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jpg
미각의 독재자(The dictator of taste). 2004년 발행된 다큐멘터리 영화 '몬도비노(Mondovino)’에서 영국의 와인 작가 휴 존슨이 로버트 파커를 가리켜 한 말이다.

로버트 파커는 1978년에 The Wine Advocate(이하 TWA)을 창간하였다. 파커는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접근조차 어렵게 만드는 와인을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 TWA 뉴스레터를 발행하여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와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당시만 해도 미국은 신흥와인시장이었으며 그만큼 와인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부족했다).

또한 그 일환으로 '100점 평가제’를 마련하였는데, 파커는 “그 어떤 평가 체계도 완벽하지 않지만, 편견을 배제한 동일한 평가자에 의해 평가가 수행된다면 와인의 품질을 계량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에게 전문가의 객관적인 평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TWA 뉴스레터는 이후로 지금까지 두 달에 한 번씩 지면 발행되어 왔고, 구독자수는 5만 명(구독자의 80% 이상이 미국인)에 달하며, 이들은 연간 75달러의 구독료를 지불한다. 파커의 100점 평가제는 “와인의 파커화(Parkerization)”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전세계 와인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와 함께 '무게감 있고 오크 풍미가 짙으며 알코올이 높은’ 와인에 대한 파커의 편향성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Ivan Kenneally는 그의 칼럼Robert Parker’s legacy에서 “파커는 비개인적인 평가제를 통해 와인을 대중지향적으로 만든 반면, 그의 개인적인 선호를 절대적이고 대체불가능한 것으로 자리매김시켰다”며 이를 '파커가 이룬 업적의 역설(The paradox of Parker’s ultimate legacy)’이라고 표현하였다.

최근 로버트 파커가 TWA의 지분 대부분을 1천5백만 달러에 싱가포르의 투자가들에게 넘긴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 중 최근까지 싱가포르에서 와인수입사 Hermitage를 운영했던 Soo Hoo Khoon Peng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며, 그는 향후 TWA 운영 전반에 깊이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두 명의 투자가는 각각 도이치 뱅크 및 골드만 삭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Decanter.com 2012.12.13)

파커는 erobertparker.com 웹사이트를 통해 “이들 투자가들은 와인 업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며, 오늘날 필수적인 '세계화적 시각’을 지닌 이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본인은 “여전히 TWA의 CEO, 회장, 브랜드 소유주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러한 일이 있기 몇 달 전에 로버트 파커는 erobertparker.com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그가 35년간 운영해 온 TWA 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올해 초부터 대리인을 통해 대규모 개인 투자가들을 모색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Decanter.com 2012.12.10).
가로선.jpg

파커 떠난 TWA, 어떤 변화 생기나

먼저 TWA 뉴스레터가 PDF 버전으로 발행된다. 또한 에디터를 증원하여 중국, 대만,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비중 있게 다룰 예정이다. 온라인 와인 시음, 와인 교육 등도 진행한다. 또한 TWA는 (사상 최초로) 광고를 유치할 계획이다. 단, 광고는 항공사나 고급 호텔 등 비와인기업 광고에 해당한다(TWA는, 다른 와인 전문 매체들이 와인 광고를 실음으로써 지니는 광고주 편향성에 대해 지금까지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TWA의 이러한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를 반영한다: 출판의 디지털화, 와인구매자에 대한 새로운 인구통계 등장,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 증가”라고 언급하였다.(Robert Parker, the American Bacchus)

파커에 따르면 TWA의 본사는 미국 메릴랜드에 그대로 유지될 것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싱가포르 지사가 설립될 예정이며, 파커의 오랜 동료인 Lisa Perottii-Brown MW가 싱가포르 지사의 편집장을 맡게 된다. 이로써 그녀는 콘텐트 조율, 편집, 교정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는 TWA가 실질적으로는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운영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특정 콘텐트, 예를 들면 보르도, 론, 캘리포니아 버티컬 빈티지, 25달러 미만의 밸류 와인에 대한 글은 파커 본인이 계속해서 연재할 계획이다.
가로선.jpg

파커의 행보에 대한 말, ,

로이터 통신의 Felix Salmon은 기사를 통해,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파커는 TWA를 매수할 계획이나 콘텐트에 대한 권한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결국 새 소유주에게(와인 산업이나 출판에 대해 경험이 없는) TWA를 넘긴다고 갑자기 발표했다”며 “이 거래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The Robert Parker bombshell) 최근 또 한편의 관련기사를 통해 Salmon은 “로버트 파커가 없다면 TWA의 브랜드 가치는 매우 빨리 증발해버릴 것”이라며 “1천5백만 달러에 TWA를 넘기기엔 너무 낮은 금액으로 보인다”고도 설명하였다. 그간 와인 산업에 미친 파커의 영향에 대해서는 “파커식 와인평가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들겠지만,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그래도 최소한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털어놓았다.(The decline of the Robert Parker empire)

