄을 정도로 실제로는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 샤토 마고 같은 위대한 와인을 만드는 가문의 후계자라면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가 뒤를 잇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법도 하건만(사실 와인애호가들이 그런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스스로 그 짐을 짊어질지는 그녀의 말대로 아직 미지수인 듯 하다. 사실 해외 자본이 보르도를 중심으로 양조장과 포도원을 사들이는 것에 대해 그녀에게 질문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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