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of Wine 지니 조 리


ASIAN PALATE을 말하다



2008년, 동양인 최초로 Master of Wine(마스터 오브 와인, 전세계 300명뿐으로 최고의 와인지성을 갖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이하 MW)이라는 영예를 거머쥐며 세계적인 활약을 벌이고 있는 지니 조 리(이지연). 한국 태생이지만 1994년부터 지금까지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와인 저널리스트, 와인 작가, 와인 교육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디캔터,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 중국 본토에서 발행하는 차이나 비즈니스 뉴스, 노블레스 매거진 중국 및 한국판 등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항공사의 와인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다. 뿐만 아니라'아시안 팔레트(Asian Palate)’라는 저서를 통해, 유럽 중심의 와인-음식 접근법을 벗어난'아시아 음식과 와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지난 10월 24일 기자는 한국을 방문한 지니 조 리를 만나, MW로써의 활동과 그녀가 바라보는 와인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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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가 되서 뭐하려고?”

지니 조 리는, 아시아에서 와인문화란 생성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초기 단계임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MW가 되기 위해 공부할 당시만 해도 (그녀가 MW를 획득한 시기는 2008년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와인 붐이 일기 전이었고, 따라서 가족들은 “MW가 되서 뭐하려고?”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학에서 정치과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까지 받은 그녀가 서양 사람들이나 마시는 술을 공부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와인 교육이니 와인 저널이니 하는 분야는 아시아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와인이 나를 선택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와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와인이 나를 선택한 것 같다”고. 영국에서 유학하던 당시 와인의 세계로 깊이 빠진 그녀는 특히 와인이 가진 복잡하고 지적인 면에 이끌렸다. 맛과 향을 맡기 위해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점도 본인의 취향과 맞다고 느껴졌다. 사실 그녀는 1995년부터 음식과 레스토랑에 대한 글을 써왔으며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 과정(Certficat de Cuisine)을 이수하는 등 음식에 대한 애정과 감각이 남달랐다. 이 때문인지, 아시아 음식과 와인의 매칭에 대한 그녀의 깊은 통찰과 분석은 적어도 전세계 와인산업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다.


“동양인 최초의 MW로써 사명감 느낀다.”

MW는 와인산업 내의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한다. 대표적으로, BBR(Berry Bros. & Rudd)와 같은 유명 와인 회사에서 와인 선별 및 판매 부분에 있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데 참여한다든지, 그녀처럼 저널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전세계 300명의 MW 중 지니 조 리는 최초의 동양인이다. 특히 아시아인들 중에서는 세계와인산업에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시아인인 그녀는 MW로서 누구보다도 어깨가 무겁다. 또한 그녀는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교육과 소통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그녀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을 나누어 주고 돌려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관점으로 와인을 바라보자.”

동양인 최초의 MW로써 가지는 사명감 외에도,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아시아인들이 와인을 서양적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고유의 관점에서 와인을 바라보게 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와인문화를 받아들인 아시아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식 와인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또는 문화적 절충 없이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와인을 표현하는 방식과 교육하는 방식이 아시아인의 문화적 정서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MW를 공부하는 아시아인들이 대체로 지식과 정보 습득이 빠르고 시음은 매우 잘 해내는 반면 자기 고유의 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에세이 부문에서 취약하더라는 그녀의 말은, 이처럼 어딘가 억지스럽게 끼워 맞춘 듯한 아시아권 와인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지나치게 빠르다.”

유럽 중심에서 아시아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와인산업을 바라볼 때, 문제점이나 불균형적인 현상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아시아 와인 시장이 성숙하는 속도에 비해 무게 중심이 너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세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카테고리의 와인을 빨아들이며 해마다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문제는 중국의 전문가들 중에 와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와인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자칭 와인교육자나 와인상인들 중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스페인 와인은 보르도 와인보다 오크통에서 더 오래 숙성시킨다”는 등), 별 것 아닌 와인을 수입해서 억지로, 때로는 속여가면서 판매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 음식, 우리가 더 잘 안다.”

