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랑의 대부, 알랭 부르몽을 만나다

The Godfather of Madiran, Alain Brumont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마디랑(Madiran)은 따나(Tannat)라고 불리는 비교적 생소한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줄리어스 시저(Julius Ceasar, 100-44 BC)가 갈리아를 정복한 이후 로마인들은 갈리아의 남서부 지역을 식민지화했으며, 이후 마디랑의 따나와 카오르(Cahors) 지역의 말벡(Malbec)으로 만든 와인을 보르도 와인에 섞어 북유럽의 부유한 지역으로 수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보르도 와인은 가볍고 묽어서 장거리 운반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Black wines라 불릴 만큼 색이 진한 따나와 말벡 와인을 혼합하여 와인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르도의 와인생산자들은 이 블랙 와인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을 시기했고, 관세와 무역 장벽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생산을 둔화시키고자 했다.


1870년대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가 유럽 대부분의 포도밭을 황폐화시킨 직후, 보르도나 부르고뉴처럼 부유한 지역의 와인생산자들은 그 피해로부터 회복할 수 있었지만, 마디랑 같은 남서부 지역의 가난한 와인생산자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와인생산자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으며 이와 함께 와인 양조의 전통도, 기술도, 포도 품종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79년, 보르도에서 와인교육을 받고 고향인 마디랑으로 돌아온 알랭 부르몽(Alain Brumont)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땅을 기반으로 척박한 마디랑 와인산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마디랑의 대부'라 불리며 전세계를 통틀어 100대 와인에 속하는 위대한 마디랑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훌륭한 마디랑 와인은 훌륭한 보르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10여 년의 숙성 기간을 필요로 하며, 어떤 것은 20년이 훌쩍 지나도 여전히 그 건재함을 과시한다. 마디랑의 대부 알랭 브루몽이 만드는 샤또 몽투스(Chateau Montus) 와인은, 보르도 최고의 와인생산자들이 만드는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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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부르몽의 따나Tannat 길들이기
 


알랭 브루몽이 마디랑 지역의 샤또 몽투스를 인수한 것은 1980년. 그가 이곳을 인수하면서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방식에도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포도밭은 유기농 비료를 사용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포도나무는 빽빽하게 심어졌고(헥타르당 7천 그루) 수확량은 대폭 줄어들었다(포도 나무 한 그루당 4-5개의 포도송이). 수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일년에 세 차례씩 포도송이를 솎아낸다.

수확한 포도는 저온에서 10-12일 정도 침용시켜 부드럽게 타닌을 추출한다. 와인은 작은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키는데 그 기간이 과거보다 늘었다(과거에는 따나의 날카로운 산도와 타닌 때문에 와인을 커다란 오크통에 몇 년 정도 숙성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렴성이 매우 높아 입안이 마를 지경이었다). 와인을 숙성조에 옮겨 담을 때에는 중력을 이용함으로써 와인이 벨벳 같은 부드러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병입 전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1, 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품질보다는 높은 알코올의 파워풀한 와인을 주로 생산하던 마디랑의 와인생산자들 사이에서, 알랭 브루몽의 품질 관리에 대한 자각 및 새로운 양조 방식 도입은 말 그대로 개혁이었다(스티븐 스퍼리어는 이러한 그를 ‘fighting bull, 싸우는 황소’에 비유하였다. Decanter 2007). 그리고 이러한 혁신의 결과, 몽투스 와인과 더불어 따나라는 품종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유명해졌다.

따나 와인 양조에 있어 이렇듯 혁신을 일으킨 그에게 따나라는 품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는다면, 그는 낡은 가방에서 꺼낸 잡지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어줄 것이다.

 

"Alain Brumont, le Fils de Tannat.
알랭 부르몽, 따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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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인물이기 때문일까, 그는 세계 와인 산업에서 굵직한 획을 그은 인물들에 종종 비유되곤 한다. "와인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가 당신을 ‘프랑스의 안젤로 가야’에 비유했다"고 알려주자, 그는
 


