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 增 不 減
[부증불감]
1. 모든 존재의 참모습은 공(空)이므로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아니함.
2. 중생의 본성인 불성은, 성불하지 못하여도 줄지 아니하며 성불하여도 늘지 아니함.
글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음식을 싸고 있는 포장지는 음식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음식을 먹고 나면 포장지는 초개같이 내던져진다. 사실 포장지에 싸여 보존되어 있던 음식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왔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부증불감이다. 과학에서는 이것을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 한다. 단지 외형만 변할 뿐 그 자체의 질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그 안의 음식이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옴으로써 포장은 필요 없어지고, 음식을 구성하는 물질은 우리 몸 속에 있지만 전체 모든 것을 생각해서 본다면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없다.
과거 2005년 당시 중앙일보에 고려대학교 양형진 교수가 연재한 “과학으로 세상보기”라는 칼럼이 있었다. 필자는 이 칼럼을 매우 좋아하여 매번 빼놓지 않고 읽었으며, 이후 출간되었을 때에는 사서 읽어보기까지 하였다. 조금은 긴 글이지만 일부 발췌하여 올려본다.
“지구상의 물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비나 눈, 강이나 바다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일 수도 있고 수증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일 수도 있다. 물은 눈에 보이는 바닷물로 있다가 증발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로 변하고, 그것이 모여 다시 눈에 보이는 구름을 이루면서 비가 돼 내리는 순환 과정을 거친다. 그 각각의 과정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지만, 물은 단지 형태를 바꾸었을 뿐 증가하거나 감소한 것은 전혀 없다.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도 부증불감(不增不減)이다. (…중략…) 부증불감이란 중도(中道)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중의 하나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 증가하는 것을 ( 1)이라 하고 무언가 감소하는 것을 (-1)이라 하고, 그 ( 1)에 (-1)을 더하여 0이라고 한다. 바다로 들어오는 물의 양과 증발해 없어지는 물의 양을 더해 0이 된다는 것과 같다. 부증불감의 중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 증가하는 듯이 보여도 증감이 없고, 감소하는 듯이 보여도 증감이 없어서 ( 1)도 0이고 (-1)도 0이라는 것이다. 온갖 물의 증감을 다 더할 필요 없이 그 각각이 다 0이다.” (“과학으로 세상보기”, 2004, 굿모닝 미디어)
필자는 이 글에서처럼 늘지도 줄지도 않는, 부족함도 없고 과함도 없는 상태를 와인에서 자주 발견한다.
와인에 있어 최고의 미덕은 ‘균형’이다. 최근에 Beau Vigne(보 빈)이라는 나파 지역의 컬트 와인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시음했을 때, 알코올 농도가 14도 가량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 이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무려 15.3도나 되었다(입 안에서는 전혀 그 알코올의 힘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바로 알코올, 질감, 산도 그리고 당도 등 와인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부증불감, 즉 중도의 기준을 적용했을 때 ‘균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네 모든 삶은, 바로 이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는 안정된 상태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와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와인을 마실 때 종종 포도나 와인의 성장상태, 장기숙성 여부, 장기 숙성해야 할 와인을 일찍 먹음으로써 생기는 안타까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요소에 집착하지 말고, 와인이라는 큰 범주에서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을 바라보자. 그렇게 천천히 바라보다 보면, 이 와인이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귀한 것이든 흔한 것이든, 그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중요함’에 대한 강박에서 해방된다면, 우리는 와인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