기자와의 인터뷰 이후 '고추, 된장, 감칠맛 - 한국인 입맛에 맞는 와인’ 세미나를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음식이 내는 맛은 우리가 더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아시아 음식은 이렇고 따라서 이런 와인이 어울린다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것은 맞지 않다. 덧붙여, 한국 음식 고유의 장점을 무시한 채 세계화를 시킨다며 모호하게 변형시키는 것은 큰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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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는, 한국 음식이 와인과 매칭하기에 녹록치 않다는 편견을 없애고 둘 간에 최상의 궁합을 이루게 하는 그녀의 노하우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음식과 와인 매칭에 있어서 그녀가 강조한 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맛 또는 본인에게 익숙한 맛에 따라 와인과 음식을 매칭하는 것이 좋으며, 상황에 맞는 매칭 방법을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하는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기자가 틈틈이 받아 적은'음식과 와인 매칭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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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단 맛보다는 쓰고 시고 매운 맛을 즐기며 풍미가 강할수록 선호한다. 이런 음식일수록 리슬링처럼 점잖으면서도 풍미가 뚜렷하고 뼈대가 강한 와인, 미디엄~미디엄 플러스 바디에 산도가 높고 드라이하며 신선한 와인이 어울린다.

-한국 음식은 양념과 재료의 풍미가 강하다. 즉 요리 안에 이미 모든 풍미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해치지 않는 와인 또는 보조할 수 있는 와인이면 충분하다. 반면 서양 음식은 풍미가 단순하거나 부족하므로 오히려 풍미가 좋은 와인을 통해 음식 자체의 미비함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다.

-한상차림이 특징인 한국 식단에는, 여러 가지 음식에 두루 어울릴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와인이 어울린다. 입 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요소가 있으면 더 좋다. 이러한 와인은 대체로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우아하고 섬세하며 산도가 좋다. 이러한 와인의 종류로는 샴페인이 대표적이다.

-한국 음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기름을 덜 쓰고 재료의 질감과 온도에 민감하므로 와인이 섬세할수록 잘 어울린다.

-한국 음식은'질감’과 ’온도’라는 요소가 중요한데 이는 와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두 요소가 어울리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자.

-한국 음식은 감칠맛(또는 우마미)이라는 고유한 요소가 있는데, 이러한 요소는 와인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효모찌꺼기와 함께 오래 숙성시킨 화이트 와인이나, 배럴 숙성을 오래한 레드 와인이 그렇다.

-재료와 먹는 방법도 큰 차이를 가져온다. 가령 생선회를 소금에 찍어먹는다면 샤블리 또는 오크 숙성하지 않은 샤르도네, 드라이한 세미용 화이트 와인을, 감칠맛이 있는 간장과 생선회를 먹을 경우에는 좀더 무게감 있는 샤르도네가 낫다. 생선회를 와사비와 먹는다면 독일의 피노 누아같은 가벼운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

-한 가지 음식에 한 가지 와인 매칭, 이런 규칙은 너무 엄격하다. 제공되는 요리의 80-90% 정도와 어울리기만 해도 훌륭하다.

-고급스런 음식일수록 양념이 덜 들어가고 재료 본연의 맛을 낸다. 이런 음식에는 자연스럽게 고급 와인을 마시게 되는데, 와인도 마찬가지로 테루아를 많이 드러낼수록 고급스럽다.

-음식이 맵거나 시더라도, 풍미가 강하고 뼈대가 강한 리슬링이라면 잘 어울린다.

-드라이한 와인일수록 음식의 풍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잘 어울린다.

-매운 음식에 레드 와인을 마시고 싶으면 와인의 온도를 조금 낮춰서 마시면 좋다.

-레드 와인의 타닌은 고추장의 매운 맛을 도드라지게 하는 특성이 있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매칭을 즐기기도 한다.

-풍미가 단순하고 과일 맛만 도드라지며 거대한 와인은 우리 입맛과 대체로 맞지 않는다. 우리 입맛에는 와인의 숙성도가 중요하다.

-피노 그리는 과일보다는 풀 향이 우세한 와인이다. 미디움 바디에 뼈대도 받쳐주기 때문에 해물파전 같은 부침개 요리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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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맛엔 'BIG’,'POWERFUL’ 어울리지 않아”

그녀는 와인뿐만 아니라 와인과 음식의 매칭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함을 세미나 내내 강조하였다. “아시아에 와인 문화를 퍼뜨린 것은 미국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국식으로 와인을 받아들였고, 동시에 미국식 와인 평가 방식까지 함께 도입하게 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그녀는 “미국인들의 입맛과 아시아인들의 입맛은 분명히 다르다. 미국에서는 음식이든 와인이든'크고’ '파워풀한’ 것이 선호되는데, 이는 우리의 입맛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결론은, 미국식 기준에 맞춰 와인을 점수로 평가하는 습관을 버리고, 자기 입맛에 맞는 와인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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