몽투스 와인과 내게 많은 별명이 붙어 다닌다. "프랑스 남서부의 페트뤼스(혹은 로마네꽁띠)"라던가 "프랑스의 베가 시실리아" 등등. 이런 별명들은, 내가 만든 와인이 마디랑 지역과 따나 품종의 위대함을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인 와인(와인생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겐 그저 ‘따나의 아들’이란 별명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최근에는 호주 지역에서도 재배되고 있지만, 짙은 색과 높은 알코올 함량을 지닌 와인을 생산하는 따나의 본고향은 프랑스 남서부의 마디랑이다. 타닌이 많고 두꺼운 껍질 덕분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되는 따나는 피노 누아만큼이나 재배하기 까다로운 품종이지만, 제대로 만들었을 때 놀랍도록 훌륭한 균형을 보여준다. 또한 산도가 높고 열에 강한 특징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영향(뜨거운 열에 의한 손상, 산도 부족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전망 있는 품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나는 적포도 품종 중에서 건강에 좋은 요소들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레드 와인이 건강에 미치는 유익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프렌치 파라독스(French Paradox, 레드 와인이 노화방지, 동맥경화 예방,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이론)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따나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을 비롯해 프로시아니딘(procyanidine) 함유량이 다른 적포도 품종보다 많다.

 

마디랑이 프랑스 남서부의 최장수 지역이며 알츠하이머나 심장병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은, 이 지역민들이 하루에 반 리터의 와인을 마셨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마디랑에는 프랑스 내에서 가장 유명한 심장질환 클리닉이 세 군데나 들어서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환자에게 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따나 포도 농축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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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lack beauty, Montus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몽투스는 놀라울 만큼 풍부하고 순수하며 완벽한 와인”이라고 칭송하였다. 뿐만 아니다. Latour나 Mouton Rothschild 같은 최정상급 와인들조차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어쩌면 악명 높은) ‘Wines and Domaines of France(Clive Coates MW 저)’에 몽투스는 최고의 와인 중 하나로 등장한다.


몽투스의 저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또 있다. 몽투스 와인의 품질을 확신한 알랭 부르몽은 2007년 11월에 전세계 60여 명의 와인전문가들을 모아놓고 동일한 빈티지(2000)의 Chateau Mouton-Rothschild, Chateau Cheval Blanc, Penfolds Grange, Ridge Monte Bello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들과 Chateau Montus La Tyre를 비교 시음하는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이 대결에서 알랭 브루몽의 라 띠르(La Tyre)는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와인들을 제치고, 첫 번째 시음에서 우승(두 번째 시음에서 3위)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몽투스가 거둔 이러한 성과는알랭 브루몽이 탁월한 와인메이커임을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France Today
에 이 사건을 다룬 글을 게재한 Chris Redman은 또다른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인 무통 로칠드는 10,000 달러(1케이스)를 거뜬히 초과한다. 그런데 이 와인을 제치고 1, 3위를 기록한 몽투스 라 띠르는 불과 1,000 달러(1케이스) 안팎이다(2009 엉 프리뫼 가격 기준)."
 


이 대결의 결과는, 마치 보르도 와인생산자들의 견제로 인해 마디랑 지역의 와인산업이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에 대한 알랭 부르몽의 통쾌한 복수극을 보는 듯하다.

한편, 다음과 같은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알랭 브루몽의 첫 빈티지인 1985년 몽투스 와인은 순전히 따나 품종으로만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즉 다른 품종과 적절히 블렌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디랑 AOC 관할 기관으로부터 AOC등급 사용을 허가받지 못했다. 이에 굴복하지 않은 알랭 브루몽은 더 높은 상위 기관으로 와인을 보냈고 이 기관으로부터 AC 등급 사용 허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시음한 마디랑 와인 중 최고"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Montus Cuvee Prestige, La Tyre, XL 등 만드는 와인마다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들으며 와인메이커로서 최정상에 다다랐지만, 알랭 부르몽은 최고라는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다. 항상 그래왔듯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훌륭한 품질을 지닌 새로운 와인을 계속해서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이는 양조가로서 자신의 본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이기도 하다(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기업가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미디어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찬란한 수식어들을 가져다 붙이지만 그는 정작 "프랑스 남서부의 페트뤼스"도 "프랑스의 안젤로 가야"도 아닌 "따나의 아들"로 불릴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인터뷰 때 흘깃 쳐다보았던 그의 손이 떠오른다. 흑진주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몽투스. 그런 몽투스를 빚어내는 그의 손은 두껍고 투박한 농부의 그것이었다.




수입처 _ 비노쿠스(02 45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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