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감성 사이에서 고뇌하다



글쓴이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버트 파커가 쓴 와인 시음기와 와인 스펙테이터, 잰시스 로빈슨이 쓴 와인 시음기를 각각 비교 해 보면 조금씩의 차이점이 있다. 그들의 영어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물리적인 분량으로 보더라도 그 양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로버트 파커의 시음기는 상당히 투박하고 어쩌면 좀 직설적이며 감성적인 단어들이 많이 들어가는 반면, 잰시스 로빈슨의 글들은 까칠하고 분석적이고, 와인 스펙테이터는 시음 기준에 따라서 명확하게 시음하고 있다. 아마도 사람의 특성, 혹은 시음하는 그룹의 특성이 고스란히 와인시음 결과에 반영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소비자들은 오직 그들이 매긴 점수만 가지고 와인을 평가하다 보니 여러 가지 말 못할 일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싶다.

퓨터, 특히 자연언어처리를 전공하고 있는 필자는, 이런 글에서 드러나는 감성적인 부분들이 늘 관심의 대상이다. 가령 어떤 연설자가 항상 강연을 할 때마다 “다시 말하면”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쓴다고 생각해 보자. 다음에 청중들은 그 사람이 또 다시 “다시 말하면”이라는 말을 쓸 것으로 기대할 것이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면 그 말은 그 사람의 대표적인 습관 혹은 버릇이 될 것이다. 말은 이처럼 어떤 한 사람의 특성을 드러내는데, 컴퓨터는 모든 글을 모아서 빠르게 분석하고 그 언어 현상을 분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덕분에 우리가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리는 와인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과연 와인전문가와 매체가 공정한지, 우리가 와인을 시음할 때에도 그들이 기록한 아로마, 여운, 감흥을 느끼는지 등, 그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쓴다. 지금까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언어이지만, 언어는 인간의 생각이나 의도를 약 60%까지만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음노트를 읽음으로써 그 와인을 60% 정도는 알게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공감’하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와인 스펙테이터의 경우 감성적인 내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건조하게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람의 감성은 평가 점수에 얼마나 드러나는 것일까? 얼마 전 필자는 로버트 파커의 시음노트를 컴퓨터로 분석하면서 재미있는 결과를 보았다. 바로 90점 와인의 비율이 이상하게 높다는 것인데, 이는 파커가 89점 와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9,900원과 30,000원의 심리적인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88점과 89점 사이, 89점과 90점 사이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파커는 89점과 90점 사이에서 고뇌를 한 후, 90점을 얻은 와인에는 유독 “꼭 마셔보아야(should drink)”라는 단어를 유달리 많이 쓴 것 같다. 파커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아닐까.

약 인간이 전혀 감정이 없는 존재라면 같은 와인에 대해서는 거의 똑같은 평가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와인전문가와 매체)의 시음노트는 분명 다르며, 간혹 극명히 갈리는 경우(샤토 파비를 생각 해 보자)를 보면 그들의 시음기는 분명 인간 감성에 기댄다고밖에 볼 수 없다. 오히려 와인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기계적으로 아로마에 대한 관능 훈련을 하고 양조학에 대한 지식을 가짐으로써 와인의 요소와 특성에 대한 정보들은 쉽게 도출될 수 있다(물론 아주 쉽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만 명의 개성이 백만 스물 한 개 정도로 다양한(이중 인격도 있으니) 이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는 와인 평론가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들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고, 결국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그 말 마저도 그저 나의 눈 앞에 있는 와인이 소중하다면 무엇을 더 고민할 것이 있겠는가? 내 눈 앞에 있는 생조셉(St. Joseph) 한 병을 따르면서 그 와인이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단지 기술적인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순간 중요한 것은 그 와인을 함께 마시는 이들이 될 것이다. 과연 와인을 뜯어볼 것인가, 사람을 뜯어볼 것인가?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다만 그 어느 것이든 정답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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