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is Bottled Universe
글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몇 년 전이던가 해외 경매시장에서는 1700년대 토머스 제퍼슨의 와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그 와인은 지금 먹을 수 없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경매가는 사상 최고가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와인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유럽에서 오래된 돔페리뇽이 침몰된 화물선에서 발견되었고, 이 와인이 마실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와인을 만나고 있다. 비단 이런 일이 뉴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책장이든 냉장고든 혹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이든, 와인 애호가(특히 오래된 와인 애호가)라면 집안 구석 어디엔가 굴러다니는 와인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필자도 마찬가지). 이런 와인을 발견하는 순간, 그 와인은 지금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떠나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물리학에서는 빛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한다. 가령 우리와 가까이 있는 안드로메다(주로 개념이 살고 있다고들 한다) 은하를 보자. 두 은하는 지금 아주 빠른 속도로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다가가고 있다. 대략 수 억 년쯤 지나서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는 하지만, 우리 후손들의 일상에도 이것은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 이전에 이미 태양은 소멸하여 지구는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안드로메다의 모습은 이미 아주 오래 전의 모습이다. 즉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그 은하의 과거의 모습이지, 지금 현재 그 은하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저 머나먼 우주를 아주 빠른 빛의 속도로 달려와 우리의 눈과 만나는 “찰나”는, 집 안 어디엔가 박혀 있던 와인을 발견하는 그 순간에 비유할 수 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 그 해의 포도밭에서 농부들이 열심히 포도를 수확했을 것이고, 와인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숙성 잠재력을 지닌 채 천천히 병 속에서 익어왔을 것이다. 나아가, 그 당시 자라고 있던 포도는 저 멀리 떨어진 태양에서 온 세상의 온전한 기운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와인 한 잔에도 이렇듯 온 우주의 모든 기록이 남겨져 있고,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함께 교감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며 수억 년 전 안드로메다의 모습을 가슴 벅차게 감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창 밖을 볼 때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바깥 배경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차를 세우고 바깥을 보면 우리 시야에 들어온 사물이나 풍경들은 고정되어 눈에 바르게 보인다. 우리가 지나치는 순간에도 그 하나하나의 주변 풍광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듯이, 우리가 마주한 와인에도 역시 스쳐 지나간 기억과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는 와인 한 잔을 마심으로써 시공간을 공유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도 아름다운 조우인가? 우리가 지금 마시는 와인 한 잔, 심지어는 우리가 접하고 있는 그 모든 하나하나가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 소중하고, 불필요한 것 하나 없다.
(위 사진은, 독일 에버바흐 수도원 Eberbach Monastery의 오래된 지하 셀러)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온 자연의 산물이자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와인을 즐기고, 그 오랜 공간과 시간의 교감을 느껴보는 것, 생각만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