뉴욕 타임즈의 Eric Asimov는 “Changes at The Wine Advocate Signal a Shift in the Market”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파커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평론가이지만, 그를 비롯한 몇몇 중요한 와인 전문 매체들이 수 세대 동안 미국인들의 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영향을 미쳐왔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또한 와인 평론가들의 영향권이 북미에서 아시아로 점차 옮겨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TWA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분석하였다. 또한 그는 “TWA는 신흥 와인 시장이던 미국의 와인소비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호기심은 많으나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는 대중들이 와인산지나 생산자에 관계없이 와인을 쉽게 비교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하면서, “한편, 최근 십여 년간 북미와 유럽에서는 소수 와인 평론가나 매체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탈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 왔는데, 이는 건전한 진화 또는 소비자들의 자신감 상승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중략) 이처럼, 아시아의 신흥 와인 시장 역시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TWA를 비롯한 와인 전문 매체로부터 얻는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포브스의 한 칼럼에서 인용한 문구로 이 글을 끝맺도록 한다. “수많은 와인을 전문적으로 시음해서 정보를 제공해주는 와인평론가들은 유용한 존재들이다. 소비자가 이들 평론가 중 한 명의 기호를 좇아 그가 소개하는 와인을 맛보고 그의 평가를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전문가들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소비자들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What Is Robert Parker Good For Anyway?) 어느 누구도 로버트 파커의 영향력이 일순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Asimov가 말한 평론계의 '탈중앙집권화’가 한발 짝 더 가까이 다가온 것만은 분명하다.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역자 안준범이 들려주는 <이탈리아 와인의 거장들> 이야기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산지를 위한 역사서 - 이탈리아 와인의 거장들 - 출간 기념 와인시음회 “이 책은 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꿈의 책이다. 삶의 생생한 흔적들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는 책이고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과 와인과 더불어 살아왔던 ...
    Date2013.01.25
    Read More
  2. 최고를 향한 도전 [마스터 소믈리에]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이하 MW)이나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 이하 MS)는, 와인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영예로운 타이틀임에 틀림없다. 세계 최고의 영예가 주어지는 만큼, 타이틀을 거머쥐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은 혹...
    Date2013.01.16
    Read More
  3. 성(性) 마케팅 활용한 와인 브랜드

    최근 미국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스파클링 와인이 소개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와인 이름은 불어로 평등을 의미하는 에갈리떼(Egalite)이며, 뉴욕의 한 와인수입업자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수입한 크레망 드 부르고뉴 와인에 직접 고...
    Date2013.01.14
    Read More
  4. 와인색상선호도에 따른 개인차

    와인색상선호도에따른개인차 최근 영국에서, 즐겨마시는 와인의 색과 개인의 성향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Red or white wine? Secret behind drink choice revealed) 와인소비자들의 사회적 행태를 연구하기 위해성인 2천명...
    Date2012.12.28
    Read More
  5. 로버트 파커의 폭탄 선언

    미각의 독재자(The dictator of taste). 2004년 발행된 다큐멘터리 영화 '몬도비노(Mondovino)’에서 영국의 와인 작가 휴 존슨이 로버트 파커를 가리켜 한 말이다. 로버트 파커는 1978년에 The Wine Advocate(이하 TWA)을 창간하였다. 파커는 소비자들을 혼란...
    Date2012.12.24
    Read More
  6. 겨울철, 빈티지 포트 제대로 즐기기

    포트 와인 명가 그라함Graham's이 제안하는 빈티지 포트와인 제대로 즐기는 법 빈티지 포트와 시가의 조우 지난 2월 쿠바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가 축제인'제 14회 하바노스 페스티벌 Habanos Festival’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시가 애호가들의 가장 ...
    Date2012.12.12
    Read More
  7. [인터뷰]에노테카 코리아, 김진섭 대표를 만나다

    [인터뷰] 에노테카 코리아, 김진섭 대표를 만나다 에노테카 코리아 법인 설립, 이후 에노테카 와인숍 압구정점 오픈, 최근 에노테카 와인숍 합정점 오픈 등 꾸준히 빅 이슈를 몰고 온 에노테카 코리아 김진섭 대표. 와인업계 모두가 예의주시한 그의 행보 덕에...
    Date2012.12.0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 32 Next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