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대중화 성공시킨 영국 시장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글 _ 오미경 (홈플러스 와인 바이어)
매년 5월, 필자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다. 런던 인터내셔널 와인 페어(London International Wine Fair)에 참여하여 새로운 트렌드도 파악하고, 매년 이맘때쯤 함께 열리는 테스코 신상품 프레스 테이스팅(Tesco Spring Press Tasting)에 참여하면 많은 상품을 집중적으로 시음할 수 있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영국 시장에서 살아 남는 와인은 전세계 어딜 가도 경쟁력이 있다"고 할 정도로 영국은 품질과 가격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또한 와인 생산국이 아닌 소비 국가로서 와인 대중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면에서 영국은 보고 배울 점이 많은 시장이기 때문에 필자는 정기적인 리서치를 위해 런던을 방문한다.
[사진] 올해 열린 런던 와인 페어에는 전세계 35개국의 약 2만여 종의 와인이 선보였다.
올해로 32회를 맞이한 ‘런던 와인 페어’는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하는 와인 박람회로, 와인바이어를 비롯해 와인 저널리스트, 레스토랑 및 와인샵 관계자 등 와인업계 종사자들이 주로 참가한다. 또한 오랜 와인 종주국이자 전세계 와인 소비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국 시장인만큼, 영국을 근거지로 한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여 새로 출시된 와인들을 평가한다.
이 박람회가 중요한 이유는, 국제 박람회로서 큰 규모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많은 비즈니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실질적이라는 점이다. 즉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와인 박람회인 만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영국 와인 시장의 원동력이 된다.
테스코는 올해 런던 와인 페어의 개최 시기에 즈음하여 미디어를 대상으로 시음회를 열었다. 이는 테스코 영국이 매년 두 차례씩 진행하는 '프레스 테이스팅' 중 하나로, 이 시음회를 통해 테스코가 새로 개발한 와인을 전문 저널리스트들에게 소개하고 평가 받는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유통회사는 모두 자체적으로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혹은 그에 준하는 와인 전문가들이 와인 상품 개발을 주도하며, 매년 새로운 상품을 개발, 평가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들 와인 전문가와 전문 저널리스트들은 와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매번 새로운 와인을 선보일 때마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 유통업체들은 더욱 더 좋은 와인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영국 시장은 자체 브랜드 상품이 강한 시장으로, 각 유통업체별로 자사 브랜드를 내건 상품을 앞다투어 개발한다. 이러한 상품은 철저한 고객 분석을 통해 개발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상품 전략부터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 채널의 와인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보이는 제품은 그 회사의 상품 개발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므로, 이는 곧 가격과 품질의 기준점이자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시장에서는 현재 테스코의 파이니스트(Finest), 세인즈 베리의 테이스트 더 디퍼런스(Taste the difference), 아즈다의 엑스트라 스페셜(Extra Special) 등이 각 유통업체의 대표 브랜드로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에 더해, 2년 전 세인즈 베리가 ‘하우스 와인(House wine)’을 개발하여 좋은 호응을 얻자 테스코는 작년 하반기 테스코 심플리(Simply)를 론칭하였다.
[사진] 와인 유통업자들과 회의 중인 필자의 모습.
한국 와인 시장이 좀더 대중화 되기를 기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영국 시장은 좋은 연구 대상이다. 와인 대중화에 성공했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다양한 와인들이 고르게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주류 소비 문화를 가리켜 ‘펍(Pub) 문화’라고 하지만, 펍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바, 심지어 작은 음식점을 비롯한 그 어디에 가더라도 와인 한잔 정도는 쉽게 주문할 수 있을 만큼 와인은 널리 퍼져 있다. 또한 소비자들은 어느 한 가지 원산지나 와인에 집착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성향이 짙다. 전통적으로 샤블리와 리오하 와인을 좋아하지만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 유행이 되다가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가 다시 인기를 얻고, 저알콜 와인 붐이 일기도 한다. 이렇듯 소비자들은 항상 새로운 와인과 유행에 열린 마음으로 도전한다.
과연 이러한 대중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영국의 와인 업계 종사자들에 의하면, 15~20년 전 일었던 와인의 대중화에는 대형 유통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한다. 그들은 진부하던 와인 판매대를 새로운 상품으로 채우고, 고객들이 쉽게 와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WEST 등 전문 교육 기관이 생겨났고, IWC, IWSC와 같이 객관적으로 맛을 평가하는 평가제가 마련되었다. 한발 더 나아가 마스터 오브 와인과 같은 공인 와인 전문가와 와인 저널리스트들이 등장하였고, 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갔다.
영국의 사례를 볼 때, 한국의 와인 대중화를 위해서는 와인 업계의 채널별로 좀 더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대형 마트와 수입업체, 교육기관, 평가협회 등 모두가 무엇이 진정 대중화에 도움이 되는 길인지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힘을 모아 함께 한국 와인의 대중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우리 와인 시장은 ‘와인의 대중화’라는 장기적인 목표에 한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