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드리유의 연금술사
Yves Cuilleron 이브 퀴에롱
와인메이커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읽을 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기자의 입장에서 이런 와인메이커들은 와인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까지 훌륭하게 소화해 내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하다. 지금까지 만나 본 와인메이커들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샤토 몽투스의 알랭 부르몽, 가야의 안젤로 가야, 그리고 이브 퀴에롱의 이브 퀴에롱이 그러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훌륭한 와인을 만듦으로써 그들의 명성을 쌓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지역공동체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다른 와인들까지도 함께 조명 받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으며 위대하다고 평가 받을 만하다.

기자는 지난 10월,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이브 퀴에롱을 만나 올해 작황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들리는 소문대로 올해 유럽의 수확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듯 했다.
“수확량이 많이 줄어들 거라는 예감은 일찌감치 했었다. 포도나무가 싹을 늦게 틔웠고, 개화기인 6월부터 7월 중순까지 비와 우박이 차례대로 내리는 바람에 포도밭에 피해가 컸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날씨가 거짓말처럼 좋아져서, 적은 양의 포도지만 성장하기에는 무척 좋았다. 9월에 수확이 끝날 무렵까지 비가 딱 한번 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지구 온난화 때문에 수확기가 15일 정도 빨라져서 9월 초에 수확을 시작하는데, 올해는 9월 중순에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 이전의 평균적인 수확기로 돌아간 셈이다. 수확을 마치기까지는 보통 3-4주 정도 걸리는데, 포도밭이 남북으로 길고 손으로 직접 포도를 따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수확이 앞당겨졌다는 그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수확을 일찍 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름에 가까운 날씨에 수확한다는 의미인데(9월 초의 날씨를 떠올려보라.), 뜨거운 햇볕 아래 엄청난 속도로 익어가고 있는 포도를 수확해서 만든 와인은, 자연히 알코올 농도가 높고 농축된 과일의 풍미가 지배하는 단순한 와인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미네랄 풍미와 복합성, 균형을 갖추기 힘들다. 만약 수확기간 동안 비라도 내리게 되면 곰팡이가 생기는데, 포도가 달수록 곰팡이에 의한 피해는 더 크고 광범위하다. 반면 수확을 늦게 할수록 그만큼 가을에 가까운 날씨에 수확하게 되는데, 포도가 익는 기간이 길면(즉 천천히 익을수록) 균형과 산미를 갖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올해처럼 수확기간 동안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 포도의 상태가 매우 좋아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진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에 오기 전에 1차 발효 중인 여러 와인들을 시음하고 품질을 가늠해 보았다는 그는 작년에 비해 올해의 와인들이 품질의 편차가 거의 없이 균일하며 구조감이 더 좋다고 말한다.

기자가 최근 2010년 빈티지 이브 퀴에롱 르 캉디브(Yves Cuilleron Les Candives)를 마셔보니 매우 좋더라고 말하자, 그는 2012년 빈티지 와인들도 2010년 빈티지 와인들에 못지 않게 뛰어난 균형과 구조감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품질은 유지한다 하더라도 생산량은 줄어들텐데, 그렇다면 뱅드페이급 와인의 경우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날씨 조건에 잘 대처했기 때문에 수확량에 큰 변동은 없었다고 말하며 “수확량 적다고 가격 올리는 것은 나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그리고는 빈티지 좋다고 가격 올리고 그렇지 않다고 가격 내리는 것은 보르도에서나 흔한 일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한바탕 웃는다.
이브 퀴에롱 '르 캉디브' ▶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인다. 몇 년 전 그는 캘리포니아의 모건 클렌데넨(클렌데넨 가문은 캘리포니아에서 오 봉 클리마Au Bon Climat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과 함께 비오니에 와인 생산에 합류하여 세 개 빈티지 비오니에 와인을 함께 만들었다. 이 때를 회상하며 그는 “론에서만 와인을 만드는 타성에 젖어 있던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더운 날씨를 겪다 보니, 기후가 점점 더워지는 론의 날씨에도 적응할 수 있게 되더라”고 말한다.

사실 비오니에는 이브 퀴에롱에게 지금의 명성을 가져다 준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 조셉, 코트 로티, 코르나스에서 시라 품종으로 정상급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를 더욱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비오니에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 콩드리유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이브 뀌에롱을 두고 “무게감을 주지 않으며 짙은 풍미와 아로마를 가진 전형적인 스타일의 콩드리유를 만드는 천재”라고 평가하였다. 콩드리유의 정상급 비오니에는 관능적인 풍미와 강렬한 향기를 폭발적으로 발산하며, 잘 익은 복숭아, 멜론, 리치, 오렌지 껍질 등의 향을 드러내며, 와인의 질감은 크림처럼 부드럽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과 최근까지 비오니에는 거의 사라질 뻔한 품종이었다는 것이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비오니에를 재배하는 곳은 론 북부의 콩드리유에 거의 한정되어 있었고, 이 지역 포도밭에서 재배되는 비율은 10%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비오니에는 품종 특유의 매혹적인 향과 바디감 덕분에 전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브 퀴에롱 콩드리유 '에이게'
이브 퀴에롱의 국내 와인 팬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비오니에로 만든 스위트 와인 에이게Ayguets가 국내에 (최초로) 출시된 것이다(작년에 한국에서 에이게를 비공식적으로 선보일 기회가 있었는데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귀부균에 감염되어 수분이 거의 증발한 포도로 만들어져 높은 당도와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내는 이 와인은 연간 3천 병 정도(500ml들이) 생산되며, 10년 이상 보관 가능하다. 사실 비오니에로 만든 스위트 와인은 북부 론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와인이었으나 최근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였다. 이브 퀴에롱은 1990년대부터 스위트 비오니에 와인을 만들어왔는데, 이익에 상관없이 이 와인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문의 _ 비노쿠스 (02 454 0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